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아
■ 모시장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아
  • 권기복 칼럼위원
  • 승인 2021.03.03 16:47
  • 호수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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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이다. 서천에 사는 지인께서 봄의 전령사인 복수초가 노랗게 피었노라고 카톡방에 사진을 보내주었다. 맨 처음으로 고향에서 새봄 소식을 전해오니 반가운 마음 더할 나위가 없었다. 한순간 흔들린 마음 같아서는 당장 지인 댁에 찾아가서 직접 두 눈으로 봄이 피어남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발길은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는 코로나 한파 때문이었다.

필자가 거주하는 홍성도 봄기운은 완연하다. 손바닥만 하게 자란 냉이가 좁쌀 같은 꽃망울을 터뜨리는가 하면, 밭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수선화와 튤립 꽃대가 새끼손가락만큼 자라있다. 때마침 봄비가 흠씬 내려주어서 조만간 대지는 초록이 동색으로 가득 찰 것이다. 초록 바탕을 배경으로 산과 들은 시나브로 갖가지 색깔의 물감을 터치하면서 그림을 완성해 갈 것이다. 그 그림 속에 내가 있고, 가족과 친지는 물론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다.

코로나바이러스 누적 감염자가 9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의 0.2에 해당하며, 500명 중에서 1명은 감염 경험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진짜 무서운 바이러스는 그리움이었다. 그리움 바이러스 누적 감염자는 100로 코로나의 500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요양원과 같은 노인 보호시설에 있다가 보고 싶은 자손들도 만나지 못하고, 눈을 감는 일이 요즘의 현실이다.

2천 년 이전에 중국은 전한(前漢) 시대였다. 당시에는 북방의 흉노족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한나라는 그들을 달래기 위해 공주를 보내달라는 요구를 수용하기로 하였다. 그렇지만 차마 공주를 보낼 수 없어서 궁녀를 차출하여 보내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여 차출된 궁녀가 왕소군이었다. 중국에서 서시, 초선, 양귀비와 함께 4대 미인으로 손꼽힌 왕소군은 수만 리 길을 떠나 흉노족 족장의 아내가 되었다. 그녀가 족장의 아내로 있는 동안 한나라는 흉노족의 침략 걱정을 덜게 되었다.

한나라의 평화는 한 여인의 희생이 담보된 것이었다. 부모 형제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그리운 산천과 작별을 고해야만 되었다. 만인의 행복을 위해 한 여인은 일평생 그리움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고뇌의 눈물을 흘렸다. 그 누가 자신들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남몰래 흘린 한 여인의 눈물을 닦아주고자 했는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은 700년 세월이 흐른 후였다. 당나라 시인이었던 동방규(東方虯)는 소군원(昭君怨)이라는 시에서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네요.> 라고 하였다. 어찌 오랑캐 땅이라 하여 꽃과 풀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왕소군이 그리워하는 꽃과 풀이 아니기에 무채색일 뿐이다. 그리하여 희망을 채색할 길을 잃은 슬픔만이 고스란히 남은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 땅에는 꽃과 풀이 있는데,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이는 예전에 반갑게 맞이하던 꽃과 풀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 홀로 바라보는 꽃과 풀은 돌과 흙에 다를 바 없다. 그저 한 개체의 사물에 불과할 뿐이다. 어떤 사물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공유 되어질 때 비로소 의미가 생겨난다. 그때 우리는 아름다운, 싱싱한, 반가운, 상쾌한 등의 의미를 덧칠하여 함께 기억한다.

우리는 지난해 봄을 상실하였다. 그 기억은 올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절망적 확신을 예단하고 있다. 우리는 만남 속에서 공유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졌다. 따라서 올봄을 봄답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코로나 방역 지침을 준수하면서 가족과 친지, 친구들과 함께 그리움을 타파하는 계기를 만들어보자. 전화와 편지를 자주 하기, 소인수 여행이나 등산하기 등을 통해 올봄에는 새봄의 추억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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