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원짜리’ 이제는 어엿한 장년
‘십원짜리’ 이제는 어엿한 장년
  • 공금란
  • 승인 2004.03.26 00:00
  • 호수 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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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궂은 일 주검의 흔적을 씻고 고인을 인도하는 삶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수만의 직업이 있다. 온갖 욕 다 먹어도 얻고 싶은 대통령의 권좌, 평범한 셀러리맨, 밤낮을 거꾸로 사는 등대지기까지.
대개는 깨끗하고 편하면서도 많은 대가를 얻는 직업을 원한다. 이런 직업을 갖기 위해 많은 시간 배움에 투자하는 것일 게다.
장의사, 염장이, 화장장. 죽음을 두려워하는 만큼 죽음에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오랜 동안 천대받고 살았을 지도 모른다. 홍식 씨는 상가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가장 굳은 일을 굳은 일인지 모르고 하는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 29살이라지만 그를 어릴 적부터 봐온 이들은 30대 중반이 넘었을 거라 한다. 결코 성이 없지는 않을 진데 성도 모른단다. 서천의 많은 사람들은 홍식 씨 이름은 몰라도 상가에서 ‘십원짜리’ 홍식 씨를 본 이들은 많을 것이다.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홍식 씨 얘기가 나왔고 그의 삶과 하는 일,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일이라는 의견이고 본지 ‘사람들’ 주인공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말에 공감했다.
혹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사람 가십거리나 삼는 게 아니냐고 질타할지 모른다는 걱정도 있다. 하지만 기꺼이 그를 만나고 그의 삶을 짚어보기로 한 것은 이 사회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이을 소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지난 며칠 홍식 씨를 수소문하고 다녔지만 허사, 포기할까하는데 22일 해질 녘, 홍식 씨가 모 장례식장으로 들어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평소에 안면이 있던 터라 쉽게 이야기는 시작했지만, 신문에 나온다는 말에 “싫어, 안 해” 도리질하며 “나 혼나면 어떡해?” 한다. 세상 무슨 일이 그를 두렵게 했는지 모를 일이다. 지난 호 본지에 실린 사람들을 설명하고 또 설명해 승낙을 얻었다.
“엄마랑 둘이 사러” 정확하지 못한 발음 탓에 집중을 해야 의사소통이 된다.
선입견일까 생각보다 깔끔한 옷차림에 엄마가 옷 빨아 주느냐 물었다. “아니, 내가, 엄마는 밥하고 맨 날 자” 몸이 안 좋은 모친과 사는 모양인지 오늘은 병원에 갔단다.
단 답형 질문에 단 답형 대답이다. 집에 언제 가냐 물으면 “10 시에 버스 타고” 차비 안내지 하고 물으면 “근데 군산 차는 내야돼”하고, 일하면 돈벌지 하고 물으면 “오만 원 줘”하며 다섯 손가락을 펴 보인다.
어릴 때부터 버스운전기사의 심부름을 하며 눈 익혀 놓은 덕에 그를 모르는 기사들이 없고 보니 서천군내에서 만큼은 홍식 씨 자신이 버스 표다.
“오만 원 벌면 2만원은 엄마 갖다주고 나머지는 내가 까먹어” 그러지 말고 저금하라 했더니 무슨 맘을 먹었는지 기자에게 “밥 안 먹었지?” 묻고는 저녁을 사겠다며 예의를 갖춘다.
한 뷔페식당, 주섬주섬 담아주는 대로 접시를 받아 들고는 건강이 안 좋은지 사시나무 떨 듯 한다. 뜨거운 국물을 건네어 진정시키고 앉았다.
모든 사람에게 반말하느냐 물었더니 아니라며 “언니 몇 살이야?” 묻는다. 마흔살 넘었다는 대답에 가늠이 안 서는지 “아들 몇 살이야” 다시 묻기에 고등학생이라 했더니 감 잡았다는 듯 “어휴”하며 미안한 기색이다.
이내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로 먼저 성큼 가더니 얼마냐 묻고 주머니에서 푸릇한 지폐를 내 보인다.
이건 내가 사야 되는 거라며 아무나 밥 사주지 말라했더니 “고마워”라 답례한다.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걱정 없는 대화를 하다보니 세상시름이 부질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학교라곤 9살 때 다녀보고 안 다녔단다. “학교 싫어” 한마디로 잘라말 하는 홍식 씨, 남들이 뭐라 부르는지 아느냐 물으니 “아러, 십원짜리” 주저 없이 대답한다. 그렇게 불러도 기분 안 나쁘냐는 기자의 물음에 함빡 웃으며 “뭐 괜찮지, 그런걸…” 득도 한 사람의 해탈의 웃음 같다.
‘십원짜리’ 그의 말대로라면 초등학교 1학년이나 다니다가 학교를 떠난 후, 누구 가릴 것 없이 길가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며 “십원 만, 십원 만”하던 탓에 얻은 별명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십원을 주지 않으면 가차없이 여학생들의 치마를 들쳐 올렸다니 이것도 홍식 씨가 일찍이 터득한 생존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죽음의 길에 동참한 삶이라 마치 인생사를 초월해 사는 듯한 사람으로 보였다. 이처럼 세상에 미련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또 있을까. 정말 죽음을 초월한 듯 세상에 미련이 없는 사람이기에 어쩌면 세상 떠나는 사람들의 마지막 길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주검이 떠난 방에 주저 없이 들어가 말끔히 치우고는 만장 펄럭이며 상여를 이끄는 홍식 씨 모습은 이미 서천의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러면서 몇 만원의 수고 비를 청하지만 여기에도 원칙은 있어 좀 가난해 보이는 집에선 1, 2만원 깎아 줄줄도 안다.
우리는 떠돌이 인생 ‘십원짜리’ 홍식 씨에게 만족하는 삶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 또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을 자리에 항상 존재하는 책임감을 배워야하지 않을까. 잠시 떠돌다 가는 이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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