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24) / 탕파(湯婆)
■ 박일환의 낱말여행 (24) / 탕파(湯婆)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2.12.01 04:56
  • 호수 11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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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를 녹이는 물건
박일환 시인
박일환 시인

겨울철 추위를 녹일 수 있도록 만든 물건 중에 핫팩이 있다. 우리말로 순화해서 손난로라고도 하는데, 겨울철이 되면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인기 상품이다. 일본의 미치 마토바가 1912년에 최초로 핫팩을 만들었다고 하며, 지금처럼 부직포 안에 열을 내는 물질을 넣었는데, 당시에는 백금을 촉매로 사용했다고 한다.

핫팩이 없던 시절에는 겨울철 추위를 녹이는 물건으로 어떤 게 있었을까? 국어사전에 탕파라는 낱말이 올라 있다.

탕파(湯婆): 뜨거운 물을 넣어서 그 열기로 몸을 따뜻하게 하는 기구. 쇠나 함석, 자기 따위로 만들며, 이불 속에 넣고 잔다.

풀이 끝에 유의어로 각파(脚婆), 탕파자(湯婆子), 자라통(--)을 제시했다. 자라통이라는 말은 한자어를 대신해 자라 모양을 닮은 통이라는 뜻을 담아 순화어로 만들었으나 언중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유통되지 않고 있다. 한자어를 대신했다고 했지만 제대로 말하자면 탕파(湯婆)를 일본식 한자어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뒤에 다시 따져보기로 하고 각파(脚婆)라는 말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제일 간단하고 조흔 것은 일본말로 유담뿌라고 해서 양철통에 더운 물을 넛코 꼭 트러막어서 발치에 너코 자는 것을 늘 너어 주는 것이 좃습니다.”(조선일보. 1935.5.22.)

위 기사에 발치에 너코 자는 것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가슴에 품는 게 아니라 발치 쪽에 넣어 둔다고 해서 각파(脚婆)라는 말이 생겼음을 알 수 있다.

유담뿌라는 건 당연히 일본말인데, 발음하는 사람에 따라 유단포, 유담포 등으로 일컫기도 한다. 이 말을 일본어사전에서 찾으니 ゆたんぽ(湯湯婆)’라고 나온다. 이와 더불어 たんぽ(湯婆)’도 같은 뜻을 지닌 낱말로 올라 있다. 더 자세히 알아보니 본래 湯婆였는데 뜻을 강조하느라 앞에 을 하나 덧붙였다고 한다. 아울러 (たん)’()’는 일본식으로 읽는 한자어 발음이 아니라 중국식 발음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국 탕파(湯婆)의 원조는 중국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제 탕파자(湯婆子)라는 낱말을 살펴볼 차례다. 중국에서 파자(婆子)라고 하면 여자를 낮추어 말하거나 아내를 이르는 말로 사용한다. 여름에 더위를 물리치기 위해 대나무 오리를 원통형으로 엮어 끌어안을 수 있게 만든 물건이 있었으며, 이걸 죽부인(竹夫人)이라고 부르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만든 말인 셈이다. 애초에는 탕파자라는 말이 생겼다가 탕파로 줄여 부르게 됐다는 얘기다. 이런 과정을 모르면 탕파에 왜 노파를 뜻하는 한자 ()’가 들어갔는지 의아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일본이 중국의 탕파를 받아들여 널리 사용하게 된 건 기후 때문이다. 일본 지역은 여름이 습해서 가옥을 다다미 구조로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겨울을 춥게 보내야 하고, 그런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물건으로 유단포 즉 탕파가 제격이었다고 하겠다. 그런 반면 우리는 바닥이 따뜻한 온돌을 사용했기 때문에 굳이 탕파를 도입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일제 식민지 시기에 일본을 통해 탕파가 유단포라는 이름으로 들어와 한동안 유행처럼 퍼지게 되었다. 지금도 겨울철 야영을 할 때 탕파와 같은 종류의 물건을 사용하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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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2024-01-04 17:51:50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