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읽어야 할 책이 있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읽어야 할 책이 있다
  • 송우영
  • 승인 2020.04.23 16:23
  • 호수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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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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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끝에는 반드시 만나는 세 개의 길이 있다. 천하웅패를 자웅하는 군주의 길, 군주를 등에 업고 국가를 이끌어가는 신하의 길, ‘그냥 이대로 살다가 이대로 가련다하는 독야청청 백면서생의 길이 있을 것이다.

어느 길 어떤 인생을 살든 거기에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있는데 사서의 첫 권이라는 대학이다. 7세 때부터 대학을 읽고 쓰고를 반복했었다는 진덕수眞德秀는 대학을 평하길 천하에 임금된 자들의 율령律令이며 격례格例이다라 했다. 그러면서 대학 책에 자신의 생각을 연과 의로 엮어 4312책의 대학연의를 완성했다. 송나라 구종석寇宗奭이 편찬한 본초연의本草衍義에 따르면 衍義에서 연이란 속어를 인용함이요 의란 역사적일을 풀어씀이다.

물론 이 책은 읽기는 군주도 신하도 범부도 읽어야 하지만 필요는 군주를 위한 책이다. 정관정요와 견주어 볼 때 정관정요가 당태종의 바른생활의 기록이라면 대학연의는 당 태종을 칭찬하면서도 시종비판적 관점을 유지한다. 또 율곡의 성학집요와 견주어 본다면 대학연의는 서술적 설명에 가깝고 성학집요는 압축적이면서 핵심만 콕콕 찍어 놨기에 읽는데 속도감이 있다. 물론 성학집요가 대학연의를 저본으로 썼음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대학연의가 놓치고 간 부분을 율곡은 성학집요에서 보주補註를 했음이다.

각설하고. 진덕수는 대학연의 서문序文에서 이렇게 밝힌다. 임금된 자가 대학을 몰라서는 안되며 신하된 자가 대학을 몰라서도 안된다. 대학을 모르고 임금이 되면 치세治世를 이끌어내는 근원을 맑게 할 수 없으며 대학을 모르는 자가 신하가 되면 임금을 바로잡는 법을 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본령은 대학 첫 줄인데 곧 삼강령으로 지도자가 되려는 자는 자신의 으로 남을 하며<明明德> 으로 인해서 백성들에게까지 친함으로 다가가며<親民>, 결국 그 은 세상을 지극한 선에 머무르게 한다.<止於至善>

여기까지가 삼강령三綱領이고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1. 어려서부터 공부가 있어야 하고<格物> 2. 그 공부로 지식이 박문博問해야 하고<致知> 3. 지식이 넓은 만큼 뜻이 진실하여<誠意> 4. 마음이 지식과 더불어 인성으로 바르며,<正心> 1-4 여기까지 공부가 된 다음에 5. 몸을 닦으며<修身> 6. 가정을 이루고<齊家> 7. 나라를 다스리고<治國> 8. 평천하에 이른다.<平天下>

그런데 진덕수는 대학연의를 풀면서 팔조목의 6까지는 풀었으나 7조목 치국편과 8조목 평천하편은 풀지 않는다. 여기에는 많은 이설이 있지만 차제하고 훗날 1487년 명나라 학자 구준邱濬이 이를 보주補註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를 장장 160권에 걸쳐 풀어낸다. 그런데 여기도 궐문이 있었으니 배천配天과 경천敬天의 일을 풀어낼 역량이 안됐던 것이다. 이를 보망하기 위해 회재 이언적이 쓴 책이 중용구경연의中庸九經衍義라는 제하의 책이다.

일종의 완결판인 셈인데 결론은 간단하다. 구경九經은 국가를 다스리는 경세에 대한 실천론으로 원칙을 맹자의 항유恒有항상恒常이요 근본은 성곧 성실함이다. 한국 기독교 성경주석사의 그야말로 전설적인 존재, 논어맹자를 비롯한 성리학 칠경서를 외운다는 정암 박윤선 박사는 회재의 이 책을 경전 주석사에서 한 획을 그은, 전에도 없고 이제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기념비적인 책이라 말한 바 있다.

구경九經은 노애공哀公이 정치를 묻자 공자가 답한 것을 그의 손자 자사가 증자에게서 듣고 적어놓은 중용中庸 20장의 글인데 여기서 중용의 구경과 대학의 팔조목이 합쳐 구경팔조九經八條라는 말이 생겨난다. 구경九經이란 나라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벼리의 치국 요결이라 하여 수신修身·존현尊賢·친친親親·경대신敬大臣·체군신體群臣·자서민子庶民·내백공來百工·유원인柔遠人·회제후懷諸侯이며 대학의 팔조목은 표가 되고 중용의 구경은 리가 되어 표리치보表裏治寶라 불리는 서로 對句를 이루는 요결要訣이다.

고래로 요결이라는 것은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애써 만들지 않으면 늘 없는 것이 시간이지만 억지로 시간을 내서라도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 고전을 읽으면 다르면서 괜찮게 사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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