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나이 서천풍광에 푹~ 빠지다
경상도 사나이 서천풍광에 푹~ 빠지다
  • 공금란
  • 승인 2004.03.05 00:00
  • 호수 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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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과 서천사람들 담아 ‘회갑 사진전’ 여는 게 소망
“서천의 아기자기한 해안이 정말 정겹습니다” 흉내 낼 수 없는 경상도 사투리, 센 억양 탓에 집중해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와 마주하고 있으면 경사도 사내들이 무뚝뚝하다는 말이 참말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환하고 천진한 미소에 다정다감하다.
박홍교씨는 “58년을 살아온 날들 중 가장 행복한 날들을 서천에서 보내고 있다” 고백한다. 황혼기를 사는 사람들 중에 사연 없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박홍교씨는 고향 경북 영주에서 6·70년대 까까머리, 단발머리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사로 10여 년, 스피커를 제조하는 중소기업을 직접 경영하다 파산, 잠시 전자회사 연구소에 근무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직장생활을 접는 나이 50이 넘어 S건설에 입사, 공주서천 간 고속도로 현장에 파견되면서 2년전 서천과 인연을 맺게 됐다.
직장에서 그는 대민 업무를 담당하는 ‘박 주임’이 공식 명칭이지만 희끗희끗한 머리 탓일까 대개 30∼40대로 젊은 직원들은 그를 ‘영감 님’으로 정겹게 부른다. 그들에게 있어 박 주임은 아버지나 맏형 벌인 그를 동료들은 동료 외에 아코디언 연주자, 사진 작가로도 알고 있다.
그가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한 것은 70년, 고향과 또 아이들이 소재였다. 그러다 사업의 실패와 자녀들의 학비문제로 고가의 장비들을 매각하면서 10년 넘게 카메라를 손에서 놓았단다. 자식처럼 아끼던 장비들을 하나하나 팔면서 속 꽤나 쓰렸을 거다. 하지만 이제 그의 얼굴엔 인생의 참맛을 아는 여유가 보인다.
어려웠던 시절에 순간 잠겼던 홍교 씨가 말을 잇는다. “1남 2녀 중, 아래로 딸 둘을 출가시키고 가정이 어느 정도 안정되니까 아내가 슬그머니 얘기를 꺼냅디다. 좋아하던 사진 다시 시작하라고요” 첨엔 장비를 새로 장만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엄두를 못 냈지만, 아내 문원자 씨(54)의 “한번에 마련하긴 힘들겠지만 조금씩 장만해서 해보세요”라는 말에 용기를 내어 다시 시작해 이제는 전에 가지고 있던 장비의 반은 준비했다면서 어느 것은 구형이라 새로 마련하고 싶은 것도 있단다.
현재 서울에 거주지를 정하고 아내 문원자 씨도 요즘 하모니카 합주단 활동으로 여가를 보내고 있어 홍교 씨가 틈틈이 아코디언을 배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몇 년 있으면 퇴직을 하게 되고 그 때부터 외로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두 내외의 합주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아코디언 실력이 한참 모자라 더 배워야 하는데 서천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배울 곳이 없네요” 독학으로 배우려니 힘들다며 아코디언 연주를 하는 사람의 소개를 부탁한다. 누구나 염려되는 노후생활, 어쩌면 남들을 돕기보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노후를 그들 부부는 알차게 준비하고 있어 이런 게 부창부수(夫唱婦隨)아닌가 싶다.
뻔한 질문, 서천이 어디가 좋으냐 묻으니 “제가 내육 지방에서만 살다 와서 일단 바다가 있어 색다르고, 특히 사진을 찍는 사람 입장에서 얼마나 소재가 풍부한지 모릅니다” 그는 계절에 따라, 또 밀물 썰물로 시시각각 변하는 서천의 해안이 보배롭다고 말한다.
고속도로 공사현장은 동절기 모든 공사가 잠시 중단돼 많은 동료들이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홍교 씨는 어느 때보다 바쁘게 보냈다.
당정리, 송석리, 선도리 쌍도 풍경, 어부들, 아이들 손잡고 어설픈 조개잡이에 나선 관광객들을 틈나는 대로 사진에 담기 위해서. 특히 마량포 해돋이 모습을 담기 위해 이른 새벽 숙소를 나가기 수십 차례, 또 쌍도의 해넘이를 담기 위해서도 그만큼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가끔 날씨 좋은 날엔 카마라 메고 해안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동료들 눈치도 보이고 직장 생활이 중요하니 그럴 수도 없고, 일과 외 시간과 집에 안 올라가는 주말에 집중적으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홍교 씨는 애써 사진 찍는 일이 주업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아쉬움도 슬쩍 흘린다.
그는 이 주일에 한번씩 서울 집을 찾는데 그럴 때면 서천시장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사들고 가는 것을 잊지 않는다. 꽃게 철엔 꽃게, 대하 철엔 대하, 봄이 왔으니 한동안 주꾸미를 사들고 올라가, 아내와 소주한잔하며 서울한복판에서 서천의 갯벌 내음을 맡을 것이다.
요즘 홍교 씨는 밤마다 혼자 뚝딱거린다. 썰렁한 현장식당 벽에 자신이 담은 사진들을 걸기 위해 버려진 액자들을 수선하느라 동료들이 운동하고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즐기는 시간에 사진을 더듬고 액자를 만든다.
틈나면 사진을 찍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그는 “젊은 때는 늙어서 할 일 없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실감을 못 합니다” 그래서 무의미하게 여가를 보내는 젊은 동료들을 보면 안타깝단다.
다시 뻔한 질문을 하나 더한다. 서천에서 가장 곤란한 일이 뭐냐고.
“말로만 듣던 충청도의 ‘돼씨유’ 때문에 고생했습니다. 토지보상이나, 공사 중에 잠시 사용할 토지를 단기 임대하는 업무를 맡아 주민들을 만나 얘기하면 호의적인 태도로 ‘돼씨유’ 그러기에 일이 다 된 줄 알았다가 낭패 보는 일이 좀 있었지요” 충청도 근무가 처음인 그가 과히 격을 만한 에피소드였을 것이다.
홍교 씨는 앞으로도 3∼4년 정도를 서천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카메라 앵글을 통해 어쩌면 서천사람보다 서천을 더 속속들이 바라보게 된다. 이런 그는 서천의 구석구석 비경과 풍물, 사람들을 담아 2년 후를 준비 중이다.
서천에서 맞게되는 회갑에 서천을 주제로 한 사진전을 서천문화원에서 여는 게 꿈이기 때문이다. 2년 후 우리 서천사람들은 서천에 잠시 머물다간 경상도 사나이 눈에 비친 서천을 보게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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