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아버지와 딸의 장갑선물
■ 모시장터 / 아버지와 딸의 장갑선물
  • 한완석 칼럼위원
  • 승인 2020.07.23 10:00
  • 호수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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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나는 내 인생이란 짐을 나 만큼 늙어버린 트럭에 실고 어딘가를 가고 있었다.

내가 살아 온 인생의 한 축을 만들어 온 32년 동안의 소방관 생활을 퇴직한 지가 벌써 6개월째이다. 어쩌면 진갑인 내 인생에서 지금 퇴근 준비를 하고 있음일 것이다.

아침방송에서 기분 좋은 음악과 좋은 말들이 흘러나왔다. 품 안의 코흘리개 딸이 커서 취직을 해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올린 사연이었다. 그 딸이 취직할 정도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일 것이다. 방송 속의 아버지는 이 글을 쓰는 60대인 나와 나이가 비슷할 것이다.

이 사연 속의 아버지는 일요일 서울에 볼일이 있어 올라가 일을 마치고 시간이 남아서 딸을 만났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아버지는 맨손으로 손이 얼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하더라도 날씨가 차면 그래도 손이 차갑기 마련이다.

그것을 본 딸이 장갑을 끼지 않았다고 아버지를 채근을 하였다. 아버지는 장갑을 잃어버렸다고 딸에게 변명을 했다. 아버지는 딸의 손에 이끌려 설렁탕을 훅훅거리며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방울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맛을 가슴 깊숙이 넘겼다. 아무 말없이 깍두기를 딸의 국그릇에 올려주며 눈짓과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먹으라고 고갯짓으로 대신하였다.

다 큰 딸과의 설렁탕 한 그릇이 세상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딸과 같이 먹던 행복한 밥과 지금의 다 큰 딸과의 설렁탕은 그 어린 시절보다 행복은 몇 배나 더 컷을 것이다.

딸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동대문 시장도 구경할 겸 따뜻한 장갑을 사드렸다. 비싸지도 않은 몇 만 원 짜리이다. 아버지는 연신 미소를 머금은 체 손에 장갑을 끼고 앞뒤로 손을 뒤집으며 어린애마냥 좋아했다.

아버지는 딸을 뒤로 한 채 긴 여정을 달려온 당신의 인생처럼 여러 칸을 매달은 기차를 타고 돌아가는 커브 길의 기차 끝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지나 온 인생의 흔적에게 손을 흔들고 눈을 꿈벅이며 알 수 없는 기인 한숨을 감추며 기차의 흔들거림에 몸을 맡겼다.

아버지는 주머니의 장갑을 만지작거리며 시골 때가 잔뜩 낀 핸드폰을 꺼내 어색하고 서투른 문자를 흐믓하게 딸에게 보냈다.

우리 딸! 장갑 선물 고맙구나! 사랑해.......’

아버지는 흔들거리며 평생을 일로만 늙은 굵은 손마디 같은 눈물을 떨구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아버지는 부유하지 못해 딸을 고생시키는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 딸은 아버지가 고맙다구 보낸 문자를 보며 설렁탕을 먹으며 떨어뜨린 아버지의 땀방울 같은 눈물을 머금었는지도 모른다.

자식들은 평생 동안 아버지의 말없는 뒷바라지를 한 번도 맘먹고 고맙다구 해본 적이 없는 데 아버지는 단 한 번의 장갑 선물에 감격을 하여 고마워하셨어요. 대신해서 아버지에게 고맙구 미안하구 앞으로 더 잘할께요라고 라디오 MC한테 전해 달라 하였다.

아무것도 아닌 흔한 사연인데 아버지 인생의 반을 차지한 딸의 감사와 죄송스런 표현일 것이다. 눈물이 눈가를 두드렸다. 운전을 하며 눈가에 마르도록 그 눈물을 걸어 놓았다. 왠지 가슴 속에서 그리움이 솟구쳤다. 아니 무엇인가 찾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

우리 같은 중년의 나이에 알 수 없는 인생의 감정을, 어느 여정의 기차 역 앞에서 철커덕거리며 지나는 기차의 먼지를 바라보며 휘돌아지는 또 다른 아버지의 여정을 갈아타며 나는 우리 딸들의 또 하나의 여정을 걱정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여정은 늘 같을 것이다. 자식들에 대한 마음은 늘상 가슴에 걸어놓고 바라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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