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22) /운남바둑
■ 박일환의 낱말여행 (22) /운남바둑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2.11.17 04:00
  • 호수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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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무진한 바둑의 수
박일환 시인
박일환 시인

흔히 바둑의 수는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그런 오묘함이 바둑의 매력이기도 해서 그동안 단순한 오락이나 잡기 이상의 대우를 받아왔다. 거문고, 바둑, 글씨, 그림은 군자가 즐길 만한 것이라며 금기서화(琴棋書畫)라는 말을 만들어 사용할 정도였다. 바둑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고대 중국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졌으며 한때는 일본 바둑이 종주국인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그러다가 한국이 일본 기사들을 따라잡고, 절치부심한 중국이 실력 있는 기사들을 양성해 지금은 중국과 한국이 서로 어깨를 견주고 있는 상황이다.

바둑 역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고수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 누가 가장 뛰어난 고수라고 할 수 있을까? 저마다 유명한 기사 이름을 댈 수 있겠지만 이제 그런 질문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무의미해졌다. 아무리 뛰어난 프로기사라도 인공지능과 대결하려면 두세 점 정도는 깔고 두어야 하는 처지까지 몰렸다. 바둑에서 절묘한 수를 흔히 신의 한 수라고 하는데, 앞으로는 그런 표현 대신 인공지능의 한 수라는 말을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바둑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정석을 잘 익혀야 한다. 정석이란 고수들의 오랜 경험과 연구 결과에 따라 가장 효율적이고 유리한 지점을 찾아 돌을 놓는 걸 말한다. 일종의 기본기라고도 하겠는데, 때때로 고수들은 일부러 정석을 벗어난 변칙수를 놓기도 한다. 이런 변칙수를 만난 상대는 당황하기 마련이다. 혹시라도 자신이 미처 모르는 신수(新手)를 개발해서 들고나온 게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낱말이 있다.

운남바둑: 알쏭달쏭하여 분간하기 어려운 일.

운남은 중국 남서부에 있는 지역으로, 현지어로는 윈난[雲南]이라고 한다. 운남에 사는 사람들은 바둑을 둘 때 유난히 변칙수를 많이 사용하는 걸까? 아니면 운남에서 통용되는 바둑 규칙이 다른 지역과는 다른 걸까? 이런 의문들을 가져볼 수 있겠으나 정확한 어원을 확인하기는 힘들다.

이 말은 조선시대 작자미상의 한문 속담집인 동언해(東言解)라는 책에 처음 등장한다. 이 책에 운남혁(雲南弈)’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은 바둑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고, 그 뒤에 공졸하분 수안도란(工拙何分 手眼都難)’이라는 풀이를 달았다. 이걸 국어학자 이기문이 속담사전을 펴내면서 그대로 가져와 운남 바둑이라는 표제로 삼은 다음 동언해(東言解)에 나오는 구절을 국어사전에 있는 것처럼 해석해서 풀이해 놓았다. 운남바둑은 표준국어대사전에만 나오는데, 운남에 한자 표기를 하지 않았다. 한자를 표기해 주는 게 옳다.

바둑 규칙은 한중일 삼국이 조금씩 다르다. 우리가 예전에 두던 전통 바둑은 순장바둑이라고 해서, 흑돌과 백돌을 각 8개씩 특정 지점에 미리 깔아둔 다음 시작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중국 사람들이 바둑 두는 방식을 보면서 얼마나 이상하다고 여겼을까? 운남바둑이라는 말은 그런 상황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운남이 중국 바둑을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바둑과 관련해서 유명한 지역이기는 하다. 그건 운남에서 생산하는 바둑돌 덕분이다. 운자(云子)라고 부르는 운남 지역의 바둑돌은 은은한 녹색이 스며 있어 고풍스럽고 감촉도 좋아 명청 시대에는 황실에 보내는 공물에 포함됐다. 지금도 운남 지역에는 유명한 바둑돌 생산공장이 있으며, 세계 주요 기전에 사용할 뿐만 아니라 국빈용 선물로 이용할 만큼 명성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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