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취재 / 금강하굿둑 해수유통으로 가는 길(1)금강 하굿둑이 불러온 재앙
■ 기획취재 / 금강하굿둑 해수유통으로 가는 길(1)금강 하굿둑이 불러온 재앙
  • 고종만 기자
  • 승인 2020.07.02 05:52
  • 호수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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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하굿둑·새만금방조제가 삼킨 서천 연안

서천군 전역에 토사 퇴적…천혜어장 사라져

이 기사는 충남도 미디어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인공구조물로 만신창이가 된 금강 하구
▲ 인공구조물로 만신창이가 된 금강 하구

금강하굿둑과 토사퇴적

금강하구가 염해방지 및 농업 및 공업용수 확보를 위해 둑을 막았지만 30년이 지난 현재 금강하구와 장항 앞바다 모두 민물과 해수의 단절로 인한 토사퇴적과 수질악화, 생물종 감소 등 하구 생태계 변화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하굿둑 개방은 금강을 사이에 둔 군산시나 익산, 전북지역에서 농·곻업용수 사용 차질 등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보이는 등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 지속돼 정부가 생태계 복원을 위해 적극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양승조 도지시가 부남호 역간척 사업을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만큼 충남도는 금강하구 생태계 복원을 정부와 전라북도, 군산시 등을 상태로 해수유통이 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할 필요성이 있다. 뉴스서천은 낙동강 해수유통의 사례나 해수유통을 추진 중인 영산강 사례, 10년째 역간척을 주장하고 있는 진도 소포리 주민들, 독일의 대표적 역간척 사업지인 랑어룩의 사례를 토대로 금강하굿둑의 해수유통의 필요성을 밝히고자 한다.

저 갯벌이 다 조개밭이었다

금강의 물줄기가 하구로 와서 바다로 들어가는 곳이 장암리이다. 금강이 날라온 민물의 60% 정도는 군산 외항 쪽으로 가고 40% 정도는 장암리를 감고 돌아 서천 연안으로 들어간다. 장암리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지금도 생선과 조개가 지천이었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다. 장암리에서 태어나 자란 방훈규(63)씨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바닷물이 민물이 만나는 이 곳은 고급 어종들이 노는 곳이다. 등대 옆에서 농어 낚시를 하면 사람 넓적다리만한 가장 큰 농어가 잡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장암진성 안쪽으로 물이 들어오는데 이곳에 참게들이 많았다 한다. 참게들이 알 낳으로 오는 곳인데 참게 때문에 농사를 못지을 정도였다. 참게들이 벼줄기 밑둥을 잘라먹었다. 지금의 대체어항이 있는 곳은 모래사장이었는데 이곳은 참게들의 산란장이었다.

그 옆으로 독살, 독그물이 있었는데 농어들이 부근에서 빙빙 놀다가 물이 쪽 빠지고 나면 독살에 걸렸다. 그러면 지게에 바작을 얹고 큰 농어들을 져 날랐다 한다. 숭어를 잡을 때는 쏙을 잡아 뿌렸다 한다. 그러면 숭어들이 냄새를 맡고 몰려들었다. 팔뚝만한 숭어들이 낚시에 걸려 올라왔다.

이렇게 잡은 고기들은 군산에 내다 팔았다. 군산횟집이라고 군산에서 제일 큰 횟집이 있는데 주로 장암리에서 잡은 고기들로 횟집을 운영했다 한다.

죽뻘은 센 물살에 다 씻겨나가고 단단한 모래만 남았다. 그 넓은 바닥이 다 조개바닥이었다. 민물이 그리 쫘악 퍼지면 그 민물 받아먹고 조개들이 살았다. 장마지고 나면 소라가 뻘밭에 시커멓게 깔리기도 했다.

이처럼 어족자원이 풍부한 이유는 강이 날라다 부리는 유기물은 고기들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우여·황복·뱀장어가 오르내리던 기수역

1991년 금강하굿둑으로 막히기 이전 금강하구의 기수역은 어족자원의 보고였다. 우여, 황복, 참게 등이 갈대밭에 알을 슬고 온갖 물고기들이 먹이를 찾아 금강 하구로 몰려들었다.

한번은 꽃게 잡는다고 어른들 몰래 산마이 그물 한 자락을 가져다 아시레 섬 앞에 쳐놓았다. 그런데 노락쟁이라고 샛노란 기가 있는데 그 기는 독처럼 딱딱해서 식용으로는 먹지 않는다. 그 기가 그물에 잔뜩 걸려 그 기를 떼어내다가 손가락을 물려 살점이 떨어져나가기도 했다. 갯벌에 나가면 철새가 그렇게 많았다. 배를 타면 아시레섬 앞에까지 나갔는데 도팍(돌멩이) 좀 가져올 걸...’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도팍을 쏘면 아무 놈이나 한 마리는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새 이름도 몰랐다. 기억에 남는 것은 펭귄하고 똑같이 생겼는데 펭귄은 배가 하얗지만 이 새는 배가 노랗다는 것이다. 걷는 것도 똑같다. 이 새들이 하늘을 새까맣게 덮었다.(가마우지로 추정됨) 얘들이 한번 지나가면 헬리콥터 뜰 때 나는 소리처럼 큰 소리가 났다

장항에서 태어나 자란 한 노인의 회상이다. 다양한 어족자원 가운데 실뱀장어는 어민들에게 고소득을 안겨다 주었다. 필리핀 동쪽 해역에서 부화한 알은 어미가 자란 금강 어귀까지 찾아온다. 금강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기수역에서 적응 훈련을 하는데 민물을 만나면 몸통이 원통형으로 바뀌며 길이는 이불 꿰매는 바늘만 하다. 이를 포획해 양만장에서 양식을 한다.

하룻밤에 수백만원씩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하굿둑이 들어서며 뱀장어 같은 회유성 어족들이 멸종 위기로 내몰렸다.

▲ 토사가 쌓여 항구기능을 상실한 장항항
▲ 토사가 쌓여 항구기능을 상실한 장항항

1970년대 이후 금강하구의 개조

일제가 장항과 군산을 수탈의 교두보로 삼으면서 금강하구의 자연 생태계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강 하구 양쪽에 제방을 쌓아 벼농사를 짓게 하고 이를 수탈해갔다.

1974년에 군산 외항 건설이 시작됐으며 1988년에는 바다를 매립하는 군산국가산업단지 착공됐다. 1990 금강하굿둑 완공됐으며 1991년 바다와 강은 완전히 남남이 됐다. 1996년 북측도류제 7.1km가 완공됐다.

1970년대 이후 금강하구 개조

- 1974 군산 외항 건설 착공
- 1983 금강하굿둑 착공
- 1988 군산국가산업단지 착공
- 1990 금강하굿둑 완공. 북측도류제 639m.
- 1992
군산외항 호안공사 완공. 북측도류제(2087m)

- 1993 군장국가산업단지 조성 매립공사 착공
- 1994 금강하굿둑 수문 폐쇄. 북측도류제(3798m). 남측도류제(530m), 군산국가산업단지 완공
- 1996 북측도류제 완공(7100m). 남측 도류제(1700m). 서측 호안(2248m)
- 1998
남측도류제(2,912m). 서측호안(2248m). 새만금4호방조제(1900m)
- 2000
북방파제 3km 완공. 새만금4호방조제(2840m)

- 2002 군장산업단지 군산측 매립 완공
- 2003 새만금4호방조제 완공
- 2006 새만금방조제 33km 완공
- 2008 남방파제 850m 완공

진펄로 바뀌는 서천 연안

금강하구를 바라보는 유부도는 백합, 동죽, 바지락 등의 서식지로서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그러나 토사가 쌓이며 모래 함유량이 70% 정도인 모래펄갯벌이 진펄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이들 어패류가 살기 어려운 조건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

쌓인 진펄로 경운기가 다니지 못해 유부도에서 백합잡이는 2009년도 이후 한 때 사라졌으나 그후 서천군에서 경운기가 다닐 수 있는 길을 조성한 이후 다시 백합잡이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그 개체수는 날로 줄어들고 있다.

옥이 구르는 듯한 해변이 진펄로

<서천군지>에 따르면 마서면 남전리 백사마을 고려말 목은 이색 선생이 이곳에 백사정이란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겼던 곳이라 한다. 지명 그대로 흰 모래사장이 펼쳐진 곳이었다. 이곳을 옥이 구르는 듯한 물결소리가 나는 곳이라 해서 쇄팽이라 불렀다 한다.

마을 주민들은 예로부터 바다에 나가 조개를 줍고 어살을 매어 고기를 잡아 생활했다. 논이 없는 마을이어서 주민들은 바다에 의지했으며 배가 20여척 닿는 제법 큰 포구였다. 꽃게와 대하를 많이 잡았고 배타고 나가면 농어, 도미, 민어, 장대 등을 잡았다. 갯벌에서는 바지락, 가무락조개, 동죽, 맛살, 고막 등을 채취했다.

그러나 지금은 진펄이 쌓여 백사장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음은 마을 주민 이상식씨의 증언이다.

인근 솔리천 하구는 쌓이는 토사로 갯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만조 때에는 해수면의 상승으로 1924년도 일제가 막은 장뚝을 위협하고 있다.

송석리는 2001년 해양수산부로부터 서천에서 가장 먼저 어촌체험마을로 선정됐다. 특히 갈목백사장은 모래찜질과 각종 조개 채취로 소문이 났다. 마을 앞에 있는 아목섬은 썰물 때면 걸어들어갈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갯벌체험마을로 소문이 나면서 어패류 채취 관광객이 하루 1000, 주말 휴일에는 30004000명 정도 몰렸다 한다.

금강하굿둑 바깥쪽의 토사퇴적
금강하굿둑 바깥쪽의 토사퇴적

그러나 지금은 죽뻘이 허리께까지 차 섬에 걸어들어갈 수 없다. 마을 주민들은 한결같이 2006년 새만금방조제가 완공되면서 뻘이 급격히 차올랐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온갖 어패류로 풍요로웠던 갯벌이 죽어가며 대부분 맨손어업이었던 마을 주민들의 소득원도 사라졌다.

지금은 김양식에 종사하는 몇몇 세대 외에는 더 이상 바다는 이들의 삶의 터전이 아니다. 아항도는 뻘이 차올라 더 이상 걸어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주된 소득원이 사라지자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마을을 떠났으며 김 양식에 종사하는 주민 외에 마을 주민 대부분은 70, 80대 노인층이다.

판교천이 유입되는 장구만은 맛살이 버글버글했다고 주민들은 말하고 있다.

장구리에서 만난 마을 이장 임창실씨는 옛날에 갈코, 맛살개를 저금통장이라 했다. 그것만 있으면 먹고 살았다. 결국 장구만이 사람들 먹여 살린 것이다. 장구만에 맛살이 지천이었다. 맛살 뿐만이 아니다. 백합, 바지락, 동죽, 꼬막이 버글버글했다. 가산여라고 갈목 앞에 여가 있는데 경운기 타고 거기까지 가서 바우지(민꽃게), , 꼬막 등을 잡아왔다.”고 말했다.

하굿둑 막고 새만금 막으면서 바다가 급속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뻘이 차올라 더 이상 갯것들이 살지 않는다. 한 때 칠게를 잡아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바다에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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