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오는 그 파도소리에 단잠을 깨우고 돌아누웠나~”
“밀려오는 그 파도소리에 단잠을 깨우고 돌아누웠나~”
  • 공금란
  • 승인 2004.03.12 00:00
  • 호수 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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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대학가요제 대상 ‘썰물’ 멤버 전종배 씨
대학생이란 명함하나로 어떠한 일탈도 낭만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가 70·80년대가 아니었나 싶다. 당시 흔하지 않았던 대학생들은 ‘지성인’이란 사회 통념에 대해 책임지려고 노력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그런 시대를 살아온 386세대들에게 있어 대학가요제는 또 하나의 추억이다.
77년에 대학가요제가 처음 시작할 무렵 태어난 사람들, 대개는 이미 대학생활을 마쳤을 만큼 한세대가 흐르고 있다.
본사 사무실에 스물여덟 나는 선남선녀들에게 “밀려오는 파도소리에”를 아느냐 물었다가 묻는 내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닫고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78년 제2회 대학가요제 대상을 차지한 부산대 노래동아리 ‘썰물’의 5인 멤버 중 한사람, 전종배 씨가 서천에 와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은 꼭 봐야지 했다. 소문이란 게 빨라 그가 ‘금강사랑 작은음악회’에 초청 됐다는 말에 할말을 잊었다. 전종배 씨의 후배가 서천군청에 부임하게 된 인연으로든지 필연으로든지 금강의 철새를 보내며 그의 노래를 직접 들을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추억으로 살기에 익숙해 있는 기자의 호기심과 흥분이기에 충분했다.

“지나간 자국 위에 또다시 밀려오며
가녀린 숨결로서 목놓아 울부짖는
내 작은 소망처럼 머리를 헤쳐 풀고
포말로 미소지며 자꾸만 밀려온다
자꾸만 밀려가는 그 물결을
썰물 동여매는 가슴속을 풀어
뒹굴며 노래해 뒹굴며 노래해
부딪혀 노래해 부딪혀 노래해
가슴속으로 밀려와
비었던 가슴속을 채우려하네
채우려하네
밀려오는 그 파도소리에
단잠을 깨우고 돌아누웠나
못 다한 꿈을 다시 피우려
다시올 파도와 같이될거나”

전종배, 70·80년 대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봤던 연예인 아닌 연예인 그를 만나기 위해 나서면서 30년 세월에 이르면서도 아직 많은 뮤지션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밀려오는 파도소리에”를 흥얼거려본다.
‘밀려오는 파도소리에’는 한국가요를 클래식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들으며 지금도 여름날 단골 음악으로 라디오를 타고 흐른다. 이 곡을 만든 김성근씨는 전종배 씨의 선배로 하체장애에도 불구하고 음악과 그림으로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5일, 무지한 눈 폭탄! 그 눈보라 속을 뚫고 전종배 씨를 만나기 위해 나섰다. 그가 근무하는 공주서천간 고속도로 6공구 현장사무실은 마산면 지산리에 자리하고 있다.
쉰을 바라보는 마흔아홉 살 중년남자 전종배 씨는 H산업개발의 현장 소장 명찰이 달린 작업복 차림으로 “온다고는 하셨지만 설마 이 폭설에 오실 줄을 몰랐다”면서 일주일 전에 수술했다는 지물거리는 눈으로 기자를 반긴다.
노래하던 이미지와 사뭇 다른 생소한 고속도로 공사장 소장.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기타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그의 고백은 ‘금강사랑 작은음악회’에서 그의 기타연주 솜씨를 보고들은 사람이면 ‘아하∼그렇구나’고 쉽게 공감할 터다.
“갑작스레 음악회에 초청을 받고 난감했지만, 불러주는 게 고마워서 승낙했는데 감기로 목이 잠겨서 걱정됩니다” 그의 이런 걱정은 6일 오후 기우였다는 게 증명됐다. 동료들이 찬조 출연해줘서 중창곡 ‘밀려오는 파도소리에’를 잘 소화해 냈고 앙코르까지 받았으니까.
대 1, 고 1 된 자녀와 뒤늦게 유화와 민화 그리기에 빠져서 대전에서 작품활동 중이라는 아내 신현옥 씨가 그의 가족들이다.
누구나 꿈이 있듯 그도 꿈이 있다. 바다가 보이는, 혹은 배나무 과수원으로 둘러 쌓인 자그마한 라이브 카페를 갖는 게 소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보기에 아까운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 솜씨며 타고난 무대 매너가 충분히 뒷받침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교통이 좀 불편하면 어떻습니까, 차 한잔하면서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자연 모여들게 될 겁니다”그러면서 대전의 과수원 속에서 꽃이 만발한 봄날 피아노를 밖에 내놓고 연주한다는 한 라이브카페에 대해 사뭇 부러운 마음으로 이야기한다.
전종배 씨는 한동안 서천의 곳곳을 뒤지고 다녔다. 자기 능력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자그마한 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아니다. 자신의 꿈을 세울 터를 마련하기 위해서가 맞겠다.
“서천 땅 값 만만치 안던데요. 금강 변엔 엄두도 못 내겠어요”이런 그의 말을 들으면서 기자는 못 내 아쉬워 틈나는 대로 알아보고 정 없으면 내 집터를 내주겠다는 용감한 제안도 했다.
무슨 일인가에 열심을 내는 사람은 다른 일이 주어져도 열심 낼게 뻔하니까 지금 고속도로 공사 현장소장 일도 사명을 다해 하고 있지만, 앞으로 자기의 꿈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사람이 라는 것을 동료들의 표현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근래 많은 사람들이 서천을 떠나길 바라지만 오밀조밀 정겨운 아름다움이 있는 서천에서 살기를 소망하는 이들이 의외로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몇 년 후 서천 어느 바닷가나 숲 속에서 파도소리 같은 그의 노래와 별처럼 도란대는 그의 하모니카 소리를 들으면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앙코르를 신청할 것이다.
그러면 그는 ‘금강사랑 작은음악회’에서 앙코르 요청에 못이기는 척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시작한 것처럼 기꺼이 노래할 거다.
전종배, 그의 소원이 이뤄지면 아마도 서천은 좀더 미·감·쾌·청에 다가설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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