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 대한 이해가 사랑이지”
“서로에 대한 이해가 사랑이지”
  • 최현옥
  • 승인 2003.12.19 00:00
  • 호수 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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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유통기한을 잃어버린 노부부는 백년을 해로하고 있다
의학책에 따르면 사랑의 유통기간은 상대방이 누구이건 간에 뇌 속의 세로토닌이 다 없어지는 2년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랑은 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욱 힘들고 젊은 세대들의 냄비 같은 사랑은 지적의 대상이 된다.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결혼식 날 마음에 세긴 주례사의 말을 근본으로 삼아 백년을 해로하는 부부가 있어 찾았다.
문 없는 마당에 들어서자 토방에 무를 썰어 말리는 이연복(79·여·마서면 덕암리)씨와 그 옆에서 따사로운 햇볕을 쬐고있는 조영규(83·남)씨 부부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주고받는 대화는 없지만 다정하게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은 금실의 어원이 거문고와 비파의 소리 어울림 금슬에서 나왔다는 것임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한다.
“금실이라는 게 따로 있나? 서로 이해하고 아끼는 거지…”
사랑의 유통기간이 지난 지 너무나 오래돼 부패의 흔적도 찾아보기 힘든 두 부부,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방부제라도 먹었는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부부의 금실은 주변에서 먼저 알아준다. 가난하지만 사랑의 힘이 있었기에 삶이 가능했다는 부부는 서로가 버팀목이 되고 있다.
“내가 이 사람을 만난 것은 16살 먹어서여. 아이구∼ 그때 세상은 남편 얼굴도 못보고 그냥 어른들이 결혼을 성사시켰어. 우린 그렇게 만났어”
꿈 많던 소녀시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집을 왔다는 이씨. 그래서 어쩌면 두 부부는 이해라는 것이 더욱 기초가 됐는지도 모른다. 서로를 맞춰볼 시간적 여유도 없었으므로 서로가 한발 물러서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봤던 것은 아닌지.
“병원이나 시장 갈 때 허리가 굽은 나를 데리고 꼭 같이 외출을 해. 저 자전거가 우리의 유일한 교통수단인데… 서로 몸이 안 좋다 보니까 손도 잡아주고 길도 안내하고 그러지, 사람들은 그게 좋아 보이나봐”
귀가 어두운 조씨와 디스크로 허리가 심하게 굽은 이씨, 그들은 외출을 하면 로봇 태권V처럼 몸이 합체가 되어 서로의 다리와 귀가된다.
“그래도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야. 이 놈의 가난이 늙어 죽도록 지긋하게 따라다니지만 평생 부부싸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영감이 나를 이렇게 아껴주니... 그래서 그 동안의 어려웠던 삶도 견디어 냈는지도 모르지”
과거 동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 가난은 필수 요건이다는 이씨. 지금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마음놓고 병원도 못 가지만 남편 조씨와 일평생을 함께 한 것에는 후회가 없다.
“그 놈의 가난,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신식으로 다들 잘 살지만 가난을 핑계로 가족이 동반자살하는 것을 보면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 같은 노인네들도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데 말여.”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가난을 비관해 동반자살한 가족의 소식을 전해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씨는 과거 끼니조차도 때울 수 없어 굶기를 밥먹듯 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요즘은 세상이 너무 좋아졌다. 늙은 나이에 친척이 집을 저당 잡혀 현재 남의 전셋집에서 소작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이씨의 바지런함은 눈을 돌려봐도 쉽게 찾을 수 가 있다. 풀 한 포기 없는 마당, 처마 밑 길게 걸어놓은 호박고지, 티끌하나 찾기 힘든 방안 등 집안 곳곳 생의 흔적이 역력하다.
“아이구∼ 이 사람이 나보다 먼저 죽어야 할 텐데. 요즘은 그것이 걱정이야. 40대부터 앓아온 위궤양으로 몸도 쇠약하고 귀도 어두운데 나 마저 없으면 이 세상 어떻게 살어”
고혈압과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이씨는 남편 조씨를 바라보며 만약의 경우 자신 없이 초라하게 살아갈 모습에 가슴이 아파 온다고.
“평생 고생만 시키고 허리도 고쳐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리고 지금처럼 앞으로 서로 아끼며 살자”
귀가 어두운 조씨에게 그 동안 부인 이씨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으면 하라고 청하자 가슴에 묻어놨던 말을 풀어놓는다. 인터뷰 끝날 때까지 귀가 어두운 남편에게 통역을 하던 부인 이씨.
조씨는 이씨에게 말한다.
“가난했지만 당신이 있어 행복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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