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시대를 아우르는 진정한 호학인 공자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시대를 아우르는 진정한 호학인 공자
  • 송우영
  • 승인 2021.10.08 10:22
  • 호수 1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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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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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70년 주무왕武王이 처음 도읍했던 서쪽의 호경鎬京을 떠나 동쪽의 낙양洛陽으로 옮겼다. 역사는 이를 주나라 동천東遷이라 부른다. 주나라가 도읍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옮겼다는 말이다.

도읍을 옮긴다는 것은 그 왕조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곧 주나라 왕조의 국력은 쇠하여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제후국들의 병력이 강성하여 주 왕실의 명을 거역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하여 70개가 넘는 나라들이 중원천지의 패권을 다투는데 그중 12개 나라가 그야말로 군웅할거를 주도하고 있었다. ············ 이를 춘추십이열국春秋十二列國이라불렀다.

이중에 약소국인 나라에서 인류의 거벽 공자孔子는 태어난다. 당시 아버지의 나이는 70세요 어머니의 나이는 15세였다. 사마천 사기의 기록은 이렇다. “흘여안씨여야합이생공자紇與顔氏女野合而生孔子”(숙량흘叔梁紇이 안씨顔氏의 딸과 들에서 합하여 공자를 낳았다.)

인류에 가장 위대한 사건을 하나 꼽으라면 그건 단연 혼인한 여인이 생명을 잉태하는 것일게다. 그리고 이 아버지는 공자나이 3세 때 죽는다. 이미 공자의 아버지에게는 첫 번째 아내 계씨에게서 9명의 딸이 있었고, 두 번째 아내 시씨에게서 맹피라는 허리 아래를 못쓰는 아들이 있었고, 세 번째 아내 안씨녀에게서 공자가 태어난 것이다.

문제는 가정을 책임져야 할 아버지가 죽고 없다는데 있다. 공자의 모친 안씨녀는 단 한 번도 아들 공자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했다는 기록이 없다. 더욱이 그 시대는 공부의 시대가 아니라 전쟁과 싸움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공자는 자신이 살아남을수 있는 길을 싸움이 아닌 공부에서 찾아낸다. 그리고 인류의 싸움의 물줄기를 공부만으로도 충분히 살아남을수 있다는 대명제를 몸으로 증명한 인물이다.

그가 인류에 던진 첫 일성은 학이시습學而時習이다. 은 어린 자녀가 책상에서 두 손으로 계산을 하거나 뭔가를 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문 글자가 한··일 합쳐 모두 대략 15만자에 이른다 하는데 그 모든 글자의 앎의 출발은 배울 학에서 비롯된다. 배워야 안다는 말이다. 사람의 행동 중에서 가장 훌륭한 행동을 꼽는다면 그것은 배우는 행동일 것이다. 배운다는 것은 나의 지식의 한계가 여기까지입니다를 스스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배움은 곧 겸손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중궁仲弓의 제자 순자는 사람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묻지않아서다라고 했다.<미혹자불문迷惑者不問> 중궁의 스승 공자께서는 태묘에 들어가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모르는 것을 신중히 묻는 것이 예다.<자문지왈子聞之曰 시예야是禮也 논어팔일제3-15> 어려서는 찾아가서 배워야 하며 늙어서는 불치하문으로 배워야 한다. 아기 때는 무릎으로 기어가서 배우며<해제지동슬보학孩提之童膝步學> 8세가 되면 아버지 손에 이끌려가서 배우며<팔세지수친수인八歲知于親手引> 10세가 되면 스스로 스승을 찾아가서 배워야 하며<십세지우자방사十歲至于自訪師> 16세가 되면 등과하여 그간의 공부 애씀을 증명해야 한다.<방년등과증芳年登科證> 이것이 누군가의 아들로 태어난 자들의 숙명과도 같은 운명이다.

공자가 위대한 것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오로지 공부만으로 본을 보였기 때문이다. 인류의 성인을 한명꼽으라면 이는 분명 공자일 게다. 물론 예수나 부처를 성인의 반열에 놓을 수도 있지만 그분들은 신의 영역의 문제다. 부처가 공부했다는 말 들어본적 있던가. 뭔가?닦았다라는 말은 있어도 공부했다는 말은 극히 드물다. 예수가 누군가에게 가서 글을 배웠다는 말이 있던가. 물론 혹자들의 소설에는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지만 그건 소설이고 경전의 기록에 어떻게 썼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아무리 읽고 또 읽어봐도 예수가 누군가에게 가서 공부를 배웠다는 기록은 단 한 줄도 없다. 이런 예수를 향해 대략 500년 전 사람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물론 공자는 예수라는 특정인물을 지칭해 말한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는 배우지 않았어도 날때부터 아는 생이지지生而知之자가 있다.” 라고. 이말을 들은 제자가 말하기를 아하. 그렇군요. 공자선생님께서 생이지지자시군요. 하니. 공자는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나는 날때부터 아는 생이지지자가 아니라 열심히 공부해서 아는 학이지지자. 공자는 늘 자신이 의 영역에서 불려짐을 거부했고 공부하지않고 아는 것을 거부한 진정한 호학인好學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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