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가 주는 빈곤 속의 풍요
■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가 주는 빈곤 속의 풍요
  • 송우영
  • 승인 2019.12.28 05:48
  • 호수 9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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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을 다듬는 고리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공부가 제일 확실할 것이다.

사람이 공부를 한다함은 인품의 함양이 우선이나 공부의 끝에는 반드시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 있으니 곧 재물이다.

공자께서도 사람이 공부를 하게 되면 돈은 저절로 따라붙는다고 말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논어 위령공 편에 나오는 학야學也 녹재기중의祿在基中矣가 그것이다. 풀어 말하면 사람이 공부를 하면 돈이 그 가운데 들어 있어 입는 것과 먹는 것을 따로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다라는 말이다.

공부는 사람을 무례하게 만들지 않기에 가난할수록 공부는 더 악착같이 해야 한다. 공부는 늘 나를 단속하고 남에게 무례하지 말라 가르친다. 내가 귀하다고 해서 남을 천하게 보면 안 되고<물이귀기이천인勿以貴己而賤人>, 내가 크다고 해서 남을 우습게 봐도 안 되며<물이자대이멸소勿以自大而蔑民>, 내가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생각까지 낮춰서는 안 되니<물이불학이비지勿以不學而卑志> 공부하기 쉬는 죄를 범치 말라.<물이휴학이득죄勿以休學而得罪> 쉽게 말해서 가난을 핑계 삼아 공부를 그만둬서는 안된다는 말이다<미상이빈폐학未嘗以貧廢學>

예나 지금이나 밭을 갈지 않으면 곡식을 얻을 수 없는 것에서<월기망유서직越其罔有黍稷> 알 수 있듯이 어른들에게는 어른의 질량만큼의 일정량 생계를 위한 노동이 필요한 것처럼 청춘에게는 청춘의 무게만큼이나 인품함량을 위한 일정량 공부가 꼭 필요한 법이다. 공부에 왕도는 없다. 그저 옛 사람의 방법을 들먹인다면 엉덩이를 붙이고 공부함은<둔착위학臀着爲學>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보배이다.<무가지보無價之寶>

책이 있음에도 공부하지 않는 것을<재서불위在書不爲> 어리석다고 말한다.<위언치謂言痴> 그래서<연즉然則> 공부를 하면<學者乃爲> 가난해지지 않는다.<불빈不貧> 위무자魏武子의 둘째아들 위과魏顆의 말이다.<참고로 위과는 양혜왕 위앵魏罃5대 조부>

주자의 표현을 빌리면 날마다 작은 일을 이루다 보면 언젠가는 큰일도 이룰 수 있듯이 공부는 날마다 조금씩 하다보면 나중에는 많이 할 수 있도록 몸에 습여지장習與智長이 되는데 곧 습관이 지혜와 더불어 자란다는 말이다. 이는 맹자의 글이 원문으로 몸을 쓰는 공부와 마음을 쓰는 공부로 구분한다.

마음을 쓰는 공부는<노심자勞心者> 훗날 사람을 다스리는 공부요<치인治人> 몸을 쓰는 공부는<노력자勞力者> 훗날 남에게 다스림을 당하는 공부가 된다고 한다.<치어인治於人> 대략 2천년이 훨씬 넘은 호랑이 담배 물던 그런 시대에 어쩌다 맹자는 공부에 두 가지 결과가 있음을 알게 된 걸까. 똑같이 공부를 했는데 누구는 다스리고 누구는 다스림을 받는다면... 사람 위에 사람 없다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존엄을 목이 터져라 외쳐왔는데 맹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한 자와 공부 안한 자 사이에 분명한 계급은 있다고 명토박지 않는가. 그 다음 문장은 모골이 송연케 한다. 남에게 다스림 받는 자는<치어인자治於人者> 돈을 벌면 남에게 바쳐 그 사람을 밥 먹게 해주는 사람이며,<식인食人> 남을 다스리는 사람은<치인자治人者> 남이 나에게 밥을 먹게끔 돈을 바치도록 하는 사람이다.<식어인食於人> 이 얼마나 무서운 독설이랴.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그 꼴 당하기 싫으면 죽기 살기로 공부해라 공부 안하면 너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라는 말로도 읽힌다. 그러면서 충격적이게도 이렇게 문장을 맺는다. “이것이 천하에 통하는 의리이다<천하지통의야天下之通義也>”

. 공부하지 않은 자에 대한 이토록 무서운 독설이 또 있으랴. 일찍이 퇴계는 23세 때와 33세때 고향 안동을 두 번 떠났는데 모두 성균관 유학 때문이다. 이때 그가 성균관에 들고갔던 책이 맹자라 전한다.<33세 때는 맹자 책보다는 같은 성균관 동료유생 황문이 읽고 있던 남송의 진덕수가 편찬한 심경 책을 처음 빌려 읽었다함> 퇴계는 9세 때 이웃마을 낙방거자에게 논어를 초독한 뒤 12세 때 숙부 송재松齋 이우李瑀에게 재독성송을 한다. 그리고 23세에 성균관에서 또 재독을 했던 것이다. 몰라서 같은 책을 거듭 읽은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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