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사람들이 만든 영화 ‘순애씨 모해유’
서천사람들이 만든 영화 ‘순애씨 모해유’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0.01.22 15:40
  • 호수 9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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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교육 통해 새 세상 살아가는 할머니 모습 담아

국회·충남도청 등 시사회…전국개봉관 상영도 추진
▲백철수 감독▲문해교실에서 공부하는 주인공
▲문해교실에서 공부하는 주인공

서천 사람들이 기획하고 감독했으며, 서천 사람들이 출연하고 스탭으로 참여한 100% 서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극영화가 태어났다.

서천군미디어문화센터 영상제작 동아리 됐슈가 만든 이 영화의 제목은 순애씨 모해유로 이 또한 서천 지역 표준말이다. 지난 18일 오전 기벌포영화관에서 시사회가 열렸다.

주인공 이순애씨는 마산면에 사는 72세의 할머니이다. 그는 문해교실을 다니면서 한글을 깨우친 후 새 세상을 사는 사람이다. 그가 학교에 입학해야 할 나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상당수의 딸들이 글공부 대신 집안 일을 거드는 데로 내몰리던 시대였다.

주인공 순애씨는 바닷물이 드나들던 화양면 금강변의 어느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마산면으로 시집와 내리 딸을 둘을 낳았다. 옛날에는 아들 못낳는 게 여자들 죄였다.

세 번째 낳은 장남 재성이 때문에 잠잠해지더라고.”

그는 평생을 자녀들 뒷바라지를 위해 일만 해온 사람이었다.

자식덜은 전쟁도 없고 금빛 나는 세상에만 살면 좋겠어.”

한국의 고도경제성장은 이 땅의 어머니들 덕분이다. 그러나 그들은 영영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 70, 80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못 배워서 받은 천대와 서러움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어... 공부 배우니께 눈이 떠져. 악몽 속에 살다가 그제서야 머리가 지대로 돌아가는 것만 같은겨... 내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고 싶어서 공부하는겨. 공부를 하다보니께 생각도 못했던 것들을 하게 되드라니께.”

순애씨는 에어로빅도 배우고 게이트볼도 치면서 새 세상을 살고 있다.

▲화양면 금강변 갈대밭에서 꿈을 키우던 소녀시절
▲화양면 금강변 갈대밭에서 꿈을 키우던 소녀시절

영화는 6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화면에 금강변 갈대밭이 나온다. 마산에서 버스를 타고 친정 동네를 찾은 것이다. 그가 글을 깨우친 후 어머니 아버지에게 쓴 편지글 낭독이 이어지며 갈대밭에서 꿈을 키우던 소녀 시절의 영상이 명멸한다.

어머니 아버지, 문해교실 다니는 학생이 되었어요. 좋은 선생님 만나 공부하니 참 좋아요. 이제 어머니 아버지께 편지도 쓸 수 있어요

순애씨는 가슴 속에 품은 생각을 실천에 옮겨 산밭 모서리에 갤러리를 차리고 자신의 작품 전시회를 연다. 영화 첫 장면에서 비바람을 무릅쓰고 대나무를 베던 모습이 그제서야 이해가 된다. 그의 전시장을 찾는 사람들... 모두 눈이 휘둥그레 해지며 놀라는 표정들이다.

▲산밭 모서리에 차린 갤러리
▲산밭 모서리에 차린 갤러리

시사회에서 서천군미디어문화센터 구재준 센터장은 한 문해교육 선생님으로부터 우리도 칠곡 가시나들같은 영화를 만들 수 없겠느냐는 제보를 받고 영화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으며 마침내 서천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서천으로 귀촌해 살고 있는 백철수 감독은 칠순을 넘긴 비문해자가 문해교육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어려운 여건 속에서 꿈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노년과 베이비부머 세대, 그리고 젊은 세대들이 영화를 통해 용기와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영화 제작에 참여한 조감독 정경희씨는 사전에 장소 섭외하는 것에서부터 소품 준비, 주인공 할머니를 모시고 다닌 일, 하루 일정 끝에 스탭들과 나누던 야식, 또 다시 다음날 촬영 준비로 밤늦게까지 이어진 미팅... 힘든 줄 모르고 달리던 날들이 새록새록하다특별히 김응수 배우를 상대로 슬레이트를 친 일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영화에는 김응수 배우가 두 번 나오는데 그 또한 문산면 금복리 사람이다.

▲백철수 감독
▲백철수 감독

35분의 짧은 영화이지만 비문해자가 새 세상을 열어가는 모습을 통해 한 할머니의 70년 인생을 담고 있으며 한국현대사의 한 면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영화는 국회, 충남도청, 충남도교육청, 도의회 등에서 시사회를 가질 예정이며 세종시 교육청과도 협의중이라 한다. 또한 전국 개봉관 상영을 목표로 협상 중에 있다고 구재준 센터장이 밝혔다.

<허정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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