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란 그림책 ‘상추씨’를 읽고
조혜란 그림책 ‘상추씨’를 읽고
  • 이창우 작가
  • 승인 2020.10.15 09:30
  • 호수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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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책 읽기로 만나게 된 책의 제목이 상추씨라니 웃음이 납니다. 신혼 시절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베란다에서 시작한 일이 채소 가꾸기였거든요. 웃어넘기기에 너무 부끄러운 기억입니다. 풍성하게 자란 상추를 보호한다고 생각해 현관 문 앞에 두었지요.

주말이던가 시동생이 놀러와 채소 가꾸기에 성공했다는 것을 자랑삼아 고기쌈으로 상추를 잘라다 대접했답니다. 다음 날 아침 아파트 복도는 난리가 났죠. 옆집 아주머니께서 어느 인간이 상추를 요렇게 싹둑 베어갔냐고 말이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빼곰히 현관문을 열고 비밀을 털어놓았던 순간이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아주머니, 제가 시동생 대접하느라 칼로 깨끗하게 그랬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떠나갈 듯 울리는 웃음소리라니.

상추를 겉잎부터 떼어내야 계속 자란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거든요. 깔끔하게 잘라낸 상추의 생명은 단 한 번 잎을 내고 무참하게 끝난 거지요. 이 그림책을 보고 있자니 아직도 무지하게 식물을 끌어안고 사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합니다.

상추씨, 미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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