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청술강언聽述講言 공부법
■ 송우영의 고전산책- 청술강언聽述講言 공부법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20.02.12 17:02
  • 호수 9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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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71세 나이에 춘추를 썼는데 노나라 서쪽에서 기린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춘추지우획린春秋止于獲麟이라는 문장을 쓰는 것으로 끝으로 왈,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하니 제자 자공이 놀라 묻는다.

스승님께서 말씀을 안하시면 어떻게 받아 적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그래도 사계절이 운행하고 만물이 생겨난다. 하늘은 아무 말 안하지 않느냐?”<子曰 予欲無言 子貢曰 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子曰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論語陽貨篇 17.19>

여기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글자는 이다. 즉 스승 공자에게 들은 것을 제자들은 쓰기를 통해서 학습했다는 말이다. 고대사회의 문맹률을 감안해 볼 때 경이로운 일임에는 분명하다.

이 문장은 성리학에 있어서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최초의 공부법 답변서인 셈이다. 공부는 들음에서 시작해서 씀으로 머릿속에 새겨 넣고 읽어서 새김을 하고 그것을 남에게 말함으로써 내 지식으로 삼는다. 이를 청술강언聽述講言이라 하는데 이하李賀의 부친 진숙공晋肅公4세 된 아들 이하를 이런 순서로 가르쳤다는 공부법이라 전한다.

이하는 당나라 때 시의 귀재라 불리던 불세출의 인물이다. 14세 때부터 악부를 지어 문명을 떨친 인물인데 당시 대문호 퇴지 한유의 집을 지나다 목이 말라 물 한 모금 얻어 마시려고 갔다가 문전박대 당하자 안문태수행雁門太守行을 지어서 종자에게 보내니 이 글을 읽어본 한유는 놀라서 버선발로 달려가 영접했다 한다. 이때 이하의 나이 17세 라 전한다.

당시 검찰총장격인 형부시랑刑部侍郞 퇴지退之 한유韓愈7세 때부터 공부를 시작해서 13세에 이르러 천하에 문명을 떨친 으리으리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이하의 글을 보고 명색이 검찰총장 직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선발로 달려가 맞이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하의 글재주가 남달랐다는 말인데 이는 이하가 17세 이전에 일반인이 요구하는 그 이상의 공부를 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후 한유는 평생을 이하의 후견인이 될 것을 다짐하는데 불행히도 이하는 26세에 요절한다. 이하는 26세 죽는 날까지 수많은 회유와 부탁에도 결코 과거시험을 응시조차 안했던 인물이다. 부친의 이름 진숙晋肅의 진과 과거시험 첫 관문인 진사과의 진이 글자는 다르지만 읽는 소리음이 같다. 하여 성훈聲訓<다른 글자이면서 같은 음을 성훈이라 함>이 같거늘 어찌 부친의 함자와 같은 이름의 과거시험을 볼 수 있겠는가라며 과시를 거부한 것이다.

성리학 시대에는 기휘忌諱라는 게 있어서 부모의 함자를 함부로 입에 올리는 일은 불경의 죄가 되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시가 총 240여 수라 전하는데 이를 모두 외우는 이가 중국의 대문호 루신이다. 중국 건국의 아버지 모택동 주석 그리고 고려 중기의 이규보, 조선 후기 17세의 도가풍 시인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등이다.

동명東溟161014세 때 진사 초시에 합격한 후 백사 이항복의 제자가 되는데 그전에 이미 이하의 시를 모두 외우고 있던 소년 귀재였던 것이다.

그가 이렇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모친 덕분이다. 그의 모친은 사헌부 장령 성재醒齋 광주光州 정씨 정이주鄭以周의 여식이며 그녀의 친정 어머니 평강 채씨平康蔡氏는 성종 111480년 진사시 장원한 채순蔡恂의 여식이다.

이하의 시문을 숭상했던 채순의 공부법은 소년등과일불행少年登科一不幸에 반기를 든 인물로 10대 등과를 목표로 공부했다. 공부에는 세 개의 길이 있는데<학업삼도學業三道> 그는 그 중 하나를 선택해서<위학일선爲學一選> 죽을 힘을 다해<사관매진死貫邁進> 공부했다. 그 세 개의 길이란 거부가 되는 도주공의 길. 관료가 되는 범중엄의 길. 학자가 되는 宋朝五賢의 길이다.

이에 채순은 더 이상 관료에 뜻을 두지 않고 진사로 머물며 송조오현宋朝五賢을 푯대삼아 家學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 여식의 후손에서 명필 시인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이 나온 것이다. 이렇게 공부해서 성공한 인물이 5년 독상獨相<5년 동안 홀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업무를 담당 했던 훌륭한 인물>의 체제공蔡濟恭이고 이를 모델로 삼아 공부한 이가 다산 정약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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