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로 인생을 바꿔보겠다는 고집
■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로 인생을 바꿔보겠다는 고집
  • 송우영
  • 승인 2020.06.24 18:44
  • 호수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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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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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진나라 대장군이며 대부인 위무자魏武子에게는 애첩이 열씩이나 있었는데 막내 애첩이 방년 갓 지난 조령희다.

위무자는 전장에 나아갈 때면 아들들에게 유언한다. 전장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하면 열 명의 서모庶母를 하나도 빠짐없이 내 무덤에 순장시켜라. 그는 늘 전장에서 살아 돌아오지만 세월까지 이길 순 없는 법 급기야 늙어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또 유언한다. 내가 죽거든 모든 서모를 내 무덤에 순장시키도록.

아들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겠다고, 첩들은 살겠다고, 서로가 울면서 아우성인데 둘째 아들 위과魏顆만은 생각이 달랐다. 나이 어린 서모가 어린 나이에 그렇게 죽는 것을 허망히 여겨 어린 서모 조령희를 순장시키지 않고 재물과 패물을 잔뜩 챙겨서 그녀의 나라도 도망가서 재가해 살 수 있도록 배려한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위과는 아버지 위무자의 뒤를 이어 대장군에 오른 어느 때쯤 진나라는 력사 대장군 두회杜回를 선봉장으로 위과가 대장군으로 있는 진나라로 쳐들어온다. 위과는 맹장 두회 장군을 상대로 한 달을 넘게 싸웠으나 이길 승산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노인이 나타나 저쪽 산 아래 어디쯤 풀섶에서 전투를 하면 이길 것이라며 알쏭달쏭한 말을 하고 사라진다. 위과는 밑져야 본전이라며 꿈에 노인이 알려준 그곳에서 전투를 했는데 이상하게도 칼 한번 안썼음에도 진나라 장군부터 병사에 이르기 까지 저절로 풀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다.

춘추좌씨전의 기록은 이렇다. 두회 장군이 넘어져 엎어졌으므로<회질이전回跌而顚> 그를 포획하였다.<고획지故獲之> 그날 밤 노인은 위과의 꿈 속에 나타나 말하길 나는 당신이<위과> 개과시킨 서모의 아비되는 사람입니다.<아이소가부인지부야我而所嫁婦人之父也> 그대가 아버지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내 딸을 순장시키지 않고 살려서 고향 땅으로 돌려보내주었기에<이종치명爾從治命> 내가 풀을 묶어서라도 은혜를 갚은 것입니다.<여시이보余是以報>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宣公15年條에 나오는 말이다.

꿈 속에 나타났던 그 노인은 위과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한다. 만일 당신 자녀들 중에서 누군지 모르지만 공부를 한다면 반드시 제왕이 날 것이다. 그런데 위과의 자녀들은 공부를 하지 않았다. 이유는 아버지가 대부이고 대장군의 지위에 있으면서 부모가 자녀가 이뤄야 할 꿈까지 다 이루었는데 굳이 자녀들이 공부를 열심히 한들 뭘 더 이루겠냐 싶어서 자녀들은 성실하지도 못했고 성품마저 그릇됐으며 게으르기는 마치 서진 시대 도연명의 다섯 자녀보다 더했으니 집안이 망하는 것은 명약관화할 터. 야망이 있던 위과는 공부하지 않는 자식을 보면서 그렇게 한탄하며 죽어갔는데 그 뒤로 위과의 집안은 크게 발문하지 못하고 그저 조상이 물려준 재산으로 떵떵거리며 사는 정도에 그쳤다.

그렇게 몇 대가 흐른 어느 날 위씨 집안에 발군의 인물이 태어났다. 이 아이는 집안 대대로 하인으로 살아온 노인으로부터 엄청난 말을 듣는데 선대 조에 있었던 결초보은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과연 그 말이 사실일까. 반신반의 하면서 공부에 명운을 건다. 눈뜨면 공부하고 눈감으면 눈떴을 때 공부한 것을 외우고 앉고 서고 들고 날 때도 시도 때도 없이 닥치는 대로 공부한다. 그가 바로 진나라의 36대 군주 진애공 위환자이다.

맹자 책 초두에서 맹자를 만나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습니까라고 당돌하게 물었던 양혜왕의 증조부가 되는 인물이다. 세상에는 의외로 공부해서 인생을 바꾸겠다는 무모한 듯. 미련한 듯. 하지만 그러한 위대한 똥고집을 가진 인생들이 더러 있다. 이런 인생을 일러 세상은 이렇게 표현한다. 입지전적 인물. 뜻을 세웠으나 이룰 때까지 단 한 번도 그 뜻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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