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배가 고플 때 찔레의 어린 순을 따서 껍질을 벗겨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약간 달착지근한 맛과 쌉싸래한 풀 맛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찔레는 장미과의 낙엽 관목이며, 장미 넝쿨과 같이 넝쿨로 자랍니다. 줄기에 가시가 있고 잎 모양도 장미와 비슷합니다. 들이나 야산에 5월에 꽃이 피며, ‘신중한 사랑, 가족에 대한 그리움, 온화, 고독 등’의 꽃말이 있습니다.
●찔레꽃 전설
옛날 중국에 있는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고려는 해마다 처녀들을 원나라에 바쳐야 했습니다. 고려는 원나라와의 전쟁에서 진 뒤 침략을 피하기 위해 약속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고려의 처녀들은 끌려가기 싫어도 나라에서 강제로 원나라로 보냈습니다. 딸이 있는 사람들은 산골에 들어가 숨어 살기도 하였습니다.
찔레와 달래 두 자매도 공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아버지와 같이 산속에 숨어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건강하실 때는 가난해도 행복하게 살았지만, 아버지가 병환으로 몸져 눕자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두 딸은 아버지의 약값을 구할 길이 없어서 약초나 나물을 캐서 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결국 관리의 눈에 발각되어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둘 다 공녀로 데려가겠다는 것을 언니는 자신이 가겠다고 나서며 동생은 아버지의 병환을 돌봐야 한다고 사정하였습니다.
언니는 공녀로 끌려가고 동생 찔레는 아버지와 고려 땅에 남았습니다. 찔레는 다행히 착한 주인을 만나 큰 고생은 안 했습니다. 그래도 고향의 아버지와 동생의 소식이 너무 궁금하여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찔레는 아픈 몸으로 고향에 한 번 다녀오겠다고 주인에게 간청했고, 주인은 찔레의 병이 깊어진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허락하였습니다.
떠난 지 10년 만에 돌아온 고향 집은 무너져 버리고 잡초만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아버지와 달래의 흔적은 찾을 수조차 없고, 이웃 사람에게 가족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찔레가 잡혀간 뒤 너무 상심하여 병환이 깊어져 돌아가셨고, 장례를 치른 달래는 그 길로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원나라에서도 몸이 건강하지 못했던 찔레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회복한 찔레는 어릴 적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지낸 추억이 배어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달래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달래는 찾을 수 없었고, 찔레는 그만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몇 년이 지나자 찔레가 쓰러져있던 산길에 눈처럼 하얀 꽃이 피었고, 꽃이 진 뒤 서러운 운명을 슬퍼하듯 빨간 열매가 맺혔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찔레의 슬픈 한이 그 꽃에 서렸다며 찔레꽃이라 부르기 시작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