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못지 않게 나로 하여금 제철을 맞게 해주는 것은 주례 부탁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에게도 주례를 부탁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곤 한다. 벌써 내 나이가 그렇게 되었던가? 마음은 분명 내 결혼식을 알리는 청첩장의 시절인데, 벌써 주례라니? 그런 말을 하면 선생으로서의 보람이 아니냐고 곁에서 가까운 친구들은 웃으며 말하고 있지마는, 나에게는 보람이라기보다 왠지 서글픈 생각이 먼저 앞을 가린다. 나이 듦에 대한 인생무상감(人生無常感)에 젖어들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례 부탁에 따른 당혹감은 감출 수가 없다. 심지어 아내조차도 주례도 다 때가 되면 부탁도 들어오는 것이고 하니, 이제는 주례 같은 것도 한 번쯤 서 볼 수 있지 않느냐면서 내 나이도 일깨워주곤 하였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하고 주례하고는 영영 ‘제 때 제 구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듯하다. 내 나이가 이제는 불혹(不惑)을 넘어 지천명의 나이를 반 절 꺾어버렸지만, 어디 그 나이를 해 가지고서 주례를 설 수 있다는 말인가? 말이 지천명(知天命)이라는 것이지 하늘 아래 땅 어느 곳에서 살고 있는지조차 헤아릴 수 없는 미미한 존재로서의 나는 감히 하늘을 알 수 있는 나 이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그러한 나의 생각이 주례를 막는 주요 이유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이만하면 새로운 인생의 문을 열러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젊은이에게 자양(滋養)이 될 수 있는 말 한 마디쯤 해줄 수 있으리라, 그때가 되면 나도 당당하게 주례로 나설 수 있으리라. 그 때란 바로 언제가 될지 모르는 ‘봄 조개 가을 낙지’의 시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머지 않아 대표자를 뽑는 선거의 높은 파고(波高)가 예고되고 있다. 대표자란 어떠한 사람인가? 단체를 대신하여 그의 의사를 외부에 나타내는 사람이며, 또한 전체를 나타낼 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표자는 ‘제 때 제 구실’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따라서 참다운 대표자가 되기 위해서는 대표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제 때 제 구실]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를 스스로 바라볼 알아야 한다.
<시인·충남문인협회장/구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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