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 산책 / 몰입해서 공부한 퇴계 이황의 문도들
■ 송우영의 고전 산책 / 몰입해서 공부한 퇴계 이황의 문도들
  • 뉴스서천
  • 승인 2020.12.24 03:26
  • 호수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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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가 농사일 배우기를 청하니<번지청학가樊遲請學稼> 스승은 말한다.<자왈子曰>

나는 농사 일에 관해서는 늙은 농부만 못하다.<오불여노농吾不如老農>”
그러자 이번에는 밭일 배우기를 청하니<청학위포請學爲圃> 공자는 또 말한다.
나는 밭일에 관해서도 늙은 농부만 못하다.<오불여노농曰吾不如老農>”

질문이 끝나고 번지가 나가자<번지출樊遲出> 스승 공자는 제자들을 둘러보시면서 말한다.<자왈子曰>

저리도 뜻이 작아서야 소인이구나<소인재小人哉> 번지여<번수야樊須也>...윗사람이 예를 중시하면 백성들은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상호례즉민막감불경上好禮則民莫敢不敬> 윗사람이 의를 중시하면 백성들은 감히 복종하지 않을 수 없거늘,<상호의즉민막감불복上好義則民莫敢不服> 윗사람이 믿음을 중시하면 백성들은 감히 진심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상호신즉민막감불용정上好信則民莫敢不用情> 일이 이쯤 되면 나라 안 사방에서 백성들이<부여시즉사방지민夫如是則四方之民> 자기 자식을 포대에 싸서 업고서라도 찾아올 것이다.<강부기자이지의襁負其子而至矣> 상황이 그러하거늘 공부해서 나라와 백성을 이끌어야 할 그릇이거늘 이제 와서 농사를 배운다하면 그 쓰임이 얼마나 되겠는가.<언용가焉用稼.논어자로13-4문장>”

이 문장은 퇴계 이황이 횡성橫城후인 월천月川 조목趙穆에게 풀어준 논어 한 대목이라 전한다. 논어 해석에 대한 퇴계식 일종의 평역인 셈이다. 일찍이 퇴계는 벗 이문량에게 보낸 편지에서 월천을 처음 본 느낌을 이렇게 적고 있다. “기지耆之<월천 아버지 조대춘의 >가 아들을 잘 두었다.”

대학자 퇴계이황의 이런 평은 자식을 둔 아버지라면 누구나 마땅히 듣고 싶어하는 상찬의 말임에 분명하다.<월천 조목은 5세 때 아버지 기지로부터 입으로 전해들어 배웠다는 구수口受 학습으로 문자를 깨우쳤다한다> 월천은 15세 되던 해 정월 초하루날부터 퇴계 문하에 처음 출입해서 공부했으니까 그때 첫인상을 말한 것인데 자식이 얼마나 훌륭했으면 친구한테 편지까지 써가면서 칭찬을 한단 말인가. 월천은 어린 나이임에도 읽지 않은 책이 없었으며 모든 행동은 옛글의 전적과 옛사람의 규례를 따랐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공부법을 일러 동한東漢 사람 맹자제사孟子題辭를 쓴 조기趙岐의 말에 따르면 방약무인傍若無人무시학無視學이라 하는데 세종대왕이 했다는 객래불기무시학客來不起無視學과 궤를 같이 하는 공부법이랄 수 있다. 본래 방약무인이라는게 무례하기 짝이 없다는 의미로 쓰인 말인데 이 말이 유명해진 것은 사마천 사기 자객열전 형가荊軻편에 연나라에서 거문고와 비슷한 악기 축의 명수인 고점리高漸離의 술버릇에서 그 연유가 있다 한다. 평소에는 멀쩡하다가도 술만 먹었다하면 전혀 딴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이처럼 평소에는 멀쩡하다가도 공부만 했다하면 좌고우면 하지않고 오롯이 공부에만 몰입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공부한 이들을 흔히 퇴계문도6철이라하는데 월천 조목, 학봉 김성일 ,간재 이덕홍, 서애 류성룡, 한강 정구, 지산 조호익 등 6인이다. 권두경權斗經1654-1725)의 계문제자록溪門諸子錄에 따르면 퇴계의 문도는 누락된 정철鄭澈, 이산해李山海, 남사고南師古등을 포함하여 320여명에 이르며 그중 도산서당으로 와서 배웠다는 풍암 문위세楓庵文緯世, 산천 제이함형山天薺李咸亨, 죽천 박광전竹川朴光前, 석정윤강중石井尹剛中, 석문윤흠중石門尹欽中, 석천 윤단중石泉尹端中 이하 도산서당 산문6문도이며 한양에 있을 때 가르쳤다는 고봉 기대승高峰奇大升, 미암 류희춘眉巖柳希春, 사암 박순思庵朴淳, 운강 김계雲江金啓, 호암 변성온壺巖卞成溫, 인천 변성진仁川卞成振, 고암 양자징鼓巖梁子澂, 정곡 조대중鼎谷曺大中 등을 경제팔문도京弟8門徒라 하며 그 외 퇴계 18문도와 퇴계8학사 등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제자들이 산림山林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부에 대한 몰입이다. 공부만 했다하면 다른 것에 신경 쓰지않는 방약무인? 몰입이든 아니면 공부만 했다하면 결코 일어서는 것조차도 삼가는 객래불기식의 몰입이든 무엇이 됐건 공부를 했다 하면 그 공부시간 만큼은 몰입을 넘어선 몰입의 몰입까지 자신을 몰아넣어보란 경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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