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서천홍보대사
움직이는 서천홍보대사
  • 공금란
  • 승인 2004.04.02 00:00
  • 호수 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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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첫 열차 기다리며 장항역 앞 쓸고 닦기 십 수년
장항읍민들께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장항을 한바퀴 돌아보고 삶의 활력을 느끼기란 심히 어렵다. 특히 ㅇ마트를 중심으로 한 시장의 빈터는 말 그대로 쓰레기장. 또 해안도로를 따라 달려봐도 가동되고 있는 공장주변을 제외하면 ‘나간 집구석’ 같은 느낌을 받는다.
며칠 전 도내 인근에 사는 벗이 그의 친구를 대동하고 다녀갔다. 기자의 소개를 받고는 모 군청에 근무한다던 친구가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개인 택시, 충남 60바 8121 나형열’ 그리고 집 전화번호와 이동통신번호.
사연인 즉, 지난 겨울 가족들과 열차여행을 겸한 나들이 차 장항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서천관광에 나섰는데 그 때 만난 택시기사가 저렴한 가격도 가격이려니와 얼마나 친절하게 서천을 안내하던지 감동했단다. 그리고 자신이 공직에 몸담고 있다보니 군민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군 홍보를 해주면 얼마나 장한 일이냐며 널리 알리고 싶다했다.
장항역으로 갔다. 아저씨 한 분이 길에서 벽돌조각을 주워 한쪽으로 치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열차에서 내리는 손님을 기다리는 줄선 택시들 사이에 충남 60바 8121번 모범택시가 서 있다. 기사 님은 뵈질 않는다. 전화했더니 근처라며 오겠단다. 다가오는 사람, 역시! 길의 벽돌을 치우던 바로 그 사람, 나형열 기사였다.
“열차는 한시간에 한번 꼴로 도착하는 데 멍하니 있으면 뭐합니까. 이 근처 청소라도 해야지” 자신의 주변을 청소하는 게 습관이 된 모양이다. 덕분에 이름 있는 기관의 표창을 두루 수상했고 올해 군수표창도 받았다.
“한달전에 역 근처로 이사왔는데 정말 지저분합디다. 8시 22분에 첫 열차가 도착하는데 1번으로 택시를 세워 놓고 2∼30 분 청소를 합니다”
소개한 사람 얘길 했더니 “아하! 그 가족 기억납니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 치부책에 외지에서 다녀간 손님들 연락처가 수백 개 있습니다. 한번 다녀가신 분들이 다시 찾으시곤 하기 때문에요” 나 기사 택시를 다시 찾는 건 당연히 그의 정성과 친절에서 기인한 것일 게다.
나 기사는 마서에서 중학교시절을 보내고 이내 서천군과 전국을 두루 다니게 됐다. 지금은 사라진 직업이지만 6∼70년대 가장 어렵고 대접 못 받던 직업이었던 직업 중 하나였던 버스차장. 당시 어린 버스차장들은 가난으로 진학을 못한 청소년의 상징이었다. 그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며 잡초처럼 질긴 생존능력을 소유했고 자신들이 직접 버스를 운전하는 게 꿈이었던 사람들이다.
나형열 기사, 버스 차장을 거쳐 직행버스, 관광버스, 시내버스를 운전했다. “덕분에 서천은 물론 전국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압니다”며 아는 만큼 관광객을 좋은 곳에 안내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택시기사들을 관광홍보 대사로 임명하는 제도가 있으면 효과를 볼 것 같다는 제안도 했다.
질곡 많은 25년 버스기사 생활을 접고 85년 7월, 개인택시를 장만해 8년 넘게 장항역을 지키며 모범운전사로 인정받아 일해오고 있다.
작은 키에 까마잡잡한 얼굴, 어쩌면 중학교 졸업하면서 겪은 세파가 그의 얼굴에 고스란히 축적 된 듯도 보인다. 자칫 너무 고생한 사람들은 ‘내 자식만 잘되면 그만이다’는 식의 배타적인 감정에 빠질 수도 있는데 그는 ‘더불어 사는 재미’를 일찍이 터득했나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역 앞 빈터는 완전히 쓰레기 투기장이었지요. 읍사무소에 몇 차례 진정해서 쓰레기를 치우고 평탄작업을 해서 보기가 좀 나아졌습니다” 외지인이 땅임자라 관리가 안 된다는 빈터를 가리키며 그가 한말이다. 그의 제안으로 이제 주민들이 여기저기 푸성귀를 싶고 해서 제법 텃밭의 모양새가 나고 나 기사 자신도 한쪽 모퉁이를 일궈 상추며 쑥갓, 고추 등을 심을 계획이란다.
그를 만나는 내내 ‘참 부지런한 사람’ 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어려웠던 시절 대한민국을 지켜온 중추세력이란 생각에 숙연해 진다.
장항역 광장에서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는 도중 그의 휴대폰이 울린다. “예, 예 알았습니다. 곧 가죠” 손님의 호출이라며 대화의 마무리를 재촉한다. 인터뷰하며 사진을 찍는 것을 부럽게 바라보던 동료 기사들이 손님 호출을 받고 가는 그를 더욱 부러운 듯 바라본다.
장항 역을 스르르 빠져나가는 그의 택시를 조심스레 따라가노라니 택시들의 난폭운전에 대한 선입견도 사라진다. 기자는 마서 남전마을 앞에서 해안 쪽으로 사라지는 8121번 택시를 보며 많은 생각에 잠긴다.
‘살기 어려운 서천’ ‘차라리 군산시 장항동으로 하는 편이 낫겠다’ 무수히 불만의 소리를 쏟아내는 사람들이 나형열 기사의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또는 역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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