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공부가 깊으면 세상이 놔주지 않기도 한다는데
■ 송우영의 고전산책/공부가 깊으면 세상이 놔주지 않기도 한다는데
  • 송우영
  • 승인 2022.12.01 05:20
  • 호수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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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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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 자한子罕9-21문장에 이런 기록이 있다. “싹만 틔우고 꽃을 피우지 못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묘이苗而 불수자不秀者 유의부有矣夫> 꽃은 피웠으나 열매를 맺지 못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수이秀而 부실자不實者 유의부有矣夫>”

이를 쉽게 풀어 이해한다면. 봄에 꽃이 피지 않는다고 꺾지 마라. 여름에 피는 꽃도 있나니 가을에 꽃이 피지 않는다고 꺾지 마라. 겨울에 피는 꽃도 있나니.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늦은 게 맞다 다만 늦은 만큼 할 수는 있다는 말 쯤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이 문장은 주자의 벗 여조겸呂祖謙이 후학을 가르치면서 더러 인용하곤 했다고 전하는 문장이다. 사실 공부라는 것은 일생을 두고 해야 하는 것이다. 공자님보다 한두 해 먼저 죽은 위나라 대부 공문자는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했다며 불치하문不恥下問의 고사를 낳은 인물이다.

논어 공야장편 5-14문장에 따르면 하루는 자공이 묻는다.<자공子貢 문왈問曰> 공문자는 어찌하여 선비의 최고 영예인 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까?<공문자孔文子 하이위지문야何以謂之文也> 공자님 말씀에<자왈子曰> 그는 공부라면 빠르게 가서 배우기를 좋아했다.<민이호학敏而好學> 또 공부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불치하문不恥下問> 이런 연유로 이라는 시호를 받은 것이다.<시이위지문야是以謂之文也>

논어를 읽다 보면 공자님께서는 그 무엇보다도 공부하는 것을 하루 일의 최우선으로 두셨다는 느낌을 갖는다. 논어위령공 15-30문장에 이를 방증하는 듯한 글귀가 있다. 일찍이 공자님께서는 하루 내내 진지도 드시지 아니하고<오상종일불식吾嘗終日不食> 밤이 다하도록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종야불침終夜不寢> 생각을 해 보셨다.<이사以思> 그런데 유익함은 없으셨다 하셨으며<무익無益> 차라리 공부하는 것만 못했다<불여학야不如學也>며 공부만이 남는거다 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 물론 양정견楊定見 같은 사람은 수호지 예를 들면서 공부가 꼭 인생의 전부는 아닐터 하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한다.

충의수호전서忠義水滸傳書에서 이르기를 영웅은 공부하지 않는다라며 영웅불회독시서英雄不會讀詩書를 풀어냈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은 영웅이 아니기에 공부를 해야 한다. 조선시대에 최장수 재상을 들라면 아마도 황희 정승을 들 수 있으리라. 이 분도 어려서는 공부를 상당지경에 이를만치 하셨던 분이시다. 그리하여 등과하시어 나라의 일을 보심에 이르시어 노년에 이르러 퇴직 상소를 몇차례 올렸다 하나 번번히 거절당하셨다 한다. ‘나는 몸도 마음도 늙어서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데라며 임금께 상소를 올린다.

1432년 세종실록 56권 세종 14420일 무신 3번째 기사는 이렇게 기록한다.

귀 멀고 눈도 또한 어두워서<이롱이안역암耳聾而眼亦暗> 듣고 살피는 일이 어려우며<청찰유간聽察惟艱> 허리는 아프고 다리는 부자유하여<요통이각불수腰痛而脚不隨> 걸음을 걸으면 곧 쓰러집니다<보추첩지步趨輒躓> 대체로 원기가 쇠약하여진 것이 원인이 되어<개인원기지쇠삽蓋因元氣之衰颯> 드디어 온갖 병이 침노하게 된 것입니다.<수치백질지침능遂致百疾之侵陵> 더군다나 신은 금년의 생일로<황신초도지신況臣初度之辰> 이미 만 70세가 됩니다<이만칠순지세已滿七旬之歲> 늙으면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은<노이치사老而致仕> 나라에 떳떳한 규정에 있고<국유상규國有常規> 병들어서 한가롭기를 바라는 것은<병이구한病而求閑> 그 심정이 꾸민 것이 아닙니다.<정비허식情非虛飾> 엎드려 바라건대 신의 나이가 노쇠에 이른 것을 가엾게 여기시며<복망연신년박어지모伏望憐臣年迫於遲暮> 신의 정성이 깊은 충정에서 나온 것을 살피시고<양신성출어심충諒臣誠出於深衷> 유음을 내리시어<환발유음渙發兪音> 직위의 해면을 허락하소서.”<허면직위許免職位>

그러나 결론은 당시 36세의 세종 임금은 그가 필요하다며 황희정승의 고령을 이유로 낸 사직의 변을 아직도 8-90세도 안됐는데라며 정중히 허락하지 않습니다. 쉬시고자 하시는 황희 정승님께는 송구스런 말씀이나 공부가 깊으면 세상이 놔주지를 않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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