■ 송우영의 고전산책 / 17세 선조가 퇴계에게 묻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17세 선조가 퇴계에게 묻다
  • 송우영
  • 승인 2019.10.02 16:33
  • 호수 97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살아서는 고난의 일생이요, 죽어서는 영광의 일색이라. 고난이라 함은 61녀를 길러내어 시집장가를 보내 잘 살게 함이요, 영광의 일생이라 하면 천추에 길이 남을 훌륭한 아들을 두었음이다. 춘천 박씨 퇴계 모친의 이야기다.

율곡 이이 모친은 신사임당으로 손수 아들을 가르칠 만치 경서에 밝은 여인인 반면 퇴계 모친은 그와 정반대이다. 경서를 몰랐다. 마치 맹자 모친이 경서에 밝아 몸소 8학군(?)을 찾아다니며 맹모삼천지교의 고사를 낳은 반면, 공자의 모친은 경서는 고사하고 글도 몰라 공자를 단 한 번도 가르친 적이 없는 여인이었듯이... 퇴계 연보 말미의 글은 이렇게 기록한다.

춘추에 입각한 의리로 비유하여 사정을 밝게 하는 지식과 생각은 마치 사군자士君子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을 뿐 겉으로는 항상 조용하고 조심할 뿐이었다. 퇴계 모친 춘천 박씨의 증조부 농칠農漆은 현감을 끝으로 후손이 현달하지를 못했다. 이때부터 가세는 이미 기울어졌다. 조부 효전孝佃은 무관 서생이었으며 아버지 치는 숨은 덕은 있으나 벼슬하지는 못했고 슬하에 32녀를 두었고 장녀가 후일 퇴계 모친이 된다.

그의 자당은 월성 이씨로 생원 시민時敏의 딸이다. 쉽게 말해서 춘천 박씨의 친정집이든 외가 집이든 현달하지 못한 탓에 지독하게 가난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가난이 딸 춘천 박씨로 하여금 21년의 홀아비 처지인 이식에게 계실繼室로 시집오게 만든 요인이기도 했다. 그에게서 4남을 두어 61녀를 어머니가 된 춘천 박씨 부인은 32세 때 홀로되어 남겨진 자식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본래 퇴계는 과거에는 뜻이 없었으나 모친의 권유로 진사 시험인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해 차츰 환로로 나서게 된다.<퇴계연보 朴氏墓碣>

구한말에 이르러 간재 전우 선생을 필두로 양반가의 공부법이 비전으로 전함이 세상에 드러나는데 율곡식 공부법이냐 퇴계식 공부법이냐가 그 대표적인 예다. 물론 두 분 다 뒷배는 어머니다. 부자인 신사임당이 있고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춘천 박씨 부인이 있었다.

율곡은 3세 때부터 조부 신명화에게서 한시 짓는 법을 시작으로 요즘말로 하면 국가중앙부처 공무원시험공부에 올인 한 경우요, 퇴계는 7세 때 건너 마을 매번 과거시험에 떨어지는 낙방거사에게서 천자문을 읽는 것으로 글공부를 시작한 인물이다.

한번은 남루하기 이를 데 없는 촌로가 찾아왔을 때 당시 대제학의 신분에 있던 퇴계 선생께서 강학하시다 말고 맨발로 뛰어나가서 맞이한 적이 있다. 제자 서애가 묻기를 남루한 노인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강학 도중에 그것도 맨발로 달려가 맞이하십니까. 라고 물으니 저분이 내가 어렸을 때 훈도셨느니라. 오늘의 나를 있게 하신 분이다.<樵童書辭草堂集> 그렇다면 퇴계 선생의 공부법이라는 게 뭔가.

공자는 말한다.<공자왈孔子曰>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얻는 것이 없고<학이부사칙망學而不思則罔>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사이부학칙태思而不學則殆> 라고 하였나니, 배운다는 것은<학야자學也者> 그 일을 익혀서 참으로 실천하는 것을 말함이요,<습기사이진천리지위야習其事而眞踐履之謂也> 대개 성인의 학문은<개성문지학蓋聖門之學> 마음에서 구하지 않으면<불구제심不求諸心> 어두워서 얻는 것이 없으므로<즉혼이무득則昏而無得> 반드시 생각함으로써 그 미묘한 이치에 통달해야 하며,<고필사이통기미故必思以通其微> 그 일을 익히지 않으면<불습기사不習其事> 위태롭고 불안하므로<즉위이부안則危而不安> 반드시 배움으로써 그 실질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어늘<고필학이천기실故必學以踐其實> 생각하는 것과 배우는 것은<사여학思與學> 이렇게 서로 이치를 드러내고 서로 도와주는 관계이다.”

<교상발이호상익야交相發而互相益也. 진성학십도차進聖學十圖箚> 이 말은 17세 선조가 어떻게 공부해야하냐고 물었을 때 퇴계가 한 답변으로 오늘날의 17세 청춘이라면 반드시 곱씹어봐야 할 문장임에 분명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