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의 여인, 그녀는 흙과 결혼했다
정열의 여인, 그녀는 흙과 결혼했다
  • 공금란
  • 승인 2004.03.19 00:00
  • 호수 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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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에 올라오는 표고버섯 처럼 소담하고...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 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가서 8:6∼7)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한 순간이라도 사랑의 대상이 없으면 절망이란 녀석을 만날 수 도 있기에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가 사랑을 찾는 작업일지 모른다.
황미자(43) 씨는 지금 흙과 깊은 사랑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른다. 언제나 흙 묻은 장화를 신고 있으며 깎을 시기를 넘긴 듯한 손톱 밑이 흙으로 채워져 있는 날이 많다. 표고버섯과 밤나무 농사가 그녀의 5년째 생업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구분하자면 농업이 아닌 임업을 하고 있는 거다.
세간의 투대로 말하면 그녀는 ‘처녀농군’이지만 미자 씨에게 이런 수식어를 달고 싶지 않은 것은 양성평등이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자기 일과 자기 몫을 감당하며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서다.
40대 중년여인이 된 황미자(43) 씨, 8년 째 동행하며 10년을 채우리라는 그녀의 잿빛 애마는 한없이 바쁘다. 집에서 좀 떨어진 농장을 오가는 일부터 시작해서 현장농업이 익숙하지 않아 전국을 찾아다니며 배우러 다닌 일, 농협 대출관계일, 혹시나 대한민국 농정의 혜택 볼일이 없을까 해서 관공서에 들락거리고 출하 처에 다니는 모든 활동을 그녀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원초적 문장을 빌리자면 그녀는 마산면 가양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1녀3남 중 장녀로 태어났다. 고등학교까지 고향에서 마치고 상경해 혼자 힘으로 대학공부를 했다. 모교에서 잠시 조교로 있다가 농업관련 잡지사에서 일한 적도 있다.
그러던 그녀가 다시 20년 만에 고향에 뿌리내리겠다고 돌아온 거다. “내 일이 하고 싶었다”가 고향에 돌아오게 된 이유의 전부였다. 그 “내 일”이란 건 바로 “몸으로 뛰는 일”이라는 설명뿐이고 결혼할 생각은 아예 없느냐는 물음에 그저 웃기만 한다.
“느닷없이 내려와서 농사한다고 하지만 보태줄 뭐가 있어야 해라, 마라 하지요. 땅 얻고 빚 얻어서 뭘 벌려도 저가 알아서 하겠지 할 수밖에 없었지요” 이렇듯 아버지 황인준 씨가 맘졸이며 그저 딸을 지켜보는 동안 미자 씨는 기반을 잡았다.
1천 평이 넘는 표고버섯 재배하우스에 2만 본의 표고 목을 설치했고 밤나무 밭 1만2천여 평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수확할 수 있게되었으니 말이다.
법 없어도 살 아버지 황인준(68) 씨의 딸로 태어나서 그 법 없어도 살 아버지 대신 악역을 맡고 있는지 모르겠다. 미자 씨를 아는 사람들은 그녀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너무도 잘 안다.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준 바람에 금쪽같은 논 서마지기와 집이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서 모면한 것은 그녀의 기지였고 당당함이었다.
기자가 미자 씨의 표고버섯 농장을 찾았을 때는 일련의 고달팠던 일을 뒤로하고 부녀는 소복하게 올라오는 표고를 수확하고 있었다.
사실은 4일 폭설로 미자 씨의 표고버섯 하우스 일부가 주저앉고 말았다.
“자재를 교체하려해도 품귀현상이라 쉽지 않고 중고라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말하는 미자 씨에게 절망하는 기색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미자 씨가 어영부영 사는 것처럼 볼 사람이 있으랴 마는 그녀가 길다면 길지만, 5년이란 짧은 기간에 기반을 잡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내려 올 때 어영부영 내려 온 거 아닙니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고 뜻한 대로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5개년 계획을 세워서 실천했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더 농사를 지으면서 밤나무는 1만평, 표고사 1천 평을 더 확장시키겠단다. 적어도 그녀는 당분간 탐스럽게 피어오르는 표고버섯과 맑은 가을하늘 아래 반짝일 알밤에 빠져 살 거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집시처럼 살다갈 겁니다” 10년 후의 계획도 간단하다. 이 간단하게 보이는 꿈을 이루기 위해 그녀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게 뻔한 일이다.
봄볕에 올라오는 표고버섯처럼 소담스럽게, 가을날 탱글탱글 나뒹굴 알밤처럼 미자 씨 부녀의 꿈도 여물어 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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