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의 자기를 재현하고 싶다
서천의 자기를 재현하고 싶다
  • 최현옥
  • 승인 2004.02.06 00:00
  • 호수 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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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땀으로 뒤범벅이 된 사내가 익숙한 솜씨로 흙을 이겨 틀 위에 얹고 물레를 돌려가며 자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굵은 땀방울이 맺힌 이마, 자기를 바라보는 지독한 눈빛, 앙다문 입술…. 고집스러움이 단단히 배어난다.
“서천 자기를 재현하고 싶어 흙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 흙이 참 좋아요. 게다가 과거 지역에 가마터가 많았던 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30여분만에 자기 하나를 뚝딱! 만든 김상덕(37)씨. 물레질 할 때 손끝의 떨림, 마음의 동요는 자기에 그대로 나타난다며 무념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가 서면 월하성에 둥지를 틀은 지도 어느덧 1년 반. 지역의 자기를 재현하고 싶은 마음에 외지 생활을 접고 고향에 돌아와 흙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삽 하나 둘러매고 해안을 전전하는 김씨는 서천 지역 곳곳의 여러 흙을 섞어가며 자기 재현에 노력하고 있다.
“서천∼공주 간 고속도로 건설 현장 사람들은 아마 저한테 질렸을 거예요. 그곳에서 흙을 구하기 위해 수백 번도 더 갔거든요”
지난해 월기리 문화 유적 발굴현장은 물론이고 농토에서 토기 파편이 발견됐다는 제보가 귀에 들어가면 동분서주하는 김씨. 지역의 자기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흙이 사용됐는지 알아야 하며 토기 파편 조각은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자기를 보고있으면 구운 온도, 사용한 흙, 유약 등 자연스럽게 읽혀진다는 김씨는 서천이 백제 문화권이었던 점을 감안해 부여 박물관을 자주 찾는다. 그곳에서 눈으로 관측한 자기를 재현하고 무엇이 잘 못 됐는지 재작업을 한다.
“자기 재현이라는 것이 한가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 조절도 중요하거든요. 가마도 벌써 몇 번째 부셨는지 몰라요”
흙 한가지로 다양한 질감과 색감의 자기를 만들어 내는 김씨는 가마 안에서 불이 활활 타오를 때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사람의 손끝으로 빚어도 정작 그릇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불의 요변과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기후나 습도, 바람, 산소의 양에 따라 불길이 변하고, 불의 변화에 따라 한가지 유약이라도 색깔이나 표면상태가 달라진다. 하지만 이렇게 정성을 들여도 그의 마음에 차지 않으면 모조리 박살이 난다. 평생 흙을 만지고 장작불을 때는 지독한 노동, 누가 알아주지 않는 일을 하는 그는 평생의 업보를 타고난 듯 한다.
그가 자기 재현으로 아픔을 겪는 동안 가족들은 가난으로 고통을 짊어져야 했다. 김씨가 여주에서 대장으로 활동 당시 만난 부인 김미정(34)씨,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 오면서 뒷바라지를 했다. 그러나 고통을 같이 참아온 것은 부부의 찰떡 궁합 때문이다. 여주 공방에서 자기 조각가로 활동했던 미정씨는 과거 남편과 함께 전국생활공예에 출품해 장려상을 받은 경력도 있다. 답습보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좋아하는 그녀는 현재 칼라믹서로 익살스럽고 앙증맞은 생활 소품을 만들고 있다. 부부는 지역에 내려와 2000년 경기도 수원 태현사에서 바루를 제작하며 어린이 체험활동을 했던 경험을 살려 문화 행사장에서 시현회를 비롯해 체험장을 마련했다. 관광객이 몰리는 서면의 경우 체험장이 인기를 모을 것으로 기대, 시설을 갖추고 있는 중이다.
“서천지역 어린이들에게 지역의 흙을 갖고 토기를 만드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어 기획했어요. 저희는 단순 제작뿐만 아니라 유약을 바르고 굽기까지 할 수 있는 진정한 체험장을 만들 것입니다”
아직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했지만 서로 버팀목이 되며 지역 자기 재현과 청소년 학습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부. 가마 안의 활활 타오르는 불과 함께 지역 문화 계승 발전을 위해 정열을 태울 것을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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