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사책 / 공부는 염라대왕도 부릴 수 있다
■ 송우영의 고전사책 / 공부는 염라대왕도 부릴 수 있다
  • 송우영
  • 승인 2020.09.10 07:01
  • 호수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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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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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시대를 첨단과학의 시대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공자왈 맹자왈을 논하는 것은 공자나 맹자를 넘어설 인물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자와 맹자의 말들을 적어놓은 책을 고전이라고 부른다. 오래된 책이라 해서 모두 고전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고전은 시간이 흘러 쌓인 옛글 무덤도 아니다. 켜켜이 쌓여만 가는 시간의 세월 속에서 혹독한 검증을 거쳐 살아남은 책을 고전이라 한다. 그래서 고전은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본받을 것이 있어야 하며 나를 고쳐 바로잡을 정도의 규범이 될 만한 것들로 채워진 후에라야 가능한 것이다. 곧 누가 읽더라도 읽을 만한 가치가 여전히 살아있는 책이 고전이라는 말이다.

고전은 단순히 오래 묵은 글이라거나 옛사람이 남긴 찌꺼기라고 폄훼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흔히 요즘이 어느시댄데 아직도 호랑이 담배 물던 케케묵은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공자님 말씀이냐는 식의 오해는 곤란하다. 지금도 고전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에 일정량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옛글 중에 청춘을 낭비하는 법을 기록해 놨다는 다소 역발상적인 제하의 글 묶음 중에 팔월춘소잠八月春費箴이라는 것이있다. 송나라 여윤문의 <책 여백에 쓰는 생각들>에 나오는 말인데 여윤문은 어려서 지독스럽게 가난했던 자다.

그런 자가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뭘까를 고민하던 중 낙방거자 출신의 촌로를 만나면서 인생의 변곡점을 찍는데 다름 아닌 맹자 책이 그것이다. 생전의 맹자는 18명의 제자를 두었는데 그들에게 공부하는 법을 미주알 고주알 첨삭지도해서 훗날 대가로 대성하게 만든 일종의 쪽집게 선생이었던 셈이다. 공자는 제자를 가르치되 시시콜콜 가르침이 아닌 각자의 성품에 따라서 에둘러 표현하는 식의 선문답적 가르침이라면 맹자의 가르침은 좀더 현실적이고 작위적이면서도 직설적 화법으로 가르침을 가했다 전한다. 물론 본인도 그렇게 공부해왔기 때문에 그러하겠지만 암튼 맹자의 가르침은 상당히 날선 가르침임에는 분명했다.

그래서 맹자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느꼈겠지만 유독 행간을 읽어내는 독법이 요구되는 책이다. 맹자의 가르침대로만 공부한다면 대성하지 못할 사람이 몇이나 되랴. 그중 하나가 위에서 말한 송나라 사람 여윤문余允文이다. 그는 맹자 전도사로 맹자를 비판한 자들을 다시 비판하기 위한 맹자를 변호하는 책 존맹변尊孟辯을 써서 강호를 화들짝 놀라게 한 인물이다. 이를 저본으로 주희는 여윤문余允文의 글에 한발 더 나아가 여윤문의 글 존맹변을 읽다라는 제하의 독여은지존맹변讀余隱之尊孟辯을 써서 주석까지 달게 된다. 대학자 주자까지 나서서 주석을 달만큼 여윤문의 글은 독보적이었다는반증이다.

이 정도의 인물 여윤문이 쓴 낙서메모?가 훈몽재습訓蒙在習인데 1년 공부를 12달로 나눠 매달 그달 그달에 맞게 공부하는 법을 별도의 잠형식으로 기록해 놓은 글 모음이다. 이 책의 가르침을 기준 삼아 어린 시절 공부한 이들이 조선에서는 훈몽재訓蒙齋 강학당 당주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요 평생 도인처럼 산속에서 공부만하다가 늦게 정계에 나온 대학자 미수 허목이요, 청나라 초기의 학자 염약거閻若璩, 청나라 중기학자 맹자자의소증孟子字義疏證1.2.3권을 쓴 가 신수愼修, 호가 동원東原인 대진戴震이 그들이다.

여윤문余允文의 훈몽재습訓蒙在習은 훗날 청나라 거부 호설암의 어릴적 초학서로 읽혀졌다는 수진본 소책자인데 돈이면 염라대왕도 불러다가 똥귀저기를 빨게 할 수 있다는 말의 단초가 되는 문장으로 진나라 노포魯褒가 쓴 전신론錢神論에는 유전능사귀추마有錢能使鬼推磨라하여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불러다가 연자맷돌을 돌리게 할 수 있다가 원문이다.

이 말의 출전은 시경 이전의 민요로 주나라 기수에서 불려지던 노래라 하는데 훈몽재습訓蒙在習 부역負役편에 따르면 학야學也는 무영약無影若이요 학야學也는 가귀역可鬼役이라의 전거로 그의 조어인 셈이다. 풀어쓰면 이렇다. “공부는 모양은 없으나 공부한 자는 귀신도 부릴 수 있다.” 잊지마라. 하나님이라는 이름도 공부한 자 앞에서는 그저 암기해야 할 단어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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