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불학거필不學拒筆 폐위거廢位去
■ 송우영의 고전산책 / 불학거필不學拒筆 폐위거廢位去
  • 송우영
  • 승인 2020.09.16 18:30
  • 호수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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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송우영

공부 멀리한 죄가 내 명을 재촉했구나.”

일국의 황제까지 지낸 왕망이 농민의 쇠스랑에 찍혀 죽어가면서 했다는 말치곤 너무 허망하다. 그래도 나라의 황제를 지낸 인물인데.
이런 역사적인 사실들을 알아서일까. 조선 선비들에게 있어서 공부 목적에는 두 개가 있었다. 나아가느냐 물러나느냐가 그것이다. 나아가는 데 힘쓴 인물은 정암 조광조와 율곡 이이이고 물러나는 데 힘쓴 인물은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이다. 전자는 치요 후자는 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치하기 위한 관은 멸문이요 보신을 위한 수또한 망신이라는 것이다. 나아감의 치와 물러섬의 수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은 같다. 곧 바름. 이다. 그 중심에 공부가 있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과거시험에 입격을 해서 관직에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공부를 많이 하되 과거시험을 평생 거부한 채 초야에 묻혀서 이름 없이 살아갈 것인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62세 되던 8월에 그리스 아테네로 두 번째 유학을 떠나는 아들에게 해줬다는 전별어 중 하나가 이렇게 전한다.

세상에 좋은 것이 몇 개가 있는데 그중 제일은 공부다.”

공부가 좋은 것은 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말 중 하나가 횡거 선생 장재가 호피 방석에 앉아 제자를 가르칠 때 곧잘 했다는 말로 학선신화學善身化.’ “공부가 좋은 것은 몸을 변화시킬 수 있어서다.”라는 말이다.

연암 박지원은 그의 벗이며 도반이자 제자인 이덕무의 공부 습관을 이렇게 적어놓는다. “어릴 때부터 21살에 이르기까지 손에서 일찍이 하루도 옛 책을 놓지 않았다.<자도아지년일自塗鴉之年一 지이십일세至二十一歲 수미상일일석고서手未嘗一日釋古書>.

그의 집은 매우 작으나 동쪽과 남쪽과 서쪽에 창이 있어<기실심소其室甚小 연유동창然有東牕 유남창有南牕 유서창언有西牕焉> 해가 동서로 가는 것에 따라서 빛을 받아 책을 보았다.<수기일지동서隨其日之東西 수명간서受明看書>

이게 뭔 소린가 하면 틈나는 대로 공부했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덕무는 모든 책을 5번씩 읽는 버릇이 있었다 전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공부에 끝을 본 사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그는 시대적으로 그의 신분 자체가 벼슬할 위치에 있지않다. 그런 그가 그럼에도 공부를 저리도 지독하게 했다는 것은 후학으로 하여금 옷깃을 여미게 함은 물론 오금까지 저리게 한다.

시경 패풍 제12편 모구4旄丘四章에 이렇게 기록한다. “쇄혜미혜瑣兮尾兮 유리지자流離之子 숙혜백혜叔兮伯兮 유여충이褎如充耳 부야賦也가늘고 자잘함에 마음이 흩어진 사람들이로다. 나라 신하들이여 소매로 귀를 막고 있구나<성백효 역주 전통문화회 참고인용>

공부 외에 다른 일로 몸과 마음을 낭비하는 것을 꾸짖음이다. 이런 인생을 살다가 인생을 절딴낸 인물이 있다. 동양의 로마제국으로 불리는 한나라는 전한<기원전202-기원후8>과 후한<기원후25-220>으로 나뉘는데 그사이에 15년간의 또다른 나라 신나라<기원후8-23>가 있다. 신나라 창업주가 왕망이라는 인물인데 왕망은 원제의 비인 왕씨가 왕망의 고모인탓에 전한 11대 군주인 원제元帝의 처조카다. 왕망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 원만한 가정생활에서의 성장 과정은 없었다. 곧 아버지의 따뜻한 가르침을 제대로 받지를 못한 채 의부 계부를 전전하면서 정도보다는 술수를 먼저 익혔다. 그 술수를 발휘해서 기원전 16년에 귀족작위를 받고 기원전 8년에는 전한 12대 군주인 성제成帝의 섭정이 되었으며 성제 사망 후인 13대 애제哀帝때는 미움을 사서 추방됐다가 14대 평제平帝 때에 다시 섭정으로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한다.

평제가 돌연사하자 그의 두살난 아들 영제를 황제로 앉힌 뒤<기원후 6> 2년 뒤인 기원후 8년에 반란을 일으켜 신나라를 세우고 자신이 황제 자리에 오른다. 그렇게 15년 집권 후 기원후 23년에 농민 반란군 에의해 왕망은 피살된다. 그가 죽으면서 했던 말 중 하나가 . 공부가 너무 짧았다. 공부를 조금만 더 길게 했더라면 비명횡사는 막았을 터.”

어려서는 닥치는대로 무조건적으로 공부만 해야 한다. 여기에는 협상이나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우선 공부부터 해놓고 나머진 그 다음에 생각하자. 공부에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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