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년이 찰나이다. 인생 준비하다 만 것 같다. 그동안 부모님은 가셨고 아이들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 우리는 아들ㆍ딸에서 아빠ㆍ엄마가 되었고 할아버지ㆍ할머니가 되었다.
한 세대가 가니 또 한 세대가 왔다. 그러다 칠순을 맞았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다. 아버지 어머니는 산을 넘어갔고 얼마 후면 우리가 그 산을 넘어가야 한다. 생멸은 숙명이라 거역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아이들이 지 엄마 고희연을 차려주었다.
그래도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하지 않았는가. 부모 보내드리고 두 아이 시집보냈으니 여기까지 끌고 온 것만도 신의 커다란 축복이다.
결혼한 지 사십년이 다 되어간다. 네 번이나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꿈엔들 생각이나 했을까.
그동안 참 많이도 일을 했다. 돈 버느라, 아이들 가르치느라, 유학 보내느라, 시집 보내느라 고생도 참 많았다. 산이 높고 강이 깊은 줄 조금은 알겠다.
“예까지 와주어 고맙소. 축하하오.”
오늘 사진첩에서 예쁘고 앳된 젊은 날의 아내 사진을 보았다. ‘그런 때도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눈시울이 뜨거웠다.
작년에는 내가 칠순이었다. 큰 아이가 나에게 손녀를 선물해주었다. 올해엔 아내가 칠순이다. 이번에는 둘째애가 아내에게 손녀를 안겨주었다. 신은 우리에게 두 번씩이나 축복을 내려주었다. 이런 벅찬 행복도 있는가.
나는 결혼해서도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 때 어머니 연세는 60세도 채 되지 않았다. 지금의 우리 나이보다 훨씬 적었다. 그런데 시대는 모든 것을 통째 바꾸어놓았다. 몇 십년 안팎인데도 시대는 남 보듯 얼굴을 재빨리 바꾸었다. 얘들이 부모를 모시고 산다는 것은 이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 되어버렸다. 이런 법도 있는가.
둘만 남았다. 우리들의 시간도 빨라지고 있다. 작년엔 큰 아이 손녀를 돌보느라 아내는 한 달을 딸집에 가있었다. 나의 첫 번째 가정실습이었다. 올해엔 둘째 아이 손녀를 돌보느라 역시 딸집에 가 있다. 나의 두 번째 가정실습이다.
이 땅의 아내들이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산다고 해도 집에서 해야 할 일은 하며 살아야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당장 굶어야 하니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아내가 있을 때는 공짜로 밥을 얻어먹었는데 이 사실 하나만도 나에겐 대오각성이다. 누군가가 아프거나 먼저 가면 남아있는 사람이 뒤처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새파란 목숨을 끊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내의 잔일들이 너무나 많다. 아니다. 전부가 큰일들이다. 생명과 직결되는 것들이다. 밥, 반찬이며 설거지, 분리수거며 청소, 빨래며 화분 물주기 등 시장도 가야하고 끼니마다 뭘 먹을까도 생각해야 한다. 서툴고 실수하는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끼니는 왜 이리도 빨리 돌아오는지, 먹고 잠자고 싸는 것이 삶의 전부인 것 같다. 나는 도통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고 전부가 새로운 것뿐이다. 이런 것들이 새삼 성스럽고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가 있고 없고는 천지 차이이다. 사십여년을 묵언수행해 온 아내가 이랬으니 성자가 따로 없다. 행복은 이렇게 멀리 있지 않다. 나의 칠순과 아내의 칠순은 인생에서 우리 둘 만이 숨겨놓은 젊은 날의 또 다른 청사초롱이 아닐까.
순간 ‘모든 것이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과 번개 같다’는 금강경 한 구절이 내 머리를 내려친다.
“이 놈아, 도깨비 방망이다. 정신 차려.”
구운몽의 성진도 다시 현실로 돌아와 불교에 귀의하지 않았는가. 어찌 내 비상약으로 마음을 달래지 않을 수 있으리. 외로움은 한평생 불빛을 따라 다닌다
밤길
잘못 들어
그만
놓쳐버린
그렇게 새벽까지 울다간
산마루 겨울 바람
- 신웅순의 「아내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