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겨울이 없었는데 봄은 있을까
■ 모시장터 겨울이 없었는데 봄은 있을까
  • 칼럼위원/시인 정해용
  • 승인 2020.02.26 14:51
  • 호수 9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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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매서운 추위고 없었고 대지를 뒤덮는 강설도 볼 수 없었다. 매서운 날씨가 일상생활에 좀 불편을 주기는 하지만, 건강한 자연을 위해서는 필수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겨울이 겨울다운 결기를 잃어버림으로 해서 제거되어야 할 병충해나 인간의 묵은 마음들이 고스란히 살아남았다. 이런 채로 다시 봄이 온다.

어정쩡한 겨울 기후가 마치 우리의 시국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3년 전인가. 무능하고 썩어빠진 정치에 지친 민심이 정치판을 뒤집어엎었다. 소중한 국민들이 죽어가든 말든 아무런 소신 없는 정치로 원성이 자자하던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국민들은 새로운 판을 짜주었다. 그만큼 적폐청산과 깨끗한 정기가 흘러넘치는 새로운 나라에 대한 국민적 기대도 컸다. 적폐청산은 추상같고 질풍노도같이 빠르고 정확하기를, 새로운 사회의 건설은 뜨거운 여름처럼 열정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국민대중은 기대했던 것이다.

조금의 소득마저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어쨌든 구시대에 무소불위의 힘으로 행세하던 사람들이 법정을 오가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복지후생의 온기는 보이지 않는 소외계층의 문지방까지 조금은 더 스며들었다.

그러나 국민들이 의문스러워하고 속 시원히 밝혀져 바로잡아지기를 바라던 지난 적폐시대의 의혹 대다수는 여전히 진전 없이 은폐된 채로 있다. 세월호사건의 진실, 천안함사건의 진실, 건실하던 공기업들을 수조원씩의 적자덩어리로 만든 이명박 정권 시절의 자원외교 비리의혹, 4대강 사업의 비리의혹 등등. 굵직한 국민적 의혹들에 있어서 정권이 바뀐 덕에 조금이라도 후련하게 밝혀졌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나.

그렇다면 과연 새 정권은 어떤 적폐를 청산한 것일까. 서릿발 같은 심판을 기대했던 국민들이 실망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오히려 민주당 내부의 경쟁자들을 드잡이로 내쫓는 내분이 먼저였고, 자신들이 세운 검찰에 의해 새 정권의 실세들 역시 청렴하고 참신한 개혁자들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지독한 아이러니를 보여주었다.

평소 때에 전 누더기를 걸치고 사는 사람에게는 흙탕물이 좀 더 묻는다 해도 거의 표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천사처럼 흰옷을 입고 정결을 외치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옷에 먹물 한 방울만 튀어도 그 오점이 돋보이는 법이다.

이러한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도 인간이라는 것을 국민이 왜 모르고 왜 양해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니 소소한 오류 정도는 사실 큰 문제도 아니다. 다만 실망스러운 것은, 그들이 스스로 지닌 오류들을 객관적 사실로서 인정하고 겸허히 양해를 구하는 대신 자기변명과 자기 파벌 감싸기로 국민의 비판에 전면 대항하는 태도로 일관한다는 점이다. 그러다가는 비판적인 시민들을 구시대 적폐세력의 일부와 똑같이 적대시해버린다. 오죽하면 신문에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의 과도한 층들을 비판하는 글을 쓴 칼럼니스트를 당이 직접 나서서 고소하고 번복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국민의 비판이 다소 도를 넘는 경우도 있고, 비판을 받는 입장에서 억울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고소라니. 민주당은 아주 신기한 정신상태에 이른 것 아닌가 놀라울 지경이다.

어쨌든 봄이다. 매서움을 잃은 이상한 겨울이 지나가고, 만물이 회생하는 봄이고 보니 작년에 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돌아오듯이 겨울을 무사히 넘긴 적폐세력과 병충해들은 총선의 봄바람 가운데 다시 쏟아져 나올 것 같다. 후안무치한 각설이들이 무사히 살아 돌아오는 건 자연 탓인가, 인간 탓인가.

그렇다고 적폐정권 시절로 되돌아갈래?” “그러면 이 무능을 더 보고만 있을래?” 이번 봄 투표장으로 가는 마음이 꽤나 착잡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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