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명의(名醫) 1
■ 모시장터 / 명의(名醫) 1
  • 뉴스서천
  • 승인 2020.02.06 05:47
  • 호수 99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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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양 칼럼위원
박자양 칼럼위원

        두통이 예사롭지 않은 와중에도 산행은 비교적 무난했다. 예정보다 조금 일찍 하강 후 자일(Seil)을 사리며 선배들과 함께 늘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주고받던 농지거리가 오늘은 버겁다. 두통의 위력이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방구석을 찾아 벌러덩 누워 쉬어본다. 식구들과의 대화도 오마니의 맛난 음식도 마뜩치 않다. 머리를 고정한 채 자세만 수시로 바꿔가며 하루 밤을 지내고도 양쪽 귓속에 머무는 이상한 압력은 숨쉬기 운동까지 신경 쓰이게 하고 동반된 두통은 머리를 짓이기는 듯하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일어나 병원을 가기로 하고 조반을 먹는 둥 마는 둥 집을 나섰다.

        토산을 머리에 인 듯 납덩이 족쇄를 양 발목에 채운 듯, 걸음 하나가 천근만근인 채 미리 수소문해 둔 이비인후과를 물어물어 찾아가 접수하고는 물 먹은 가마니처럼 대기실에 멍하니 앉아 순서를 기다린다. 헌데 이게 무슨 조화 속인지 두통이 사라졌다. 낭패다. 접수 전이면 한 번 더 생각해 볼 여유라도 있었을 것을. 이젠 늦었다, 그의 이름을 부른다. 진료실로 들어서서 의사에게 인사를 건넨 후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작은 의자에 앉았다. 미소를 머금은 의사가 묻는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나요? 뜨악한 표정으로 한 박자 쉬고는 그가 어눌한 말문을 연다. 지금은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 어디가 아프셨는데요?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있던 두통이 진료접수하고 바로 사라졌어요. 안 아픈데, 저 그냥 갈까요? 의사가 빙긋이 웃으며 진료의자에 앉을 것을 권하자 그는 좀비처럼 의사의 지시에 따라 조금 높은 그 의자에 올라앉았다. 이비인후과니 응당 이비인후를 모두 들여다보며 점검한다. 얼마나 오래 어느 정도로 어느 부위에 통증이 있었느냐, 무엇을 할 때 통증이 시작됐느냐, 통증이 지속되는 동안 어찌했느냐 등등 의사의 문진이 이어졌고, 그는 꼬박꼬박 답변도 놓치지 않았다. 잠시 후 손에 들었던 기구를 모두 내려놓은 의사가 그의 옆머리를 감싸 쥐고 슬쩍 누르며 좌우로 두어 번 흔들어보더니, 이번에 코 양옆을 꽤나 압력이 느껴지도록 양 엄지로 지그시 누른다. 이어 양 손을 풀고는 한 걸음 물러선 의사가 우두커니 환자를 바라보더니 혼잣말처럼, 하지만 다 들리도록, 웅얼거린다. , 머리에 있는 기관들이 몽땅 부실하네!

        뒤로 물러나 바라 본 이유가 있었다. 그는 꼬마 때부터 안경까지 꼈다. 허니 완벽하지 않은가 머리에 자리 잡은 모든 기관들이 부실하다는 결론이. 처방전은 없다. 대신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의사가 조근조근 진단결과를 내어 놓는다. 특기할 만한 병변은 없습니다. 허나, 부실하게 태어난 사람은 부실한 정도에 맞춰 사는 것도 일종의 지혜라면 지혜지요. 그러니 암벽등반은 좀 자제하면 좋겠습니다. 아니 높은 산에 오르는 것도 겨울철엔 삼가는 게 좋겠어요. 두통은 가라앉았지만, 갑자기 머릿속에서 지진이라도 나는지 쿵 소리가 울린다. ‘아니 산에를 가지 말라니, 나보고 그냥 죽으란 소리네.’ 생각과는 달리 그에게선 착한 어린 아이처럼 고분고분한 대답이 튀어나온다, ~.

        그 후로도 의사의 조언을 거스르는 무모한 산행은 수 없이 이어졌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건재하다. 물론, 그 의사의 조언을 염두에 두고 이런 저런 예방차원의 조치들을 사전에 꼼꼼히 챙겼던 것이 매번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일 수도. 어찌 되었거나, 독한 약 처방 하나 없이 세심한 조언만으로 환자로 하여금 두통을 떨어내고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며 살 수 있게 했으니, 그 때 그 분은 분명 명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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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영 2020-07-27 10:23:22
자신을 잘 안다는것도 하나의 방법인듯...
약한 곳을 알고 인정하고 살살 달래서 쓰는 지혜가 생기기를
저 자신에게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