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책을 백 번 읽다 보면 책의 의미가 저절로 드러난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책을 백 번 읽다 보면 책의 의미가 저절로 드러난다
  • 송우영
  • 승인 2020.07.02 06:31
  • 호수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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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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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를 가르치면서 주자는 큰 고민을 한다. 공부의 끝이 평천하인 것은 분명한데 문제는 그 평천하의 길을 청운의 꿈으로 이룰 것인가 아니면 백운의 꿈으로 이룰 것인가이다. 청운의 꿈은 과거시험을 거쳐 관료가 되어 치국평천하로 가는 길이고<위기지학爲己之學> 백운의 꿈은 과거시험을 거치지 않고 오로지 공부만으로 천하 백성들을 따르게 하는 평천하의 길이다.

<위인지학爲人之學> 초년의 주자는 과거시험 반대론자였다. 여동래 문하에서 공부하던 큰아들이 순희 원년(서기1174)과 순희 7년에 있었던 과거시험에 응시하면서 주자는 생각을 바꾼다. 그리고 대략 7-8년후 쯤 제자들에게 과거시험을 허하는데 결국 큰아들이 처음 과거시험 본 해 1년 전부터<여동래의 문하에서 공부하던 큰아들이 과거시험 보겠다고 아버지 주자에게 말한 해는 11734> 주자가 제자들에게 과거시험 보라고 허용할 때가 1188년이었으니까 장장 15년에 걸쳐 주자는 고민했고 그 결과를 11891월에 과거시험 보라는 쪽으로 허용한다.

여기서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거나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걸리는 시간을 대략 15년으로 잡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 사대부가의 자제들은 공부하러 갈 땐 15년을 기약하고 공부가 일취월장하면 10년 공부로 하산을 하는 것이다.

주자의 세 아들은 머리가 아둔했으며 모두 음서제도의 도움을 받아 음보蔭補로 관직에 올랐다. 정리하면 주자의 생각은 이랬다. 공부에 둔한 자신의 아들에게는 위기지학爲己之學 같은 큰 뜻을 품지말고 그냥 직급낮은 미관말직에 속하는 등급 정도의 과거시험 공부를 이에 급제하여 평범한 삶을 보내라는 대학자 이전의 아버지로서의 배려인 셈이다.

아무튼 기본 공부는 누구나 해야 하는데 이유는 공부를 안하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내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공부하지 않은 사람에게 말을 한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사기 오제본기 사마천 논평에서 이렇게 말한다.

태사공은 말한다. 배우기를 좋아하고 생각을 깊이 해서 마음으로 그 뜻을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 본 것이 별로 없고 들은 바가 적은 사람에게 어떤 사안에 대해 말을 한다는 것은 진실로 어렵다. 쉽게 말해서 누군가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라도 공부는 해야 한다.”

그렇다면 공부란 뭘까. 사마천은 사기에서 말한다. ‘호학심사好學深思 심지기의心知其意’. 즐거이 배우고 깊이 생각해서 마음으로 그 뜻을 아는 것이라 했다. 서한 삼 걸 중 한 명인 장량은 공부를 정의하기를 습습첩복복習習疊復復이라 했다. 무한 반복이라는 말이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학이시습學而時習을 말했고 자신에게는 위편삼절韋編三絶로 절차탁마했다 전한다.

전국시대 유세가 소진은 추자고두현량錐刺股頭懸梁이라는 극단의 공부법으로 자신을 천하에 알린 인물이다. 북송의 유학자 주자는 이러한 공부를 일러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 했다. 주자는 훈학재규訓學齋規에서 이런 공부를 통감通感 공부법이라 했는데 눈으로 슬쩍 훑어보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소리내어 읽고 붓으로 필사해서 쓰고 그러하기를 안보고 읽고 쓰고 외울 때까지 하는 공부이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에서 견은 본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현으로 읽으며 드러난다<>고 해석한다. 즉 옥에 아주 작은 티까지도 끄집어낼 수 있는 옥세공기술자같은 눈으로 공부하라는 말이다. 본래 이 말은 위나라 조조손자 때 사람 동우의 말로 필당선독백편必當先讀百遍 언독서백편기의자현言讀書百遍其義自見이 원문이다. 풀어보면 반드시 먼저 책을 백 번 읽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게 책을 백 번 읽다 보면 책의 의미가 저절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이것을 주자는 후학들이 읽기 쉽게 7자로 줄여서 말한 것이다. 이글의 출전은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卷13 종요화흠왕랑전種繇華歆王朗傳에 배송지裵松之의 주에 나오는 동우董遇의 고사古事이다. 동우는 좌전左傳에 주석註釋을 쓰면서 붉은색 먹인 주묵朱墨을 사용했다하여 이후 부터는 모든 선비들이 주나 가필加筆 첨삭添削을 할 때는 반드시 붉은색 먹을 사용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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