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백제부흥운동 현장 서천 (2)당의 기벌포 상륙①
■ 기획/백제부흥운동 현장 서천 (2)당의 기벌포 상륙①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0.03.18 15:54
  • 호수 9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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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벌포 도착 당군, 금강 어귀 도처에서 상륙작전 벌여

백제군, 천방산에 오른 당군과 20여일간 대치
▲천방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 끝자락 시초면 선암리. 신털메라 불린다.
▲천방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 끝자락 시초면 선암리. 신털메라 불린다.

서기 660년 당 고종이 좌무위 대장군 소정방을 신구도행군대총관으로 삼고, 당에 사신으로 가있던 김춘추의 둘째 아들 김인문을 부대총관으로 삼아, 수륙군 13만 명을 거느리고 백제를 치게 했다.

소정방이 거느리는 수륙군 13만의 당나라 군사들은 산동성 협주(莢州:오늘의 액현(掖縣)에서 출발해 1900여척의 병선에 나누어 타고 621일 신라의 영토가 된 덕물도(오늘의 덕적도)에 닿았다.

이때 신라왕 김춘추는 태자 법민으로 하여금 병선 1백 척을 거느리고 덕물도에 가서 소정방을 맞이하게 했다. 소정방이 법민에게 나는 710일 백제 남쪽에 도착하여, 대왕의 군사와 만나 의자의 도성을 격파하려 한다고 말했다. 법민은 우리 대왕께서는 지금 대군이 오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만일 대장군의 도착 소식을 들으신다면, 틀림없이 잠자리에서 식사를 하시고라도 달려오실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삼국사기 신라본기>

법민이 돌아와 정방의 군세가 매우 성대하다고 말했다. 왕은 기쁨을 금치 못하고, 태자와 대장군 유신, 장군 품일, 흠춘[춘을 순이라고도 함] 등으로 하여금 정병 5만을 거느리고 가서 응원하게 했다. 신라왕은 금돌성(상주시 모동면)에 머물렀다. 이러한 상황은 백제의 척후병들에 의해 속속 백제의 조정에 보고되었을 것이다.

소정방과 김법민이 덕적도에서 작전회의를 한 것은 621일이었으며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함락된 것은 710일이었다. 덕적도에서 금강 하구 기벌포까지는 뱃길로 하루면 올 수 있는 거리이다. 이로써 백제는 뭍으로 오르려는 당군과 맞서 20여일간 치열한 전투를 벌였음을 알 수 있다.

덕물도에서 휴식을 취한 당군은 금강 하구 기벌포로 향했다. 백제는 금강 어귀인 기벌포에 1차 저지선을 구축했다. 백제는 군사를 둘로 나누어야 했다. 기벌포로 상륙하려는 당나라 군사는 백제의 의직이 맡았다. 종천면 장구만에서부터 장항읍 장암리에 이르는 모든 해안에서 상륙작전이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산의 오성산에도 다섯 노인이 소정방의 군사에게 길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당시의 해안선을 살펴보면 기벌포가 있는 금강하구는 강이라기보다는 바다에 가까웠다. 따라서 많은 수효의 당군이 금강 어귀 도처에서 상륙작전을 벌여 백제의 1차 저지선을 공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당군의 상륙작전의 구체적 상황은 사서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당군의 기벌포 상륙의 어려움을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장군 소정방, 김인문 등이 연해안을 따라 기벌포로 들어왔는데 해안이 진흙탕이어서 빠지므로 다닐 수 없어 버들자리를 펴 군사들을 나오게 했다.(將軍蘇定方 金仁問等沿海入依(依當作技)伐浦 海岸泥 陷不可行 乃布柳席以出師)”

 

시초면 선암리에 있는 신털메는 이러한 기록을 뒷받침하고 있다. 신털메는 해발 20여미터의 낮은 구릉이이다. 옛날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당나라 군사들이 진흙 뻘을 지나온 후 이곳에서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서 신털메라는 지명으로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신털메를 통해 뭍으로 오른 당군은 천방산에 진을 치고 백제 주력군이 있는 가림성과 대치했다.

<허정균 기자>

 

천방산과 소정방

 

문산면에 있는 천방산에는 당의 소정방에 얽힌 전설이 전해내려온다. 소정방이 천방산을 지나 사비성으로 진격하려고 하자 천방산 절에 있는 스님이 말했다.

이 산을 넘어가려면 천일을 부처님께 제사를 지내야 무사히 넘어갈 수 있습니다

소정방은 천일이면 전쟁이 끝날 것인데 어떻게 천일 동안 제사를 지낸단 말이냐고 말했다. 그래도 천일을 제사지내야 한다고 스님이 말하자 소정방은 궁리 끝에 방을 천 개를 짓고 제사를 지내면 천일을 제사 지낸 것과 같을 것이라 말하고 군사들을 시켜 30일 동안 방 천개를 짓도록 했다.

31일째 되는 날 소정방은 부처님께 제사를 지낸 후 사비성을 공격에 나서서 백제가 멸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비성이 함락된 후 천방산에 있는 방 천 개 때문에 백제가 멸망했다고 백성들이 빈대를 잡아 천방산 방마다 스님들 몰래 옮겨 놓았다고 한다. 빈대 때문에 견딜 수 없었던 스님들은 빈대를 잡겠다고 방 1개만 남기고 모조리 불태워 없애버렸다. 천방산은 백제 멸망 후 방이 천 개라고 해서 천방산이라 불렸다.

다른 전설로는 소정방 군대가 우기를 만나 더 이상 진군하지 못하고 천방산에다 방 천개를 짓고 한 달 동안 비를 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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