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늦었지만 그럼에도 공부하면 길은 있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늦었지만 그럼에도 공부하면 길은 있다
  • 송우영
  • 승인 2020.06.18 10:09
  • 호수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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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의 학계學戒중에 단도직입單刀直入이라는 공부법이 있다. 수행법의 하나로 문자를 그대로 풀어쓰면 한 자루의 칼을 들고 홀로 거침없이 적진으로 뛰어든다는 말인데 목표를 정하여 오롯이 용맹정진勇猛精進하라는 말이다.

이 말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卷第十二 민덕화상旻德和尙 가 그 출전으로 그 내용 기미는 이렇다.

위부대각魏府大覺선사 법사法嗣에 여주 징심원 민덕 스님이 있었는데<廬州澄心院旻德和尙> 그가 흥화에 있을 때<在興化時> 흥화 스님이 대중에게 말했다.<遇興化和尙示衆云> “만일 학생이 공부라는 전쟁에 장수로 나서거든<若是作家戰將> 오직 한 자루의 칼만을 몸에 품고 거침없이 들어가<便請單刀直入> 두 번 다시 말이 나오지 않도록 끝장을 봐야한다<更莫如何若何>”는 상당히 결기에 찬 말이었다.

물론 공부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어서 오죽하면 왕도가 없다라는 말까지 나왔겠냐마는<學也無道無正無庶無王> 단도직입 공부법이야말로 꽤 덤벼볼만 한 공부법일 수 있다. 철종 때 한성판윤을 거쳐 대사헌과 이조판서를 지낸 서유훈의 삶이 이에 딱 들어맞는 인생이라 할 것이다.

젊은날 서유훈은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월곡 오원吳瑗의 월곡집月谷集을 꽤 즐겨읽었던 모양이다. 그중에 유풍악일기遊楓嶽日記 같은 글은 세상에 한발 물러서 관조하는 도학자적 문장들로 가득한 명문 중의 명문이다. 일기 한편을 옮겨본다.

 

5일 맑음<五日晴> 해가 뜨자 길을 나서<日出發行> 정자 그늘에서 점심을 지어 먹고<午炊樓院> 동쪽정자에 올라앉아 쉬는데<止東亭坐憇> 녹음은 산에 가득하였고<綠陰滿山> 샘이 넘쳐흐르니 옥 구르는 소리 같다<瀑泉淙琤> <옛 선인들은>나는 내 집이 좋다 라고 했는데<吾愛吾廬> ‘과연 나는 내 집이 좋다라는 말이 참으로 맞는 말이다.<眞實際語也>

 

여기서 오애오려吾愛吾廬는 도연명陶淵明의 독산해경讀山海經 시에서 새들도 깃들 곳 있어 좋겠지만<衆鳥欣有托> 나 역시 내 움막집 사랑한다오<吾亦愛吾廬>가 출전이다. 후일 영조 때 철학자 홍대용洪大容은 자신의 택호를 애오려라고 할 정도로 吾愛吾廬라는 단어는 선비들에게 사랑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서유훈은 어쩌다가 방외지사의 서정이 묻어있는 사마도외적인 문장들을 탐독하게 되었는가. 그의 선대조가 서종제<서재필의 8대조>로 그의 여식이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다. 가문으로 치면 명문가 후손이 분명하나 서종제의 자식들은 크게 현달하지 못했다. 나라에서 임금의 사돈 집안인데 굶겨죽일 순 없어서 그의 아들 서인수徐仁修를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삼아 끼니는 거르지 않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아버지 서기수 때에 이르러 공부를 해서 1792년 정조16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801년 순조1년 증광문과에 갑과甲科 3등으로 급제하여 한림원 기거주翰林苑起居注로 임명되지만 당쟁에 휘말려 하루아침에 집안이 멸문의 화를 당해 함경도 갑산으로 귀양살이를 갔다. 이때 서유훈의 나이 12세다. 충격받은 아들 서유훈은 공부에 크게 미련 두지 않고 자연친화적인 글을 탐독하게 된다.

문제는 자연친화적으로사는건 좋은데 생계가 안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가정을 책임져야 할 가장인 아버지는 귀양을 가서 언제 해배될지 기약이 없고 아들은 죽기 살기로 공부를 해서 가문의 명예회복을 해도 될까말까 한 판국에 먹고사는 공부하고 거리가 먼 저런? 글만 읽고 있으니 지켜보는 가족의 심정이 어땠으랴. 나이가 들어 방외지사적인 삶을 정리하고 공부를 하려하니 습관이 몸을 자꾸만 놀게 하더란다.

그래서 선택한 공부법이 단도직입공부라 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로지 과거시험만 준비하는 시험을 말한다. 기한은 붙을 때까지. 이에 대한 방법론으로는 집 밖을 나서지 않는 것으로 준칙을 삼았다 하니 꽤 지독한 공부임에 분명했다. 지독하게 공부한 결과 3년 후 34세가 되던 해 1828년 순조28년 식년시에 생원 310위로 합격하였으며 아버지 사후 3년만인 1837년 헌종343세 나이로 정시에서 갑과 1위로 문과 장원하였다. 아버지 생전에 합격했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라며 크게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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