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소통은 노동이다
■ 모시장터 / 소통은 노동이다
  • 최용혁 칼럼위원
  • 승인 2020.11.26 09:24
  • 호수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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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혁 칼럼위원
최용혁 칼럼위원

닭을 키우는 사람이 닭집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벌일 때는 가장 먼저 닭한테 물어봐야 합니다. 닭에게 좋은 것인지, 닭과 사람 모두에게 이로운 방식인지를 따져야 합니다. “자네, 이거 괜찮겠는가?” 닭장 주변을 고치고 닭 모이를 바꾸어 줄 때마다 노동의 효율성만 강조하는 것은 닭보고 사람한테 맞추라는 협박입니다. 닭이 닭답게 자라지 않으면 사람도 닭도 다 망하게 됩니다. 닭의 습성을 잘 관찰하고 닭에게 맞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닭을 위한 것이지만, 결국은 키워야 하는 사람, 먹어야 하는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닭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각시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말하지 않는 닭과 말은 하지만 뜻을 헤아릴 수 없는 각시 모두 항상 불통을 호소하며 경고합니다. “어쩔 수 없으니까 살아준다

40년 넘게 버스 운전을 해 오신 아버지는 생명 탑승론을 주장하십니다. 하루 운전을 시작하기 전에 매일매일 버스를 쓰다듬는다는 이야기는 아버지가 하신 어떤 말씀보다 감동입니다. 한밤중 불 꺼진 종점에서 시동을 끄고 막차에서 내리는 아버지가 운전대나 버스 앞 범퍼 어디쯤을 토닥이며 지긋한 눈빛으로 수고했다고 한마디 던지는 모습은 영화나 광고의 한 편으로도 꽤 괜찮은 장면입니다. 그리 많은 월급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운전에 대한 사명감 같은 것이야 더욱이 있을 리가 없겠습니다. 버스는 가족을 지키는 희망으로서, 함께 일하는 동지로서, 생명을 같이하는 운명 공동체로서 존중의 대상이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나도 한번쯤 연출해 보고 싶은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폼잡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잖아!”

나 아닌 것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일은 직관이나 감성 또는 취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끊임없는 노동입니다. 수고를 감수하며 끊임없이 관찰하고 배려하는 자세입니다. 좋은 결실을 위해 땡볕에서 김을 매며 흘려야 하는 일상의 노동입니다. 그런 수고와 땀 없이 나와 나 아닌 것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주장과 구호와 편과 줄을 갖추는 일은 반쪽의 무기입니다. 얼마나 다양한 주장이 공존할 수 있는지, 구호는 얼마나 마음을 움직이는지, 편과 줄은 얼마나 열려 있는지에 대해 민감한 것이 정확히 나머지 반쪽입니다.

어느 시점부턴가 농업은 귀하다는 자부심에 자족하고 멈춰 있지 않은지, 주장과 입장을 세우면서 오히려 농업의 가치와 농촌의 무궁한 가능성을 박제시키고 있지 않은지, 논과 밭에서 전하는 이야기들이 정부는 뭐하는 거야”, “도시놈들 도대체 농촌을 알아야지하는 원망과 촌에 뭐 볼 것이 있어야지하는 자학의 벽을 넘어 제대로 전달이 되고 있는지, 내가 나에게 던지는 맨 앞의 질문입니다.

무서운 꿈 이야기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닭 똥구멍에서 나오는 계란만 좋아하다가, 각시가 차려주는 밥상만 바라다가, 여전히 국민들은 농촌을 고향 어디쯤의 가치로 만족할 것이라고 착각하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달려들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야야! 너 없어도 된다

괜찮습니다. 앞으로 몇 년은 \

그럭저럭 지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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