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추억을 팔아요
행복과 추억을 팔아요
  • 최현옥
  • 승인 2003.12.19 00:00
  • 호수 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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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숨은 노력은 대박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지역 경기 여파로 사람들이 떠나가는 장항의 거리, 스산한 겨울 바람은 더욱 차게만 느껴지고 사람들은 찬바람에 표정을 일그리며 옷깃을 여민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까지 꽁꽁 얼려버린 겨울을 따뜻하게 녹이는 곳이 있다.
“가슴 한가득 붕어빵을 들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저도 덩달아 행복해 지는 것 같아요”
장항읍 창선리 주택가 골목에 자리 잡고 붕어빵을 파는 신윤종(남·35)·곽현숙(여·29)씨 부부. 빵이 익기를 기다렸다 사가는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부부는 오늘도 겨울철 길거리 음식의 대표주자인 붕어빵이 삶이 고단한 서민들에게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닌 행복의 매개임을 확인한다. 붕어빵은 온갖 화려한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천원짜리 한 장으로 사람들의 궁금한 입을 다스려 주고 즐거움을 선사하는 보증수표임을 확인하며 보람을 찾고있다.
“처음에 남편과 노점 일을 시작할 때 창피한 것도 몰랐어요. 오직 배속에 아이만 생각했죠”
남편 신씨를 따라 운수업을 하기 위해 장항에 찾은 곽씨는 IMF 여파로 사업이 부도나면서 거리에 앉게 됐다. 전세방은 고사하고 빵틀을 장만할 백만 원도 없었던 부부는 서천지역에서 처음으로 ‘황금잉어빵’ 체인점을 시작했다. 곱게 자랐던 탓에 고생을 몰랐다는 그녀, 하지만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면 자존심이란 건 없는지 오래다.
“지역에서 처음으로 잉어빵을 시작해서 그런지 사실 저희 집은 처음부터 장사가 잘됐어요. 저희는 지금도 경기가 안 좋다는 말을 실감하지 못할 정도예요”
인터뷰가 불가능할 정도로 계속 모여드는 손님들. 부부가 만드는 붕어빵의 인기몰이를 실감케 한다. 초창기 빵을 만드는 기술도 없던 시절에도 자동차가 줄을 설 정도로였다는 부부는 5년이라는 시간동안 빵틀에 반죽을 붓는 양과 익는 시간 등 눈을 감고 빵을 만들 수준이 됐다. 그 맛도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서천을 비롯해 군산 등 외지에서 찾고 있다. 부부는 현재 한달 붕어빵 매출액이 6백여만원 정도로 적은 자본으로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2년 정도 장사를 하니까 우후죽순으로 잉어빵 노점이 늘어나서 매출이 50%로 줄었어요. 그래서 젊은 층을 겨냥한 아이디어를 냈죠. 붕어빵 안에 피자 재료도 넣어봤어요. 현재 인기를 모으는 고구마 붕어빵은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 낸 것입니다”
최소자본의 대박, 그것은 단순한 노력만으로 이룬 것이 아니다. 붕어빵 안에는 항상 팥만 들어간다는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난 발상의 전환이 오늘의 성과를 가져다 줬다. 부부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숨은 노력은 황무지인 장항지역을 옥토로 바꾸는 역할을 하고있다.
“다른 것은 속여도 사람들의 입은 못 속여요. 저희를 믿고 애용해 주는 단골들을 위해서 재료도 항상 최상의 것을 사용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어묵 육수도 저만의 노하우로 만들고 있습니다”
최상의 재료를 찾다보니 평택에서까지 재료를 주문해 쓰고있다는 부부는 기본부터 충실해야 한다는 신념과 정직을 신용으로 장사에 임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맛은 계속 개선되는 붕어빵을 만드는 것이 현재의 목표이다.
“저희집 손님은 다들 단골이라 가족처럼 지내는데 손님이 많아 주문을 받지 못할 때가 미안하죠. 그리고 멀리에서 빵을 먹겠다고 온 손님들이 오래 기다릴 때도 역시... 미안해요”
인터뷰가 길어지면서 저녁이 어스름해 지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고객들이 기다림에 지쳐 다시 오겠다며 발길을 돌리자 부부는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종종 학교나 어린이집에서도 간식으로 주문이 밀려드는데 못해주는 경우도 많다.
“장항에 처음 왔을 때 고향과 비슷해서 거부감은 없었지만 자꾸 경기가 어려워지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그렇다고 장사가 안 된다고 한탄만 하면 뭐해요. 노력을 해야죠. 저는 이 지역에서 가장 열심히 살아간다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행복하고 앞으로도 그런 말을 들으며 살아갈 거예요”
2년 전 친척이 물려준 과일가게를 겸하면서 붕어빵을 만드는 것은 부업이 됐다는 부부는 지역에서 성실하기로 소문이 났다. 새벽 5시에 시작되는 장사준비, 신씨를 제일 싱싱하고 맛있는 과일을 사기 위해 익산까지 나가고 있으며 곽씨는 오후 장사를 위해 남편이 오기 전까지 붕어빵에 들어갈 재료를 만든다.
“사람들은 그 돈 벌어서 다 뭐하냐고 묻는데.. 이제야 겨우 허리를 펼 수 있게됐어요. 그동안 진 빚을 갚았거든요”
장사 일에 바빠 자녀들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다는 곽씨는 백일 된 자신의 딸이 시어머니가 엄마인줄 안다며 가슴아파한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열심히 살아가는 부모로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일 수 있어 뿌듯하다.
“아직 젊어서 몸이 고단한 줄 모르고 일했는데 요즘은 아픈 데가 많아요. 그렇지만 너무 바빠서 병원간 시간도 없어요”
그동안 삶에 쫓겨 몸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는 곽씨는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내년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며 흐뭇해한다.
“붕어빵이 얼듯 보기에는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추억이라는 양념이 더해지면서 붕어빵은 사람들에게 좋은 먹거리가 되는 것 같아요”
자신이 붕어빵 아줌마가 될 줄 상상도 못했다는 곽씨는 갓 구워져 나온 붕어빵을 이손저손 옮겨가며 야금야금 배어먹는 꼬마아이를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며 붕어빵이 추억의 매개체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때 추억을 회상하며 붕어빵을 만들면 더욱 맛있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며 미소를 짓는다.
점점 어려워지는 지역 경기 속에서도 대박의 꿈을 실현하는 부부. 숨은 노력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은 맛깔스런 붕어빵 향기에 묻어 구미를 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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