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년을 위한 책 소개/(31)‘흰 개’-로맹 가리 작
■ 청소년을 위한 책 소개/(31)‘흰 개’-로맹 가리 작
  • 문영 작가
  • 승인 2020.03.11 16:37
  • 호수 9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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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을 앞세워 자행한 폭력에 대한 고발

그것은 회색 개였다,’ 이 책 본문의 첫 문장이다. 나는 회색 개를 왜 흰 개라고 했는지 궁금했다. ‘흰 개에 대해 사전 지식없이 로맹 가리라는 작가 이름만 보고 선택한 책을 펼쳤을 때의 첫 느낌이다.

작가 로맹 가리는 극적인 삶을 산 프랑스의 소설가다. 그는 동일인에게 두 번 수여하지 않는다는 프랑스의 콩쿠르 상을 두 번(한 번은 익명) 받았고,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미국의 유명 여배우와 결혼하는 등 화려한 인생 이력을 가졌으며,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프랑스의 ‘68혁명과 미국의 마틴 루터 킹목사 살해사건 등 인종차별주의에 저항하던 세력이 봉기하던 때이다. 또 월남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시기다. 나는 그 시기의 서구 현대사를 잘 알지 못해 이해가 쉽지 않았다.

책 속의 주인공은 작가 자신의 실명이고, 등장인물들 역시 실존 인물이 많았다. 사건 역시 실제 있었던 일이라 한다. 번역자는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언급하였다. 물론 그의 흰 개 바투카와 흑인 조련사 키스는 허구의 인물일 것이다.

킹 목사가 암살되기 전 로스앤젤레스의 영사로 부임한 로맹 가리는 운명의 개를 만나게 된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자신이 기르던 개를 따라 와 문 앞에서 애처로운 눈빛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기다리던 진흙투성이 개를 받아들인다. 그 개에게는 인식표가 없었으며, 주인을 찾아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만 그 개를 보호하기로 한다.

그 개는 흰 개였다. 백인의 손에 길들여지고 백인에게 충성을 바치며 오직 흑인만을 공격하게 사육된 개였다. 아주 오래전 남북 전쟁 이전부터 흑인 노예를 조련(?)하고 관리하기 위해 교육되어 조상 대대로 흑인을 공격하고 제압해야 한다는 유전자가 피 속에 각인된 흰 개였다. 바로 추노 군 개다. 그걸 알게 된 그는 주인이 찾으러 왔는데도 돌려주지 않는다. 동물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 그는 바투카의 우월한 유전자와 개가 자신에게 가지는 신뢰감 때문에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친구는 진정제를 놓아 흑인에 대한 증오심을 누그러뜨려야 한다고 권했지만 그는 주사 놓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훈련을 흑인 카스가 맡아 한다.

흑인 인권 운동에 참여한 그의 아내, 그들 부부는 그들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기 집을 그들의 잠자리와 집회장소로 제공하였다. 그러나 흑인들은 그들이 당했던 폭력을 그대로 답습하며 더 강퍅해져 간다. 한 개인의 바른 가치관도 군중이 되면 애초의 이념은 흔들리고 폭력적인 집단이 되어 이성을 잃은 개자식이 되어버리는 메커니즘에 작가는 염증을 느끼고 절망한다.

그는 자신의 개를 만나러 간다. 흑인을 공격하지 않는 개로 바뀐 바투카를 다시 만난 그는 ……. 그 만남을 잊으려면 자신이 아주 늙도록 살아야 할 것이라고 술회한다.

작가는 인간의 잔인성을 고발한다.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켜 절망한 개보다 못한 인간들이 이념을 앞세워 자행한 폭력에 대한 고발이고 자기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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