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 서천 출신 이형구 교수의 ‘발해 연안 문명’
■ 책소개 / 서천 출신 이형구 교수의 ‘발해 연안 문명’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0.05.28 15:11
  • 호수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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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발해 연안 문명’

이형구 교수, 고조선의 뿌리 홍산문화 등 밝혀
▲‘발해 연안문명’ 표지
▲‘발해 연안문명’ 표지

문명은 문화보다 조금 큰 개념이다. 요하문명은 지금의 하북성, 내몽골, 요녕성 등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신석기문화부터 청동기 문화로 이어지는 고대문명이다. 홍산문화는 그 요하문명 중의 한 문화로 요하문명의 한 틀을 이루고 있다.

요하문명은 서기전 8000년에 시작하는 신락문화부터 시작하며 홍산문화는 서기전 5000년 전부터 시작한다. 이 문화가 우리 고조선으로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문명이자 문화이다. 홍산문화라고 이름 붙은 것은 내몽골의 적봉이란 도시에서 나왔다. 적봉시에 홍산구가 있다. 내몽골의 산은 대부분 빨간색이다.

이 문명은 도리이 류조(1870~1953)라는 일본인 고고학자에 의해 20세기 초에 알려졌다. 이 사람은 내몽골지역을 다니다 그 지역에서 적석총을 많이 보게 되었다. 돌로 무덤을 만드는 것은 우리민족 고유의 매장 풍습이다.

도리이 류조는 이쪽 지역에 중원의 황하문명과는 아주 다른 형태의 다른 문명이 있다는 것을 처음 이야기 했는데 그때만 해도 별 반향이 없었다. 그러다 1931년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켜서 청나라 마지막 황제 선통제 푸이를 초빙해 만주국을 수립했다. 만주국은 4개의 성, 열하 흑룡강 길림 요녕성에 약 3000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일제는 만주국을 다스리기 위해 정교한 프로그램을 짰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만주를 중국의 장개석 정권과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만주와 몽골을 일본인들은 만몽이라 불렀는데 만몽은 중국과 다르다 해서 만몽분리정책을 쓰게 된다. 만몽분리정책의 학문적 토대가 요하문명, 홍산문화라 볼 수 있다.

▲서천 출신 이형구 교수
▲서천 출신 이형구 교수

일제는 만주국을 다스리기 위해 오족협화정책을 쓴다. 오족이란 한족, 조선, 몽골, 일본을 말한다. 일제의 만주국 지배 핵심은 만주와 몽골지역을 중국에서 분리하는 정책이었고 이를 위해 홍산문화를 이용하게 된다.

일제가 이런 식으로 역사학을 주장하자 중국에서는 이에 맞서 동북의 4개 성을 잊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1930년대에 들어서 홍산문화를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의 분쟁이 상당히 격해졌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면서 쫓겨나게 되자 중국에서 이쪽 지역의 발굴에 나서서 홍산문화, 요하문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도 1987년까지만 해도 이민이란 학자가 나와서 홍산문화의 주인공은 조이족이다라고 주장했다. 즉 홍산문화는 동이족 문화라고 중국학자가 주장했다. 그러자 장박천이란 학자가 나와서 홍산문화는 조이족문화가 아니라 황제족 문화다라고 주장했다. 중국문화는 황제 헌원에서 비롯되는데 황제의 손자의 전욱족이 만든 문화가 홍산문화이고 요하문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요하문명은 중국문명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황제족이 만리장성 북쪽까지 와서 활동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국에서 민족을 나누면 동이족과 하화족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화족 문명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중국쪽에서는 요하문명도 중화문명의 한 부분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국가차원에서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남한의 강단사학자들은 요하문명에 대해서 연구 자체를 안한다. 우리 고조선 고구려 선조들이 활동하던 지역에서 그런 고대문명이 나왔으면 일단 당연히 호기심이 생기게 돼있고 가서 연구를 해봐야 되는데 연구도 안하면서 우리 것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려 오히려 중국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다만 민족 사학계 쪽의 여러 학자들이 홍산문화에 대해 깊이 연구해서 우리쪽으로 연결되는 동이족 문화다라고 연구 결과들을 발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요하문명은 황하문명보다 시기가 상당히 빠르다. 중국 황하문화의 핵심이 앙소문화인데 이는 서기전 5000년 전의 문화이다. 서기전 8000년 전의 요하문명 신락문화와 비교하면 요하문명이 황하문명보다 3000년이나 빠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문명들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 역사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비파형동검과 고인들 출토 지역과 고조선의 세력권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비파형동검과 고인들 출토 지역과 고조선의 세력권

이형구 교수는 우리 민족 고유의 빗살무늬 출토가 시베리아의 것이 한반도와 발해 연안에서 출토되는 것보다 1000년 이상 늦다는 점에 주목하고 발해 연안문명을 제창했다. 우리 민족은 한반도와 발해연안, 곧 요동반도와 산동반도, 만주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일찍부터 살아왔다는 것이다. 서양의 이집트 문명이나 에게해 문명보다 더 연대가 앞선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명이다. 그래서 우리민족의 원류를 추구하려면 시베리아보다는 발해연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발해연안문명은 위에서 말한 요하문명과 홍산 문화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형구 교수는 약 40년간 발해연안 문명을 연구하여 홍산문화와 고조선, 갑골문자 등에 독보적인 업적을 이루었으며, 상생방송에서 강의한 내용을 엮어 2015발해연안문명을 펴냈다.

기산면 출신의 이형구 교수는 홍익대학교를 졸업, 국립대만대학교 문과대학 고고인류학과 기본과정을 이수했고, 동 대학원 고고인류학과에서 문학석사, 역사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만 고궁박물관 객원연구원, 대만 중앙연구원 역사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역임하였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자료조사실 실장, 동 역사연구실 교수 겸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현재 선문대학교 석좌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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