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아내의 칠순 소회
■ 모시장터 / 아내의 칠순 소회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21.11.11 10:18
  • 호수 10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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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야 신웅순
​석야 신웅순

칠십년이 찰나이다. 인생 준비하다 만 것 같다. 그동안 부모님은 가셨고 아이들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 우리는 아들딸에서 아빠엄마가 되었고 할아버지할머니가 되었다.

한 세대가 가니 또 한 세대가 왔다. 그러다 칠순을 맞았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다. 아버지 어머니는 산을 넘어갔고 얼마 후면 우리가 그 산을 넘어가야 한다. 생멸은 숙명이라 거역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아이들이 지 엄마 고희연을 차려주었다.

그래도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하지 않았는가. 부모 보내드리고 두 아이 시집보냈으니 여기까지 끌고 온 것만도 신의 커다란 축복이다.

결혼한 지 사십년이 다 되어간다. 네 번이나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꿈엔들 생각이나 했을까.

그동안 참 많이도 일을 했다. 돈 버느라, 아이들 가르치느라, 유학 보내느라, 시집 보내느라 고생도 참 많았다. 산이 높고 강이 깊은 줄 조금은 알겠다.

예까지 와주어 고맙소. 축하하오.”

오늘 사진첩에서 예쁘고 앳된 젊은 날의 아내 사진을 보았다. ‘그런 때도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눈시울이 뜨거웠다.

작년에는 내가 칠순이었다. 큰 아이가 나에게 손녀를 선물해주었다. 올해엔 아내가 칠순이다. 이번에는 둘째애가 아내에게 손녀를 안겨주었다. 신은 우리에게 두 번씩이나 축복을 내려주었다. 이런 벅찬 행복도 있는가.

나는 결혼해서도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 때 어머니 연세는 60세도 채 되지 않았다. 지금의 우리 나이보다 훨씬 적었다. 그런데 시대는 모든 것을 통째 바꾸어놓았다. 몇 십년 안팎인데도 시대는 남 보듯 얼굴을 재빨리 바꾸었다. 얘들이 부모를 모시고 산다는 것은 이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 되어버렸다. 이런 법도 있는가.

둘만 남았다. 우리들의 시간도 빨라지고 있다. 작년엔 큰 아이 손녀를 돌보느라 아내는 한 달을 딸집에 가있었다. 나의 첫 번째 가정실습이었다. 올해엔 둘째 아이 손녀를 돌보느라 역시 딸집에 가 있다. 나의 두 번째 가정실습이다.

이 땅의 아내들이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산다고 해도 집에서 해야 할 일은 하며 살아야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당장 굶어야 하니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아내가 있을 때는 공짜로 밥을 얻어먹었는데 이 사실 하나만도 나에겐 대오각성이다. 누군가가 아프거나 먼저 가면 남아있는 사람이 뒤처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새파란 목숨을 끊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내의 잔일들이 너무나 많다. 아니다. 전부가 큰일들이다. 생명과 직결되는 것들이다. , 반찬이며 설거지, 분리수거며 청소, 빨래며 화분 물주기 등 시장도 가야하고 끼니마다 뭘 먹을까도 생각해야 한다. 서툴고 실수하는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끼니는 왜 이리도 빨리 돌아오는지, 먹고 잠자고 싸는 것이 삶의 전부인 것 같다. 나는 도통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고 전부가 새로운 것뿐이다. 이런 것들이 새삼 성스럽고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가 있고 없고는 천지 차이이다. 사십여년을 묵언수행해 온 아내가 이랬으니 성자가 따로 없다. 행복은 이렇게 멀리 있지 않다. 나의 칠순과 아내의 칠순은 인생에서 우리 둘 만이 숨겨놓은 젊은 날의 또 다른 청사초롱이 아닐까.

순간 모든 것이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과 번개 같다는 금강경 한 구절이 내 머리를 내려친다.

이 놈아, 도깨비 방망이다. 정신 차려.”

구운몽의 성진도 다시 현실로 돌아와 불교에 귀의하지 않았는가. 어찌 내 비상약으로 마음을 달래지 않을 수 있으리외로움은 한평생 불빛을 따라 다닌다

 

밤길
잘못 들어
그만
놓쳐버린

그렇게 새벽까지 울다간
산마루 겨울 바람

- 신웅순의 아내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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