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성익성聖益聖 우익우愚益愚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성익성聖益聖 우익우愚益愚
  • 송우영
  • 승인 2021.11.26 07:08
  • 호수 1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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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송우영

나라 정공定公14년 쯤이었으리라. 공자는 대사구라는 막중한 직위있으면서도 군주보다 더 막강한 당대 실세가문인 계손씨 맹손씨 숙손씨들과 맞서다 밀려 노나라를 떠난다. 이때부터 공자는 수레를 타고 천하를 유랑하는 끝을 알 수 없는 주유철환의 길을 간다.

·· 나라를 거쳐 정나라로 갔을 때의 일이다. 이때의 한 사건을 400년 후의 한나라 무제 때 사관 사마천은 자신의 야사집 사기 공자세가편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공자가 정나라에 갔을 때<공자적정孔子適鄭> 제자들과 길이 어긋나 서로 잃어버려<여제자상실與弟子相失> 공자는 홀로 성곽 동문 쪽에 서있는데<공자독립곽동문孔子獨立郭東門> 정나라 사람 중에 혹자가 자공에게 말한다.<정인혹위자공왈鄭人或謂子貢曰> 동문에 사람이 있는데<동문유인東門有人> 그 이마는 요임금 같으며<기류사요其類似堯> 그 목은 고요와 비슷하며<기항류고도其項類皐陶> 그 어깨는 자산과 비슷합니다.<기견류자산其肩類子産> 그러나 그사람 허리 아래는<자연요이하自然腰以下> 우임금의 세치 정도 미치지 못하며<불급우삼촌不及禹三寸> 지쳐있는 모습이 초상집 개와 같습니다.<루루약상가지구絫絫若喪家之狗>”

공자를 찾은 뒤 자공은 좀전의 정나라 사람이 했던 말을 공자께 전하니<자공이실고공자子貢以實告孔子> 공자가 기뻐하며 말했다.<공자흔연소왈孔子欣然笑曰>

형상은<요임금 고요 자산 같은 훌륭한 분에> 미치지는 못하지만<형상미야形狀未也> 그러나 상가집 개를 닮았다고 했다니<이사상가지구而似喪家之狗> 그래 맞다 그것은 맞는 말이다<연재연재然哉然哉>”

깡마르고 초라하기 이를 데 없고 전혀 볼품없다는 뜻의 상가지구喪家之狗라는 고사가 여기서 유래됐다. 환경과 처지가 불운하다고 해서 거기에 함몰되어서는 안된다. 공부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으로 스스로에게 엄격함을 요구한다. 은나라 시조인 성탕成湯 임금은 세숫대야인 반명盤銘에 아홉 글자를 새겨 세수할 때마다 스스로를 반성했다하는데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이라는 글귀다. :진실로 하루가 새로우면 날마다 새로울 것이며 또 매일 새로울 것이다로 이해되는 글이다.

상가집 개라는 극단의 별명을 들을 정도의 그였음에도 그가 인류의 성인으로 우뚝서는데는 단 하나의 이유만 존재한다. 공자가 살던 시대는 전쟁의 시대이다. 전쟁의 시대에 전혀 어울리지도 않을 것 같은 공부로 인생의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그에게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이는 과연 누구였을까. 공자는 자신을 일러 스스로 날때부터 아는자가 아닌 배워서 아는자라고 분명하게 밝힌 바 있다.<논어계씨16-9> 그의 삶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단 하나의 단서는 공부가 유일이다. 그런 그가 전 인류에게 주는 가르침 또한 배울학그게 다다.

배웠다고 해서 모두가 뜻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논어자한9-21장은 이렇게 위로한다. 싹만틔우고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도<묘이불수자苗而不秀者> 있을 수 있다.<유의부有矣夫> 꽃은 피웠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도<수이부실자秀而不實者> 있을 수 있다.<유의부有矣夫>

김복휴金復休의 제자 박제가는 18019월 장인 尹可基의 옥사에 연루되어 함경북도 종성으로 귀양가면서 장임長稔 장름長廩 장엄長馣 세아들에게 주는글 장임에게부치다<기임아寄稔兒>’를 쓴다. “농사를 지어도 굶주림이 그안에 있다는 공자의 말을 잊지말거라라는 말과 함께 온 힘을 다해 책을 읽되 시간을 아껴라며 당부한다. 앞글은 논어위령공편15-31장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공자는 말한다.<자왈子曰> “군자는 도를 도모하며<군자모도君子謀道> 밥을 도모하지 않는다<불모식不謀食> 농사를 지어도<경야耕也> 굶주림에 대한 근심은 그 안에 있지만<뇌재기중의餒在其中矣> 공부 하면<학야學也> 녹이 그 안에 있다.<녹재기중의祿在其中矣> 그러므로 군자는 도를 걱정하나니<군자우도君子憂道> 가난을 걱정하지 않는다.<불우빈不憂貧>”

나라 문호 한유韓愈는 사설師說에서 말한다. “옛 성인들은<고지성인古之聖人> 일반 백성들과 차이가 현저함에도<기출인야원의其出人也遠矣> 오히려 묻고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데<유차종사이문언猶且從師而問焉>, 요즘의 사람들은<금지중인今之衆人> 성인보다 부족한데도<기하성인지역원의其下聖人之亦遠矣> 묻고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이치학어사而恥學於師> 그러므로<시고是故> 성인은 배워 더욱 성인다워지고<성익성聖益聖> 어리석은 사람들은 더욱 안배워 더 어리석어진다.<우익우愚益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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