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시장 노점을 지키는 사람들
서천시장 노점을 지키는 사람들
  • 공금란
  • 승인 2004.04.09 00:00
  • 호수 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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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모진 삶을 추스르며 맨 몸으로 다시 서고 있었다
“그러게 그게 걱정이라니까요” 서천시장 이전하면 어디로 가시느냐 묻는 기자의 말에 뻥튀기 아줌마 오옥연(48) 씨는 긴 한숨을 토한다.
삶의 의욕이 없어지거든 시장에 가보라, 치열한 삶의 현장을 보게 될 것이다.
십 수년은 넘었겠다. 수레에 과일을 가득 싣거나 가끔은 양파며 고구마를 싣고는 스스로 역마살이 껴서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한다며 서천읍내를 온통 누비고 다닌 덕에 뒷골목 아무개 엄마까지 단골 삼고 있는 못난이 아저씨(이렇게 불렀다고 화내실까?). 또 얼마 전에 지면에 대문짝만하게 나서 시장사람들의 시기를 산다는 아낙, 농사짓다 빚에 쪼들려 파산하고 결국 자신이 농사짓던 것과 같은 오이며 양파 이런저런 야채를 펼쳐놓고 억척스런 아내와 노점을 시작한 수줍음 많은 아저씨. 또 있다. 주말, 식목일 연휴에 한식까지 겹쳐 대목장만큼 활어노점 시장이 붐벼 주꾸미 인기가 하늘을 치솟던 날엔 허리 펼 사이 없이 바빴건만, 기자가 다시 찾은 6일엔 담배한대 빨며 하품만 하고 있는 마량리 아저씨.
그들의 틈에서 뻥튀기과자만큼 돈벌면 어머니 같은 노인 두어 분 모셔다 알콩달콩 살고 싶다는 오옥연 아줌마.
세상에 사연 없는 이 있을까마는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소설속 주인공이다.
오옥연 아줌마가 시장판에 뛰어든 게 한 5년쯤 됐단다. 어쩌다 홀로되고 뻥튀기 기계를 인수받으며 기술을 배워, 대천에서 이사와 서천에 자리잡고 억센 삶에 뛰어들어 버텨온 세월.
그녀는 1톤 화물차에 뻥튀기 기계를 장치하고 ㅎ마트 앞에서 직접 과자를 튀겨서 크고 작은 봉지에 담아 2천 원, 5천 원…짜리 과자봉지를 지어 자신의 꿈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벌써 4월, 볼 것 많은 봄이 완연하지만 햇살만 없으면 한기가 느껴지는 오후, 빗낱이 떨어진다. 옆집 아저씨가 파는 오이랑 상추는 살풋한 비에 젖으면 오히려 풋풋하게 살아나지만 뻥튀기과자는 비와는 상극이다. 잽싸게 널찍한 비닐로 덮고 다시 큰 비닐봉지에 작은 과자봉지들을 차곡차곡 쟁여 차도 됐다 전방도 되는 1톤 화물차에 싣는다. 평소 같으면 한창 매상이 오를 직장인들 퇴근시간인데 서둘러 짐을 챙긴다.
“아주머니 인생이 아침마당 감이라던데요” 묻자 “에구 창피하게 어떻게 말해요”하며 수줍은 처녀웃음으로 기자에게 괜찮으면 언제 소주 한잔하면서 얘기하잔다.
오전에 나와서 알록달록한 뻥튀기, 실에 꾀면 진주목걸이 안 부러울 올망졸망한 뻥튀기, 생일케이크 나눌 때 개인접시로 쓰고는 통째로 먹어치워 설거지 안 해도 되는 둥글넓적한 뻥튀기, 입덧하던 며느리 속달래준다고 시어머니가 푸성귀와 바꿔 나르던 옥수수 뻥튀기…갖가지 과자들로 노점을 펼쳐 놓는다.
그리고 점심은 허기만 면하면 그만, 어느 땐 김밥 한 줄, 순대 한 접시로 손님이 오가는 틈틈이 서서 먹는 건 양반, 움직이며 우적우적 넘긴다.
다시 저녁, 기다릴 사람 없는 집으로 향하는 길이 뭐 그리 즐거우랴. 하루종일 지쳐서 무겁고, 외로워서 무거운 몸을 추스르며 짐을 꾸리는 것이다. 어쩌다 건너편 채소 전 내외의 “한잔합시다”하는 말이 반갑기 그지없는 오옥연 아줌마.
그녀는 움직일 수 있는 한 이 일을 할 생각이다. “개 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랬다고 열심히 일해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어느 생선장수 할머니가 평생 번 돈 장학금으로 척 내 논 것처럼 나도 멋지게 써 볼 랍니다”며 자신이 어려운 길을 걸어 온만큼 어려운 이들의 심경을 헤아리고 있다.
장사를 방해한 게 미안해 뻥튀기 한 봉지 사서 담소하는 동안 지인이 가던 길을 멈추고 한 봉지 더 먹으라며 사주고 간다.
채소 노점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그 오이 맛있어요”하며 거들기도 하고 양념거리며 어패류, 감자, 도라지, 어느 땐 우렁이에 땅콩까지 팔고있는 할머니도 반갑고, 꾸물꾸물 기어나 온 주꾸미가 이내 주인아저씨 손에 잡히는 것을 보며 웃을 수 있는 곳 서천재래시장.
특화시장이 문을 열면 이곳은 급속한 변화의 바람을 맞을 것이다. 위정자들은 늘 좋게 만드는 거라고 말하지만, 월드컵경기장 세우면서 쫓겨난 노점상들의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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