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 가면 따뜻한 가슴을 품은 어버이의 숨결을 느낀다
그 곳에 가면 따뜻한 가슴을 품은 어버이의 숨결을 느낀다
  • 공금란
  • 승인 2004.02.06 00:00
  • 호수 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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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의 가장 깊은 마을 은곡리 ‘사랑방’ 사람들
서천에서 611번 지방도를 타고 부여방면으로 가다보면 문산면 은곡리가 있다.
은곡리는 서천의 북동쪽 끝 마을로 고개하나 넘으면 이내 부여 땅이다. 그래서 교통이 불편했던 시절에는 서천장 보다 가까운 부여 홍산의 5일장을 이용할 정도로 서천에서 가장 깊은 마을이다.
구수환 이장 60세, 유월령 부녀회장 61세, 마을에서 가장 젊은이 46세, 고등학생 2명으로 초등학생 이하는 단 한 명도 없는 노·장년층 주민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전형적으로 농촌마을의 실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은곡리, 그곳에 가면 따뜻한 가슴의 내 어머니와 내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기자가 은곡리를 찾은 것은 대보름을 이틀 앞둔 화장한 오후였다.
마을 초입에 자리잡은 마을회관 겸 노인정 마당 양지뜸에 주민들의 윷놀이 판이 벌어져 시끌벅적하다. 대부분 주민들이 고령인데다 수도작 위주의 농업을 하고 있어 농한기가 유난히 긴 마을 은곡리, 이들의 겨울은 이렇게 마을회관에 모여 윷놀이와 흉허물없는 덕담으로 농사에 지친 심신을 달랜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난 자리, 품안에 있었던 자녀들을 객지로 떠나보내고 허전하고 빈 가슴 남은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 때문에 은곡리 마을회관은 동네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00년에 마을회관이 건립됐을 때에는 운영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사랑방 구실을 못했어. 지난해 노인정 인가를 받아 약간의 운영보조금을 받고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보태온 덕분에 제 구실을 하게 됐다”고 구경환 옹(노인회장 72)은 말한다. 게다가 권재희 지원보건진료소장도 힘을 보태고 있어 고마운 일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敬聽佳話堂’ 이 마을 출신의 국전 작가 구대섭 씨가 ‘서로 공경하므로 듣는 아름다운 대화의 집’이 되라는 염원을 담아 써준 액자가 눈에 띈다.
이 말을 지키기라도 하듯 은곡 주민 대부분이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함께 나눈다. 회관이 노인정을 겸하고 있어 노인들이 모이게 되었고 당연하다는 듯 부녀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점심을 마련하게 되었다. 노인, 결국 대부분의 주민이 노인이기에 자연스레 많은 주민들이 회관에 모여 점심을 하게 된다.
“두 노인네가 마주앉아 쓸쓸히 밥을 먹다가 회관에서 이렇게 밥을 나누니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부녀회원들이 전이며 나물 등 얼마나 맛나게 음식을 해대는지…” 구경환 노인회장은 부녀회원들 칭찬으로 입이 마른다. 쌀이며 부식거리들을 집에 있는 대로 싸들고 와 회관에서 벌려놓으면 임금 밥상이 부럽지 않다며 모두 만족하는 분위기다.
거실에서 이장 님을 비롯한 몇 분의 주민들과 대화하는 동안 방안이 시끄럽다. 찬바람을 피해 마을회관 방한칸을 차지한 아주머니들이 신명나게 윷판을 벌린 것이다. “호호하하, 모야!” 이게 바로 사람 사는 냄새인가보다.
은곡리는 대보름날 마을 총회와 함께 척사대회를 열 계획이다. 외지에 나가있는 자녀들은 고향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상품에 쓰라고 정성을 담아 이것저것 보내올 터이고 그러다보면 풍성한 척사대회가 될 듯하다. 많은 마을에 회관이 있지만 은곡마을처럼 회관을 잘 활용하는 곳은 드물 것이다.
마을 주민들의 숙원이 뭐냐고 묻는 말에 “이제 몸뚱이가 늙어 여기저기 쑤시는데 날마다 병원에 다닐 수도 없고 회관에 물리치료기 같은 거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한 어르신의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이장님이 거든다. “그렇지않아도 올해 우리마을에 건강교실이 설치 될 거 같은데, 이거 극비니깐 기사양반 절대로 소문내지마” 이장님의 간곡한 당부, 기자는 감히 약속을 어기고 만다.
60호, 120여 명이 알콩달콩 정을 나누며 사는 마을, 천방산 끝자락 서천의 가장 깊은 마을 은곡리.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오로지 농사로 한평생을 살면서 자식들 고이 길러 공부시키고 출가시킨 분들의 소망이 꼭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래서 객지 나가있는 자식들 걱정할세라 밤마다 농사로 지친 늙은 육신을 혼자 뒤척이며 시름하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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