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속에서도 희망을 가꿔 보렵니다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가꿔 보렵니다
  • 최현옥
  • 승인 2003.12.26 00:00
  • 호수 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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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가 내린곳에 눈이 내리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가족은 서로의 울타리가 된다
화재가 진압된 지 이틀째를 맞고 있는 장항읍 도선장 인근은 아직도 잔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건물들은 불에 타 엿가락처럼 휘어져 넘어지고 온통 시커먼 한 것 들 뿐이다. 매캐한 냄새는 그의 코를 자극하며 애써 평온하고 싶은 마음 속을 휘저어 놓는다.
“허! 무슨 말을 해야할 지…”
그는 자신이 생각해도 기가 막힌 듯 말을 잊지 못한다. 망연자실하게 화재현장에 주저앉은 그는 참혹했던 당시 상황에 차마 떠나지 못한 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
“집에 불이 났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눈앞이 깜깜하더군요. 전화를 잘못 받은 줄 알았어요. 15평 남짓한 공간으로 낮에도 불을 켜야 생활할 수 있을 만큼 열악했지만 저곳이라도 있어 좋았는데… 이제 저희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화재의 현장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 잿더미로 변한 것은 그의 집뿐만이 아니었다. 가족들에게 마지막 남은 삶의 터전이었던 이곳은 그의 검은 눈동자만큼이나 깜깜한 절망으로 그려지며 삶에 대한 희망마저 뭉개 버리고 있었다.
지난 1월 말 가족들의 줄 이은 중병과 가난으로 보도 차 만났던 한일국(24) 씨, 그와의 재회는 이렇게 시작됐다. 기사 보도 2주 후 어머니는 자식들 걱정에 눈을 제대로 감지 못하고 숨을 거뒀으며 현재 판교 납골당 영명각에 잠들어 있다. 아버지는 폐결핵으로 수술을 받고 3/1밖에 남지 않은 폐에서 고름을 빼내며 동생 둘과 함께 월세 방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결핵이 동생들에게 옮길 까봐 안산에 가 있던 중이었다. 가족들은 이제 오갈 곳이 없어 시집가 인근에서 살고 있는 누나 집에 기거 중이다.
“크∼, 크∼ 그놈의 화마가 모든 것을 순간 덮쳐 버렸어…. 불과 2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을 거야…, 우리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건물 밖으로 나왔지”
가족이 기거 중인 누나 집을 찾자 몸이 불편한 아버지 한상수(60) 씨의 시름소리가 먼저 반긴다. 하루에 20여 차례 폐를 소독해야 하는 한씨는 숨도 쉬기 어려워 겨우 말을 이었다. 특히 화재당시 폐가 좋지 않아 독가스로 인한 질식사의 위험마저 느꼈다는 그의 말에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10여분 말을 잇던 한씨는 방안에 앉은 자식들을 바라보며 고생만 시켜 미안하다며고 눈물을 비추더니 힘에 겨운 듯 바로 자리에 눕는다.
“아버지 하루 소독 거즈만 해도 몇 만원씩 들어가는데 큰 일입니다. 저 역시 군 입대를 앞두고 있어 아버지 간호 할 사람도 없는데 갑자기 이런 일 마저 생기네요”
자리에 눕는 아버지를 부축한 성국씨는 이번 겨울이 그 어느 해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며 말을 잇는다. 학교를 졸업하고 맏형과 어머니의 빈자리를 메우며 그동안 집안 일을 도맡아 왔던 성국(24) 씨, 군에 입대 할 때 발걸음이 떨어질 것 같지 않다고.
“엄마 사진도 못 가지고 나온 게 가슴 아파요. 그리고 가장 아쉬운 것은 그곳이 엄마와의 추억이 있는 장소인데 사라졌다는 것이에요”
일찍 철이 들어버린 막내 명국(17)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가세가 기우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특기인 춤을 살려 돈을 벌어야 갰다며 말한다. 학업에 열중해야 할 명국이에게 처절한 현실, 일국씨는 동생이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까 걱정이다.
“사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원망했어요. 한번의 실현도 부족해 이렇게 거듭 아픔을 주시는지. 저의 기도를 듣고는 있는 건지. 혹시 나를 버린 건 아니신 지 정말 여러 마음이 들더라 구요”
몸이 아파서 구직도 힘들다는 일국씨는 생계도 어려워 마지막 남은 것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 밖에 없는데 가끔 원망스러웠다며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저는 확신해요. 하나님은 저희를 위해 분명 예비해 놓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정말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갔어요. 물질적으로 가진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다시 시작해야지죠”
애써 밝고 힘찬 모습을 보이는 일국씨와 그의 가족들, 힘들 때일수록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각인하고 함께 극복해야함을 다짐하고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일가를 보며 불에 타 쓰러져 가는 집안으로 들어가 그들이 가슴에 소중하게 품고 나온 것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가꿔야 한다는 씨앗의 꾸러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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