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20.03.24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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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官僚가 지켜야 할 사불삼거四不三拒

5세 때 대학과 중용을 읽은 이가 매월당 김시습인데 5세 신동으로 조선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인물이다. 오죽하면 세종대왕도 그에게 탄복해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나라를 위해 크게 일 해달라고 부탁을 할 정도였다. ‘소년등과일불행탓인지는 몰라도 그의 삶은 천재성에 비해 철저하게 불운했다.

5세 때 문장을 지어 천하를 놀라게 한 인물이 있는데 사기沙磯 이시원李是遠의 손자 이건창이다. 강화학파의 종통을 이은 사기沙磯는 병인양요 당시 76세의 고령이었다. 강화유수 이인기李寅夔는 도망쳤고 유수부 내의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어진을 비롯한 서책과 유물들이 약탈당했다.

이시원은 나라가 도탄에 빠졌거늘 선비 하나쯤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손자 이건창 앞으로 절명시를 남기고 두 살 아래 동생 이지원과 함께 비상을 마시고 절명한다. 역사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한 선택인 셈이다.

현대에 이르러는 호암 이병철은 6-7세 때 논어맹자를 읽었다 전하고 아산 정주영은 9세 때 대학 책을 읽었다 하는데 조선 대학자 퇴계 이황이 12세 때 논어를 읽은 것에 비하면 상당히 빠른 경우다. 호암과 아산은 논어 맹자 그리고 대학을 읽으면서 공자가 아닌 그의 둘째 수제자 자공을 기준으로 공부했던 탓일까? 그의 후손들은 아직도 그가 벌어놓은 돈으로 떵떵거리며 산다.

주자학에서 자공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저 어쩌다 운 좋아서 돈 많이 번 정도이지만 성리학에서 자공은 학의재술學醫財術 중에서 학과 재와 술로 통하는 삼학三學을 통달한 불세출의 인물이다. 이런 자공을 기준으로 오로지 술로만 공부한 인물이 전국시대 귀곡자이고 그의 문도들이 손빈 방연 소진 장의 맹자에 나오는 공손연으로 이어지며, 또 한축으로는 상앙을 비롯하여 순자와 이사 그리고 한비자에 이른다. 그야말로 오롯이 술만으로 인생에 정점을 찍은 사람들이다.

조선 선조 때에도 이렇게 공부한 이가 있었으니 예문관 시강侍講봉교奉敎 김경첨金慶添이 그다. 하루는 경연經筵에 입시한 그가 선조의 용안을 보고는 마뜩치 않아하며 했다는 말이 궐내를 발칵 뒤집어 놓는다.

전하. 전하의 용안을 살펴보건대 도대체 어젯밤에 여색을 얼마나 밝혔으면 용안의 몰골이 그 지경이란 말입니까<앙견천안仰見天顔 공불능원색恐不能遠色>” 라며 중용 20장 거참원색去讒遠色<참인을 버리고 여색을 멀리 하라>의 예를 들어가면서 꾸짖었던 것이다. 선조가 불같이 화를 내며 저런 놈은 임금 능멸 죄로 사지를 찢어야 한다 하니 퇴계의 18문도 외방 제자 출신 정승 소재穌齋 노수신盧守愼이 그를 두둔하기를 그는 어려서부터 관료官僚가 되기 위해 공부한 사람이옵니다. 그런 사람을 함부로 내쳐서는 안 됩니다라며 억색抑塞한 국면을 간신히 수습했다.

여기서 주목할 말은 관료官僚이다. 관료官僚에게는 불문율不文律이 있는데 사불삼거四不三拒. 이는 조선 관료사회에서 청렴도淸廉度를 가르는 기준基準인 셈인데 해서는 아니 될 네 가지와 반드시 거절해야 하는 세 가지를 말함이다. 공직이라는 막중한 직위에 더군다나 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공직자公職者는 재임在任 에 절대絶對로 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가 있다.

1.부업副業을 하지 않으며 2.땅을 사지 않으며 3.집을 늘리지 않으며 4.재임지의 특산물을 먹지 않는다.

또 거절해야 할 세 가지는 1.윗사람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며 2.을 들어준 것에 대한 답례를 거절하며 3.경조사慶弔事의 부조扶助를 거절함이다.

우의정 김수항은 그의 아들이 죽었을 때 장례품으로 쓰라며 무명 한 필을 보낸 지방관을 벌주었으며, 풍기군수 윤석보는 아내가 시집 올 때 가져온 비단옷을 팔아 밭 한 뙈기를 산 것을 뒤늦게 알고는 군수 직에서 물러났으며 대제학 김유는 지붕 처마가 너무 작아 비가 들이쳐도 단 한치도 늘리지 못하게 했다 전한다.<이수광 朝鮮의 방외지사 인용>

전통 유가에서는 자녀가 태어나면 아들 딸 구분 없이 공부를 시키는데 아들의 경우는 관료가 될 것이냐, 그냥 낮은 직급의 공직자가 될 것이냐에 맞춰서 공부를 시키며 딸의 경우는 관료의 아내가 될 것인가 아니면 관료를 길러내는 어머니가 될 것인가에 방점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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