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부상조 하며 살아요
상부상조 하며 살아요
  • 최현옥
  • 승인 2004.03.19 00:00
  • 호수 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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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존중, 예와 규율, 자유가 공존하는 판교면 마대리 사람들
‘타닥! 타닥!’
아침 7시 빨간 사랑이 타 들어간다. 김신환(69)씨는 은밀한 시각에 연애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노인들의 사랑방에 군불을 지핀다. 판교면 마대리의 허름한 폐가, 굳게 닫혔던 이곳의 빗장이 열려 모시 삼는 노인들의 사랑방으로 변신한 것은 4년 전이다. 마땅히 모임 장소가 없던 노인들에게 이곳은 더없이 좋은 작업장이 됐다.
“하루종일 모시를 삼는 노인양반들 위해 군불 때는 것이 뭐 대수라고요. 오히려 부지깽이를 휘저으며 싸한 연기를 맡을 때면 흐뭇해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도 나서… 저는 이 시간이 좋습니다”
3년 전부터 노인들의 사랑방이 된 빈집에 군불을 지펴온 김씨. 겨울철이면 폐가를 활용하는 노인들이 당번제로 군불을 지피기 위해 미끄러운 비탈길을 타는 모습이 안쓰러워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군불을 지펴야 하기 때문에 타인의 눈에 수고스러워 보이는 일이지만 그는 오히려 이 시간이 여유롭다고. 방고래의 어둔 길을 지난 연기처럼 늙은 나이에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시간도 되고 타인을 위해 무엇이나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 젊어서부터 너무나 바지런해 별명이 ‘발발이’였던 김씨는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7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동분서주다. 4번의 수술로 다리 사용이 불편한 부인의 병수발은 물론이고 가정살림과 농사일을 도맡고 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어김없이 지피는 아궁이는 그가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통로이다.
“이렇게 모여서 하루종일 모시도 삼고 재미있는 얘기도 하고 참 즐거워요. 그리고 항상 우리를 위해 군불을 지펴주는 김 선생이 고맙지”
그의 사랑이 전해져서 일까? 사랑방에 모인 10여명의 노인들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하다. 얼마 전 노인들은 김씨에게 고마움을 전할 방도를 찾던 중 맥주 몇 병을 보냈다. 그러나 완강히 거부하며 오히려 더 큰 선물을 받게돼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고. 아주 작은 것이지만 오고가는 정이 좋을 따름이다. 게다가 종종 간식거리는 물론이고 식사도 대접하는 김씨는 매년 마을 행사에 물품을 구매해 도움을 주고 있어 숨은 봉사자로 알려져 있다.
“우리네가 이제 남은 것이 뭐가 있어요. 이렇게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 야죠. 그래서 그런지 이 방은 예와 규율이 있는 곳이죠”
세로로 긴 방 구조로 인해 시커멓케 타들어 간 아랫목을 시작으로 2줄로 마주 앉아 모시를 삼는 노인들. 따듯한 아랫목을 시작으로 나이 순서대로 앉아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추위를 많이 타서 그렇다고 하지만 이들은 대를 이어가며 조상으로부터 배운 예와 규율을 계승하고 있는 듯 하다.
알고 보니 사랑방을 위해 도움을 주는 사람이 또 있다. 헛간 가득 쌓여 있는 장작을 제공한 조남곤(73)씨다. 그는 겨울철이 다가오면 인근 야산에서 폐목을 베어 노인들이 겨울동안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다. 그 외에 고령화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가정에 장작을 제공한다. 이처럼 마대리는 존경과 사랑이 존재해서 그런지 70대의 나이에도 모두다 정정하다. 장수비결에 대한 질문이 우문 일 정도다.
“우리 동네 자랑중에 하나는 안 식구한테 참 잘한다는 거예요. 이곳이 여자만의 공간이고 우리를 위해 주변인들이 솔선수범하는 모습에서 봤듯 여성을 존중할 줄 아는 곳입니다”
남녀평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져 가는 시대, 보이지 않게 서로 아끼며 존중하고 살아가는 것이 여성존중임을 보여주는 것 같다.
취재를 마치고 문을 열고 나서자 첩첩산중의 골을 따라 훈풍이 불어온다. ‘난곡’ 혹은 ‘난뒷골’로 난리가 난 뒤에도 남아있다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지명, 이들이 오랫동안 존속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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