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5세 때 ‘논어여설論語餘說’ 읽은 송덕봉
■ 송우영의 고전산책 / 5세 때 ‘논어여설論語餘說’ 읽은 송덕봉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9.12.06 10:45
  • 호수 9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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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여섯 살 때<여오육세시余五六歲時> 처음 논어를 읽었다.<시수논어始授論語> 그러나 그때는 글을 암송 했을 뿐이지<지송지이知誦之耳> 뜻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불구기의야不求其義也> 겨우 열 살쯤에 이르러서야<근십여세近十餘歲> 비로소 마음으로 글의 이치를 궁구할 수 있었다.<시유구심서리始有究心書理>”

송준宋駿과 부인 함안咸安이씨李氏32녀 중 막내딸인 송덕봉宋德峰의 말이다. 이 말의 원전은 구제강이 편정한 논어여설論語餘說의 말을 재인용한 것인데 원전엔 근이십近二十이라고 된 것을 근십여세近十餘歲로 바꾸었을 뿐이다. 요즘이야 표절 운운하겠지만 그 시대에는 명문을 따라 쓰는 것을 선유先儒에 대한 존숭 공부의 한 방편으로 여기기도 했다.

이처럼 상당할 정도의 문장을 구사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녀는 이미 어린 시절에 공부에 대한 각고의 노력이 따랐음을 알 수 있다. ·청 때 발간된 논어여설論語餘說 정도의 책을 읽어 내려면 긴 시간 공을 들여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이 책은 조선 선비들이 주자집주 논어를 읽고 나서 논어를 되묻기 위한 사고역역을 넓히는 훈련용으로 읽는 책이라 퇴계나 율곡 선생께서도 20세 전후에 읽었다는 책이다. 이런 책을 어린 소녀의 몸으로 5세 때 부터 공부를 했다 하니 당시 사회 통념상으로 비추어볼 때 아버지의 공부 벽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외가 쪽인 어머니의 공부 내력이랄 수밖에 없다.

덕봉의 자당 함안咸安이씨李氏 가의 가학家學배움은 옛 문서에서 듣고 보고 경험하는 것이다<학재문견열력學在聞見閱歷>’이다. 즉 고전을 통해서 선험적 지식을 쌓는다는 말이다.

세조世祖 때 대사성大司成을 지낸 창강滄江 이미李美는 함안이씨를 명문名門의 반열까지 끌어올린 육영일문育英一門 현재배출賢材輩出의 인물이다. 여기에는 그의 처 단양우씨丹陽禹氏의 공이 크다.

그녀는 사헌부 감찰 우준禹遵의 딸로 친정에서 종학으로 자녀를 교육하던 것을 보고 자란 터라 이 집으로 입장가入丈家든 이미李美는 처가의 공부법을 자연스럽게 몸으로 익혔고 자녀를 여럿 두어 분가해서는 아내 단양우씨丹陽禹氏의 의견을 들어 큰방 하나를 고쳐서 자녀교육을 위해 집안에 육영재育英齋를 지어 자녀교육에 전심을 다했는데 맏아들 인형仁亨은 대사헌大司憲으로 세조世祖 14에 춘장시春場試 갑과장원甲科壯元이요, 차자 의형義亨은 남원부사南原府使로 성종成宗 8춘장시春場試 병과장원丙科壯元이요, 우차자 예형禮亨은 목사牧使로 성종成宗 11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성종成宗 17중시重試 병과丙科 양과장원兩科壯元이요, 말째 지형智亨은 대사간大司諫으로 성종成宗 8춘장시春場試 병과장원丙科壯元에 오른 것을 비롯 4형제四兄弟가 모두 현직에 등과한 오부자육급제五父子六及第 가문이 된 것이다.

오부자육급제가문五父子六及第家門이라는 명칭은 조선사회 사대부가에 충격과 전율을 안겨준 사건이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자녀로 태어난 이상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고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명징하도록 분명하게 방향을 제시해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일은 조선 사회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여성이 시집을 안가면 모를까 갔다면 단양우씨처럼 자녀를 키워야 한다는 안묵적 부담(?)으로 자리매김한다.

남한산성의 척화파 김상헌 가도 여기서 자유로울 순 없다. 김상헌은 2세 때 백부인 큰아버지 김대효의 양자로 갔으나 22세에 임진왜란으로 큰아들을 잃어 후사가 없는 탓에 생가 친형, 법적으로는 사촌형 김상관의 아들 김광찬金光燦을 양자로 들인다. 김광찬은 억수로 공부를 했고 그 결과가 그의 자식 대에서 수자 항렬의 삼수三壽가 나왔는데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 퇴우당退憂堂 김수흥金壽興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 등 세 자녀가 그들이고 문곡 김수항에게서 조선 사회를 쩡쩡울리는 육창六昌 곧 창자항렬의 여섯 아들이 나왔는데 몽와 김창집夢窩金昌集,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노가재老稼齊 김창업金昌業, 포음圃陰 김창즙金昌緝, 택재澤齋 김창립金昌立이 그들이다. 그야말로 공부에 끝을 본 자녀들인 셈이다. 공부는 누군가의 자녀로 태어난 이상 지고살아야 할 짐이다. 공부는 나로 하여금 심은 대로 거두게 한다. 공부에 대한 대처방식이 그 사람을 만들며 가문 또한 세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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