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지식의 용병 공자의 ‘발분망식기發憤忘食記’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지식의 용병 공자의 ‘발분망식기發憤忘食記’
  • 송우영
  • 승인 2021.11.04 21:16
  • 호수 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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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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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를 일러 다윈의 시대라 한다. 강자만이 살아남을수있다는 약육강식 이론을 내세운 챨스다윈의이름을 딴 현대조어다. 이런 시대에 강자니까 살아남는게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는자가 강자다라는 이론을 몸으로 보여준 사람이 있었으니 그게 공자이다.

들판에서 야합으로 태어나 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위로는 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에게서 난 딸이 장장 9명이나 있었고 또 두 번째 부인에게서 두 다리를 못쓰는 형이 한 명 있었고 거기다 자신의 모친의 나이는 이제 갓 16, 이런 악조건 속에서 공자의 말을 논어 자한편9-6에서 이렇게 밝힌다.

나는 어려서 천했기 때문에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일해서 먹고살았다<오소야천吾少也賤 고다능비사故多能鄙事>”

어떻게 들어도 뼈아픈 얘기임에는 분명하다. 그런 공자가 인생의 변곡점이 되는 사건을 당하는데 계씨집 마름 양호에게 문전박대당하는 사건이 그것이다. 공자 나이 대략 15세 무렵쯤 됐으리라.(혹 이본에는 16세로 봄) 모친이 졸하여 장례를 막 마치고 났는데 노나라 실권자 계손씨가 전국 대부’, ‘선비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세를 규합하기 위하여 대부와 선비를 위한 성대한 잔치를 벌였다. 공자도 몰락은 했으나 신분이 대부의 후손인지라 상중임에도 혹여 잔치집에가서 밥굶기기야 하랴 싶어 밥이나 배불리 먹을 요량으로 계손씨가 베푸는 잔치에 간다. 사마천 <사기> 공자세가편에 이를 상세히 기록해 놨는데 그 일부를 옮기면 이렇다.

공자가 상중이라 허리에 띠를 두르고 있는데<공자요질孔子要絰> 계씨집 마름 양호가 공자를 쫒아내며 말하기를<양호출왈陽虎絀曰> 계씨의 잔치는 대부. 선비. 들을 초대한 것이지<계씨향사季氏饗士> 너 같은 녀석을 초대한 게 아니다<비감향자야非敢饗子也>”

이로 말미암아 공자는 되돌아오거늘<공자유시퇴孔子由是退> 이때에 당한 설움이 얼마나 컸으면 50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공자는 또렷이 기억한다. 하루는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가르침을 청하니 스승 공자는 쌩뚱맞는 소리를 하는데 그게 논어 양화편 17-19문장에 명토박혀있다. 공자는 말한다.<자왈子曰> “나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여욕무언予欲無言>” 자공은 말한다<자공왈子貢曰>.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지 않으시면<자여불언子如不言> 제가 ‘<논어>을 어떻게 짓겠습니까?<즉소자하술언則小子何述焉>” 공자는 말한다.<자왈子曰>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천하언재天何言哉> 사시는 운행되고<사시행언四時行焉> 만물은 자라거늘<백물생언百物生焉>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천하언재天何言哉>”

그러고는 스승 공자는 더 이상 말을 안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행간<글과 글 사이의 숨은 뜻>이 빠졌을거라 생각해서 보망해서 읽는 독법으로 주송朱松의 처 축씨祝氏<朱子母親>가 어린 아들들에게 고사전 및 옛날이야기 책을 읽어주면서 책 내용에 없는 부분을 만들어서 읽혀주었다는데서 비롯됨>을 읽어낸 인물이 염덕念德 범백숭范伯崇을 비롯 채원정蔡元定<주자의 친구이자 제자>의 셋째 아들 구봉九峰 채침蔡沈이다. 말인즉 자공의 그 다음 물음이 스승 공자께서는 언제 공부에 뜻을 두셨습니까?” 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변이 논어위정편 4문장이다. “오십유오이지우학吾十有五而志于學 나는 열다섯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쉽게 말해서 나는 15세 무렵 내 모친 장례 후 허기진 몸을 이끌고 계손씨 잔치집에 갔었는데 밥이나 배불리 먹을 요량으로 ... 거기서 그집 마름 양호 따위에게 호되게 문전박대를 당했지.<청나라 학자 고사기高士奇1645-1704에 따르면 논어양화 17-1문장을 예로 들며 30년 후 양호는 이부분에 대해 공자에게 사과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두 번다시 그런 치욕을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는 공부를 어떻게 했을까. 논어 술이편 7-18문장에 자세히 나와있다. 섭공이 공자를 초대했으나 공자에 대해 아는게 없는지라 먼저 공자의 제자 자로에게 스승 공자님은 어떤 분이신가라고 물어본 것이다. 여기에 대해 자로가 답변을 못했다. 다음날 이 사실을 안 공자는 분노에 치를 떨면서 이런 아둔한 녀석 너는 왜 이렇게 말하지 않았니? 너의 스승 공자는 발분망식發憤忘食이라. 공부를 했다하면 밥먹는것도 잊는다고.”

여기서 주목할 글자는 분자이다. 이 글자는 성낼 분이다 공자는 왜 이 글자를 썼을까. 사람이 분노하면 초인적인 힘이 생긴다는 말이다. 양화에게 당한 문전박대가 공자에겐 얼마나 뼈에 사무쳤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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