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취재/금강권역 사라진 포구를 찾아서 (7)한산 ‘후포(朽浦)’
■ 기획취재/금강권역 사라진 포구를 찾아서 (7)한산 ‘후포(朽浦)’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1.08.19 08:50
  • 호수 10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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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기수역 어장 금강 하류 지역…용왕제 지내던 용산리

우여 뱅어 농어 복어 황새기 참게…어족자원 보고, 객주 상주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금강 하류지역
▲금강 하류지역

조선조 영조 때 이중환은 <택리지>에 이렇게 쓰고 있다.

부여·은진에서 비로소 바다 조수와 통해 백마강 이하 진강(鎭江) 일대는 모두 배편이 통한다. 은진·강경은 충청도와 전라도의 육지와 바다 사이에 위치하여서 금강 남쪽 들 가운데에 하나의 큰 도회로 되었다. 바닷가 사람과 산골 사람이 모두 여기에서 물건을 내어 교역한다. 매양 봄·여름 동안 생선을 잡고 해초를 뜯을 때에는 비린내가 마을에 넘치고 큰 배와 작은 배가 밤낮으로 두 갈래진 항구에 담처럼 벌여있다. 한 달에 여섯 번 열리는 큰 장에는 먼 곳과 가까운 곳의 화물이 모여 쌓인다.”

1991년 금강하굿둑으로 강과 바다가 단절되기 이전의 금강 하류지역은 거대한 기수역 어장으로 어족자원의 보고였으며 뱃길을 통해 인근 지역주민들의 왕래가 빈번했다. 강을 따라 들어선 마을마다 배가 닿는 포구가 발달해 육지의 산물과 해산물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봉황산 아래에 들어선 한산면 용산리 마을
▲봉황산 아래에 들어선 한산면 용산리 마을

한산면 용산리는 한산면 남쪽 금강변에 있는 마을로 해발 60여미터의 용왕산 서쪽과 북쪽으로 마을이 형성돼 있다. 용왕산은 용두산, 또는 용머리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현재 마을 사람들은 봉황산으로 부르고 있다.

평지돌출형의 용왕산 정상에서는 예로부터 용왕제를 지내던 곳이었으며 가뭄이 닥쳤을 때 기우제도 지냈다. 한산군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에는 1차 사직단 - 2차 건지산 - 3차 취봉 - 4차 용두산 - 5차 와초후산 - 6차 원산 - 7차 망월산의 순으로 지냈다 한다.

마을 서쪽 단상천 하구에 후포(朽浦)’라 불리던 포구가 있었다. 일제 때 한산에서 이 포구까지 신작로를 내고 포구를 통해 한산 들판의 쌀을 군산으로 실어내갔다.

또한 금강 하류 수산물의 집산지 역할을 수행했으며 객주가 상주하면서 수산물을 인근의 한산, 마산, 홍산 등지로 공급했다. 이로 인해 번성을 누렸으며 강 건너 웅포, 나포를 통해 전라도와의 교류도 잦았다.

▲‘후포’라 불리던 포구가 있었던 단상천 하구
▲‘후포’라 불리던 포구가 있었던 단상천 하구

1960년대만 하더라도 120여가구 700~800여명의 주민들이 살았다. 이들은 주로 부족한 농사 외에 금강의 풍부한 어족자원을 포획해 생활했으며 내륙으로 운송하여 이를 유통시키는 일에 종사하기도 했다. 이들의 활동 무대는 인근 한산장과 마산장, 판교장, 부여의 홍산장에까지 미쳤다.

또한 금강변에 풍부한 갈대를 이용해 갈자리나 채반, 갈꽃 빗자루를 엮어 수입을 올렸으며 많은 주민들이 가마니를 짜 생계를 이었다는 마을 주민들의 증언이다. 금강 변의 여러 마을 중에서도 이곳에서 가마니 짜기가 가장 성행했으며 이곳에서 생산된 소금 가마니는 군산의 도매상을 통해 전라남도의 염전지대로 공급되었다.

오늘 주민들은 논농사에 전적으로 의지해 생활하고 있으며 인구는 30여가구 70여명으로 줄었다.

<허정균 기자>

주민 인터뷰

▲한산면 용산리 경로당
▲한산면 용산리 경로당

지난 13일 뉴스서천 기획취재팀은 후포라 불리던 포구가 있었던 한산면 용산리 마을을 찾아 주민들의 말을 들었다.

새우젓 한 독에 보리 두 말

조수가 단상천을 거슬러 올라가 구동리까지 올라갔다. 단상천 하구에 포구가 있었는데 고깃배가 30척까지 들어왔다. 중선배들이 들어왔다. 객주가 있어 조기, 황새기, 새우를 거래했다. 객주가 고깃배를 대면 장사꾼들이 그놈 띠어다가 팔았다. 강경까지 고깃배가 들어갔다. 봄철에 우여, 뱅어, 여름에 농어, 복쟁이, 황새기를 잡았다. 새우젓 한 독에 보리 두 말이었다. 새우젓도 참 좋았다. 쌀 한 말이면 생선을 사서 큰 잔치를 치렀다.

강 가운데에 모래톱이 있었는데 물이 쪽 빠지면 건너가서 잡았다. 그거 잡으러 가다가 사람도 많이 죽었다. 들어가다 나오다 깊은 데 디디면 나오지 못하고 사고가 났다. 지금 이맘 때가 잡을 때이다. 재첩 잡아다 팔지는 않고 집에서 먹기만 했다.

해마다 백중사리 때면 둑이 터지곤 했다. 둑이라고 해야 사람 하나 빠듯이 다녔다. 해마다 둑이 터져 항상 불안불안 했다. 사람 인력으로 하다보니 제대로 둑이 쌓아질 수 없었다. 87년 홍수난 뒤 제방을 쌓았다.

논 아래로는 갈대밭이 있었다. 갈밭 아래로 게가 많았다. 더팽이, 깔땡이, 미도 많았다. 더팽이는 털이 많은 게고 깔땡이는 털이 없고 깨끗하다. 미는 납작한 것이 해삼 비슷하다. 갈바탕에 미가 기어댕겼다. 뻘바탕에 엎드려 있으면 색깔이 뻘색깔이라 잘 모른다. 꿈틀꿈틀 기어댕기면 그거 보고 잡았다. 해부해서 내장 긁어내고 고추장찍어 먹으면 꼬들꼬들한 것이 맛이 좋았다. 짱뚱이도 많았다. 여기서는 뻘망둥이라 했다. 참게도 많이 잡히고 뱅어도 잡혔다. 복쟁이도 많았고 새우도 많았다.

참게는 잡아서 젓도 담고 볶아서도 먹었다. 참게가 벼를 끊어먹어서 잡아냈다. 뱅어 그물은 새벽에 건진다. 쫀쫀쫀득 말려서 먹었다. 뱅어는 젓갈을 담으면 다 녹아버려 국을 끓여먹거나 말려서 고추장 찍어먹었다. 크기는 거의 볼펜자루만 했다.

어떤 뱅어장수가 판교에 뱅어 팔러 가서는 어떻게 먹느냐고 물어봉게 쇠고기 넣고 끓이면 맛있다고 했드래여. 그렁게 에이 이 사람, 쇠고기만 넣어도 맛있는데 뭐하러 뱅어를 넣는당가하면서 사지 않았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20~30km 까지 우케에 지고 한산, 마산, 홍산, 판교장까지 팔러 다녔다. 옛날 어른들 고기는 많이 잡았지만 겨우 먹고 살았다. 돈은 못벌었다. 30톤이 넘는 기계배를 부리는 사람도 있었는데 출항해서 동해안으로 가서 명태를 잡아왔다. 그런 배들은 돈을 많이 벌기도 했다. 그 때가 이승만 때였다. 큰 배가 오르내릴 때 상어가 달라들기도 했다.

저 강 건너 꺼먹산이 있는데 어느날 산이 하나 떠내려오다가 이쪽으로 붙길래 빨래하던 아줌마 한 분이 전라도로 가라하고 빨래방망이로 쑤욱 밀어버렸더니 전라도 쪽으로 갔다는 전설이 있다.

다음은 용산리에서 살고 계시는 어르신(1950년생)과의 일문일답이다.

- 포구 자리가 어디입니까?

= 저기가 ()포구 자리여. 포구에 나룻배가 있었어요. 나룻배를 타고 군산 어판장에 뭐 사러 가고 그랬어요. 황석어젓, 새우젓, 갈치젓을 실고 온 배가 와서 팔고 그랬어요. 강경으로 가던 배가 강경으로 못 가면 여기 포구에 배를 대고서 젓갈을 다 팔고 가고 그랬어요. 저기 빨간 지붕이 있는 데까지 배가 가고 그랬어요. 거기에 객주가 있고 그랬어요.

- 침수피해를 입은 적이 있습니까?

= 1987년에 수해가 났어요. 나락이(벼가) 누룽방울 나올 때 침수가 났어요. 나락이 짠물이 들어 왔다가 나가서 먹을 게 없었어요. 우리 아저씨가 이장 일을 할 때였어요. 당시에 구호물품으로 큰 그릇, 큰 옷, 몇 년된 정부미 쌀이 나왔는데 면에서 매일같이 나와서 사진 찍어가고 조사를 했어요. 논 평수대로 이자없이 보상이 나오는 거여. 그런데 (보상이) 금방 나오냐고, 안 나오지. 그래서 동네 인심이 사나워 가지고 매일 싸우는 거여. 우리 아저씨가 돈 먹은 거 아니냐고 그런 거예요. , 여기 있으면 굻어 죽겠다, 빨리 떠나자 하고서 서울로 가버렸어요. 이장이고 나발이고 놔두고. 그래서 그 뒤로는 몰라요. 이십년 넘게 서울에서 살다가 고향이라고 이리로 온 거에요. 그런데 우리 아저씨가 돌아가신지 한 2년 됐어요. 여기서 나고 자란 고향인게.

- 당시에 하굿둑 공사가 완료되었습니까?

= 하굿둑에 다리 놓고서 그렇게 수해를 입었어요. 다리 놨다고 구경가고 그랬응게. 하굿둑은 놨는데 여기 제방은 손을 안 댔어요. 제방이 칼날처럼 생겼었어요. 사리 때는 그것(제방)이 터져서 짠물이 들어와 갔고 강가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고생을 했어요. 신성리 위에 있는 나룻개가 터지고 그랬어요.

<주용기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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