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조광조의 개혁정치 실패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조광조의 개혁정치 실패
  • 송우영
  • 승인 2020.12.30 21:09
  • 호수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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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141115, “밤에 북이 두 번 울리고 금중이 소요하므로 승지 윤자임 공서린. 주서 안정. 검열 이구 모두 정원에 직숙했었다. 일어나 허둥지둥 나가 보니 연추문이 이미 활짝 열리고 문졸들이 정돈해 서 있었고 근정전으로 향해 들어가며 바라보니 청의를 입은 군졸들이 전폐 아래에 좌우로 옹립하여 있었다.<夜二鼓 禁中驚擾 承旨尹自任. 孔瑞麟注書安珽檢閱李構, <皆直宿政院> 顚倒而出 則延秋門已洞開 而門卒整儀而立. 趨入勤政殿望見. 則靑衣軍卒. 左右擁立殿陛下>

윗글의 상황은 중종실록의 기록으로 임금 중종이 숙직하는 당직사관 및 승지들 몰래 대신들을 불러 비밀스럽게 비정상적인 것 같은 정무를 보는 과정에서 드러난 장면이다. 내용은 사헌부 수장 종이품從二品 대사헌 조광조와 그의 일당들을 잡아들이라는 것이다. 이에 요즘말로 하면 검찰총장쯤 되는 대사헌 조광조 등은 영문도 모른 채 한밤중에 벼락맞듯이 끌려가 옥에 갇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광조는 죄를 얻게 된 까닭을 모르고 간신들이 옹폐해서 한 것이려니 생각했다.<光祖繫獄時 不知得罪之由 以爲奸臣壅蔽而爲之>

신하들은 대명률의 관례에 따라 그 죄는 참하고 처자는 종으로 삼을 것이며 재산 또한 관에서 몰수해야 합니다 <대명률大明律간당조야姦黨條也 죄개참罪皆斬. 처자위노妻子爲孥. 재산입관財産入官>”라며 연일 상소를 올린다.

이것을 막은 이가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이다. “임금의 윤허하에 개혁함이 어찌 사형에 해당되느냐가 그것이다. 말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의 목숨까지 구하지는 못했다 이 일로 그는 영중추부사로 좌천되었다가 1527년 다시 영의정에 올랐다. 정광필의 극력 반대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조광조는 유배길에 올라 사흘째 되던 날 과천 고개를 훨씬 지난 어느 지점쯤에서 자신이 옥에 갇히게 된 경위를 듣게 된다. 실록 기록은 이렇다.

마을의 유생이 과천까지 쫓아가서 남곤. 홍경주. 심정 등이 남곤의 집에서 작당하여 먼저 참설로 임금의 마음을 요동했고 ...중략... 시말을 자세히 알렸더니<사리중유생使里中儒生. 추급어과천追及於果川. 이남곤以南袞. 홍경주洪景舟. 심정등회의우곤가沈貞等會議于袞家. 선이참설先以讖說. 요동상심搖動上心...중략...파진수말頗盡首末.중종실록37권 중종141118일무신>”

이 일의 사단은 정암 조광조다. 역사의 공과를 떠나서 그의 젊은 날 공부 과정의 적절성과 그의 직위의 적절성 또한 여전히 논란의 진행형이다. 조광조는 1498년 연산군4년에 발발한 무오사화戊午士禍로 평안도 희천에 유배온 김굉필을 찾아가 공부한다. 당시 한훤당 김굉필의 처지가 특히 적소謫所<죄된 몸으로 유배온 자의 처소>에서 누구를 가르칠 처지가 아니었음에도 집지지례執贄之禮로 계문啟文하는데 한훤당의 가르침이란 게 치인治人보다는 수신修身의 가르침이었고 전별어 또한 공부는 많이 하되 출사는 하지 말라. 박학다식불출사博學多識不出仕이다.

치인보다는 수신 공부를 더 많이 했던 정암 조광조는 화려하게 정계에 진출한다. 과거시험 1등으로 등과한 것이다. 평생을 몸을 닦는 수신의 공부를 한 선비가 통섭이 요구되는 백성들의 생존을 다루는 치인을 한다는 것은 자칫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라 나라 안팎으로 온 백성 모두를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동서고금을 무론하고 누군가를 다스리거나 관직에 오르려는 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수신과 치인 공부를 함께하여 통섭의 경지에 이른 후에나 출사를 함이 철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제지동 나이인 3세부터는 글공부가 시작되어야 한다. 물론 이때는 구수지학口受之學이라 하여 아버지가 글을 한 대목 읽어주면 어린 자녀는 그 글을 받아 옹알이하듯 웅얼거리는 정도의 공부이지만 이렇게 작은 단어가 하나둘씩 쌓이면서 습여지장이 된다. 그리고 5세가 되면 공부가 몸에 습 되고 7세가 되면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의 의미를 알아 자연스럽게 공부에 습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공부습관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홑따옴표의 의미는 곧 공부는 수동이 아니라 능동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조심할 것은 사학詐學이다. 아이가 공부하는 척하는 공부는<동이사학童而詐學> 차라리 노는 것보다 더 나쁘다<녕이잡희오寗異雜戲惡>는 이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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