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실천이 중요하죠
작은 실천이 중요하죠
  • 최현옥
  • 승인 2004.01.30 00:00
  • 호수 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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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품을 판매한 수익금으로 이웃을 돕는…최씨는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겨울바람에 몸이 꽁꽁 얼어도 이불 덮인 아랫목에 쏙 들어가면 어느새 몸이 스르르 녹아 내린다. 문틈을 비집고 황소바람이 기세 등등하게 들어오지만 방바닥만은 연탄의 뜨거운 사랑으로 서민들의 시름은 사라져간다. 그래서 안도현은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를 통해 연탄재를 함부로 차지 말라고 했다. 한산에서 중화요리집을 운영하는 최병덕(53)씨, 그는 연탄같은 사람이다. 은둔자처럼 숨어 자신의 몸을 벌겋게 달아 올려 세상을 뜨겁게 사랑한다. 폐품을 활용한 이웃 사랑은 주민들의 따뜻한 아랫목이 되고 있다.
“우리네 삶은 개판이었죠”
인터뷰를 위해 만난 최씨,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신문에 나가냐며 잘라 말한다. 개판이었다는 그의 삶, 스스로 단정해 버린 모습 속에서 과거의 삶을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일궈 가는 모습이 엿보인다. 삶이 180도 바뀐 최씨, 그를 향하던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은 상전벽해 혹은 개과천선이라는 단어로 바뀌고 지역에서 이웃 사랑의 숨은 실천가로 인정받고 있다.
“한마디로 늦게 철들은 거예요. 과거 놀던 가락이 있어 시간이 있으면 자꾸 다른 생각이 드니까 열심히 일한 것 밖에 없어요”
지역 토박이인 최씨는 어느 곳을 가도 성씨만 들으면 삼척동자도 알아주는 방탕아였다. 음식점을 시작해 장사 규모를 늘리면서 나이트 클럽을 운영, 노름에 빠지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그는 점점 수렁에 빠져갔고 그 덕에 부인은 마음과 몸 고생을 톡톡히 치러냈다. 그래서 새로운 삶을 위해 부부는 단양행을 택했고 그곳에서 열심히 일해 모은 돈으로 7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중화 요리집을 냈다.
“사실 마음이 변한 것은 교회에 다니면서죠.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가면 몸이 불편한 주변인들을 보고 돕고 싶더라구요. 저는 돈도 없고… 육체가 튼튼하니까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어요”
최씨는 고향에 돌아와 열심히 살기로 결심, 음식점을 운영하며 나오는 음식 찌꺼기 처리를 위해 공터에 개 50여 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개의 먹성이 좋다 보니 학교급식 후 나오는 ‘짬밥’을 얻기 위해 돌아다니던 중 곳곳에 방치된 쓰레기를 보고 줍기 시작했다. 주운 폐품들은 어느덧 창고를 채워갔고 그는 이웃을 위해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트럭을 몰고 지역을 돌아다니면 이젠 주민들이 좋은 일에 쓴다며 일부러 폐품을 차에 실어주고 그래요. 제가 폐품을 팔아 돕는 것은 아주 조금이라 창피한 생각도 들지만 보람도 느낍니다”
처음에 폐품을 줍는 것이 쑥스러워 주위 눈치를 살폈다는 최씨, 그가 판매한 폐품 수입금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인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이제는 주민들이 도움을 주고있다. 그를 따라 폐품을 모아놓은 장소에 이르자 폐 종이를 비롯해 깡통, 텔레비전, 고철 등 고물상을 방불케 한다. 그는 일년에 두 차례 폐품을 판매하고 7년 동안 어려운 이웃에 전달했다. 그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근본 삼아 타인을 통해 전달하고 있으며 항상 형편이 어려운 주변인을 돕다 보니 그들을 도울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생각한다.
“제가 이번에 한산면자율방범대장에 취임하며서 화원비를 아껴 이웃을 도왔습니다. 허례허식은 싫거든요. 주위를 잘 살피면 이웃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한산면자율방범대에서 6년 동안 활동해온 최씨는 청소를 비롯해 굳은 일을 자청하며 밤 12시까지 자신의 시간을 할애, 대원들에게 성실성을 인정받았다. 대원들은 경력과 상관없이 그를 대장에 선출했으며 최씨는 대장 취임 축하 화원비를 미리 받아 이웃에 전달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원 활동비 중 야식비로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진짜 부끄럽네요. 저 좋다고 하는 일인데…”
형편이 어려워 이웃을 돕는 것이 힘들지만 작게나마 남을 위해 살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는 최씨는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의 시원한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니 꽁꽁 얼어붙은 강 밑을 흐르는 봄을 재촉하는 물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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