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진정 개혁하고 싶다면 거울부터 보라
■ 모시장터 / 진정 개혁하고 싶다면 거울부터 보라
  • 정해용 칼럼위원
  • 승인 2019.10.24 11:43
  • 호수 9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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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생물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은 인간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지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관리한다.

중국 송대의 철학자 주돈이는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서로 교류하는 가운데서 만물이 생겨났다. 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영적 존재가 인간이다(惟人也得其秀而最靈)”라고 말한다. 이러한 이해는 서양의 신화나 각종 창조설화들과도 일치하는 견해다. 또 과학자들은 우주생성과 생태의 이치를 진화론으로 설명하는데, 여기에서도 인류는 생명 진화의 정점에 있는 존재로 인정된다.

그런데 인간이 가장 뛰어난 존재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힘이 가장 센 것도 아니고 가장 오래 사는 존재도 아니다. 그럼에도 강한 짐승들을 지배하고 오래 사는 동식물들을 다스린다. 그 힘은 어디서 왔는가. 바로 생각하는 힘이다.

파스칼의 말을 빌면 온 우주가 무장할 것도 없이 물 한 방울로도 죽을 수 있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가장 위대한 존재인 것은 바로 생각하는 힘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그는 말했다.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생각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해서도 머리를 사용한다. 많은 돈을 벌고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은 대개 남보다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다. 게 중에는 교활한 꾀를 부려 남을 속이거나 짓밟아 자기 탐욕을 충족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것도 지적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그러나 이런 류의 지능은 위대한 것이 아니라 사악한 것이다. 그들을 일컬어 사람들은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 부른다. 예컨대 조선이 망했을 때 언론인 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이란 사설에서 이완용 이지용 박제순 이근택 권중현 등 나라를 일제에 팔아먹은 을사오적개돼지만도 못한 신하들이라 성토하였다.

생각은 자기 유익을 충족하기 위한 두뇌활동 모두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 위해 고민하고 판단하는 윤리성이 개입된 판단능력을 말한다. 동물들도 지능을 사용해 사냥을 하고 새끼들을 보호하고 종족을 유지하지만, 그러한 지능이 존경을 받지는 않는다. 약육강식의 냉혹한 법칙 아래서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 두뇌활동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인간은 자기생존의 수단을 뛰어넘은, 철학적 사고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생각이다.

인간은 철학적, 윤리적 사고를 할 줄 아는 능력 때문에 위대한 존재가 된다. 그 철학의 출발이 되는 생각은 바로 자성(自省)의 능력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내세웠다. 자기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능력이 인간을 위대하게 한다. 거울을 보아 자기 모습을 살피고, 다른 사람들의 행실을 비판하는 가운데서도 이를 거울삼아 자신의 잘못된 행실을 바로잡는다. 살아온 자취를 기록으로 남기고, 거기에서 인간다움과 아름다운 삶을 배워 따르고, 그렇지 못한 일들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인간다움의 기본인 것이다.

근래 우리 사회는 개혁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다.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삶을 구현하고, 좀 더 행복한 세상을 자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부족하거나 그릇된 현실을 고치는 일이 개혁이다. 그런데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의 반대쪽에서는 그 개혁의 주장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또 다른 집단을 이뤄 북을 치며 그들을 마주 비판한다. 전국 어디서나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이 양분된 의견으로 논쟁이 벌어진다. 그래서 사회는 퍽 시끄럽고 혼란하다. 개혁하자는 요구에 왠 반대인가, 나중에 후손들은 이 장면을 궁금해 할 것 같다. 과연 우리는 어떤 대답을 남겨놓을 수 있을까.

자아성찰이 없는 개혁 주장은 구두선에 그치기 쉽다. 그것은 위선일 뿐이다. “너의 코가 더러우니 닦아야 한다라고 외치는 사람이 자기 코가 더러운 것은 모르고 있거나, “내 코는 더러워도 깨끗하다라고 우긴다면 누가 그 개혁론에 선뜻 승복하겠는가. 사회개혁 요구는 절실하지만, 그것을 외치는 사람들 스스로도 자신을 거울에 비쳐보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시인> peacepre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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