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공부를 하면 어머니께서 흐뭇해 하셨지”
■ 송우영의 고전산책 /“공부를 하면 어머니께서 흐뭇해 하셨지”
  • 송우영
  • 승인 2020.02.21 08:12
  • 호수 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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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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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 상채 땅의 지게꾼이었던 이사李斯는 꿈이 있었다. 40 중년의 나이에 현직에서 은퇴한 후 아들과 누렁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고향 야산에 나무하러 다니는 게 꿈이었지만 아들과 함께 저자거리에서 허리가 잘리는 형벌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이른바 소이부정所以不正, 인생을 바르게 살지 못한 탓이다.

훗날 동중서는 그의 인생을 이렇게 규정한다. “대저 정을 따르고<從情> 를 멀리 했으며<遠道> 재주는 좋았으나<善才> 옛 사람의 글로 스승삼지 않는 않음이<不師典故> 멸문의 화를 얻음이다.<得焉滅門之禍>”

진시황은 천하를 소유한 인물이요 이사는 진시황을 지배해 천하를 경영한 인물이다. 조나라에서 여불위의 머슴으로 종살이를 시작한 이래 남아가 어찌 푼돈에 목을 매랴.<남아하미경男兒何味頸> 공부해서 천하를 거머쥐리라.<위학이득상爲學而得相> 그렇게 다짐을 해서 인생을 개척한 운명의 사나이.

진나라 함양으로 옮긴 후에는 주군 여불위에게 여씨춘추를 쓸 것을 권했고 실제로 여씨춘추 대부분을 그가 썼다는 게 유가의 정설이다. 그런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으니 축객령이 그것이다. 축객령이란 진나라 안에서 벼슬하고 있는 모든 외국 국적의 벼슬아치들은 깡그리 사표 쓰고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법령이다. 이러한 진시황의 타국출신의 관료를 쫒아내는 축객령逐客令에 맞서 축객령의 부당함을 간하는 간축객서諫逐客書라는 상소로 간언諫言의 대미로 장식한 인물이 이사였던 것이다.

간축객서 말미에는 명문이 하나있는데 인류 최고의 경책으로 꼽는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았기에<태산불사토양泰山不讓土壤> 그 높음을 이룰 수 있었고<고능성기대故能成其大>,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에<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 그 깊음을 이루 수 있었다.<고능취기심故能就其深> 당연한 말이지만 그 당연한 말을 명문으로 이끌어 낼 줄 아는 능력은 공부가 짧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 부모들이 흔히 범하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 중 하나가 어려서는 조금은 놀아도 된다라는 생각이다. 그럼 뒷일은 누가 책임질 건데... 아직도 그런 위험천만한 소리를 겁없이 내뱉는 사람이 있는가. 어려서 하루 놀았다 치자. 늙어서 그 하루 놀은 대가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모든 어린이가 다 같이 하루 논다면이야. 문제는 나는 놀고 있는데 다른 집 아이들은 공부를 한다는 데 있다. 퇴계 이황은 7세 때 이웃마을 낙방거사에게 처음 소학공부를 시작해서 12세 때 숙부 송재松齋에게 논어를 배울 때까지 새벽 3시 이후로는 잠을 자본 일이 없다 전한다. 우암 송시열은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찌 소보다 늦게 일어나랴하며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했다 전한다,

어려서부터 공부해야 10대 후반에 가서 선택의 폭이 많아진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루 24시간 내내 공부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머리를 식힌다며 이것저것 잡된 일로 놀려하지 말고 독서를 하는 것으로 쉼을 갖으라. 그렇게 읽어낸 책이 1년에 100권 정도이다. 한훤당 김굉필의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기라성 같은 공부꾼들이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가난 속에서 도저히 앞이 안 보이는 칠흑보다 더 어두운 절망의 순간에도 끝까지 놓아서는 안 되는 끈이 있었다. 공부라는 거다. 엄마의 엄청난 등쌀에 아무런 불평도 내색도 없이 고스란히 감내하면서 그 힘든 공부를 무사히 마쳐낸 어린이가 있었으니 그 중 하나가 율곡이이다. 율곡 이이의 문집을 읽다보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부분이 댓 번 있다. 어려서 이렇게 까지 공부를 해야 하나 할 만큼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

하루는 사위 신독재 김집이 물었다. 왜 그렇게 공부를 많이 했느냐고. 율곡이 빙긋이 웃으면서 답한다. “어머니가 기뻐해서 그랬지. 내 어머니는 아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해 하셨어.” 김집의 제자 우암이 제자 남당 한원진에게 해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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