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개척 아닌가요?
산다는 건, 개척 아닌가요?
  • 최현옥
  • 승인 2004.03.26 00:00
  • 호수 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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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로 봉사활동 펼치는 김석구씨
누군가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고 했다. 어떤이는 살아가며 만나는 고통에 지쳐 표류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헤쳐나가 살아가는 기쁨으로 승화한다.
고통을 삶의 발판으로 삼아 기쁨으로 승화시킨 김석구씨를 만났다.
햇볕도 바람도 쉬어 가는 서천읍 화금리 2구 김씨의 집. 인적도 끊기고 오직 자연과 함께 하는 이곳에 최근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일제시대 서천에 거주하던 일본인이 지역을 잊지 못해 35년 전 결성한 ‘서천회’ 회원이 4월 방문한다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뭐라고 이렇게 신경을 쓴단 말인지… 고마울 따름이네.”
툇마루에 앉아 일본에서 온 편지를 읽던 김씨는 흐뭇한 웃음을 머금으며 중얼거린다. 지난해 일본어 통역을 하다 알게된 서천회 회원들, 단순하게 일본어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친분을 가지게 됐으며 그는 일본에 초청도 받았다. 김씨는 아직도 자신을 잊지 않고 편지를 보내주며 항상 가족처럼 살갑게 대해주는 그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처럼 김씨에게 ‘일본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보람이고 희망이며 미래다. 일본어를 통해 지역에 봉사를 할 뿐만 아니라 친구도 생겼고 사회인으로 설 수 있는 버팀목이 됐기 때문.
“벌써 20여 년이 지난 세월인데 아직도 생각하면 고통스럽습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저 꿈만 같습니다.”
조금 전 편지를 읽으며 흐뭇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눈물부터 글썽이는 김씨. 그에게는 가슴아픈 기억이 있다. 평생을 함께 할 것 같았던 사랑하는 부인과 사별하고 사기결혼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 일로 그는 재산을 탕진한 것뿐만 아니라 건설부 행정직에 근무하던 직장까지 잃었다. 그는 한참 공부해야할 자식들 앞에서 삶 자체가 막막했고 배신감에 모든 것을 자포자기했다.
삶의 벼랑끝에서 김씨가 시작한 것은 일본어 공부였다.
“아마 술로 풀려고 했으면 전 벌써 죽었을 지도 몰라요. 다행히 이 고통을 공부로 풀어서 이제는 좋은 일도 할 수 있네요.”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공부로 승화한 그는 그렇게 20여 년간 홀로 화금리에서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 이처럼 공부는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버팀목이 된 것이다.
그의 책꽃이에는 그동안 노력에 대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정기 구독한 잡지책을 비롯해 너무 오랫동안 봐 헤진 사전 등 다양한 서적이 즐비하다.
혼자 살면서 끼니를 거르는 일은 태반사이지만 공부를 거르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눈이 침침해 공부하기가 더욱 어려워지지만 그의 숨은 노력은 일본어 능력시험2급에 통과라는 성과를 가져다 줬다.
“2002년 월드컵 때 나라를 대표해 일본어 통역사로 자원봉사까지 했어요.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보람이죠.”
현재 서천군자원봉사센터에서 일본어 강의를 자원봉사하는 김씨.
그는 월드컵 당시 젊은 사람들과 어깨를 같이하며 한달 동안 자원봉사 한 것을 비롯해 모시문화제 통역사로 활동했다.
또 최근에는 입소문이 나면서 문화원에서 강사로 활동, 그의 자상하고 성실한 모습은 수강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외로울 때는 공부도 하고 일본에 방문했을 때 찍었던 사진과 그들이 보내준 편지를 보며 위안을 삼고 있어요”
지난번 일본에 방문했을 당시 찍은 사진을 꺼내 하나하나 설명하는 김씨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한다.
“요즘 텔레비전 보면 젊은 사람들 끄덕하면 자살하더군요. 고통을 승화시켜 자기 발전 방향을 찾는 것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습니다”
고통을 자기 발전방향으로 승화시켜 자원봉사를 하는 김씨.
그의 얼굴에는 고통을 승화한 승자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 견디어야할 고통의 시간이 겹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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